실체 모호한 구태 비자금 망령에 갇힌 대한민국 미래밥솥
실체 모호한 구태 비자금 망령에 갇힌 대한민국 미래밥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국내 이혼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으면서 SK그룹의 경영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AI로 재편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최고의사결정권자인 최 회장의 입지가 흔들릴 경우 위기 상황에서 발빠른 대응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최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3080억1700만원,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에서 재산 분할 665억원, 위자료 1억원 지급하라는 판결보다 무려 20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SK의 가치 증가나 경영 활동에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다”고 설명했다. 또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SK로 건네졌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최 회장 변호인단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며 “원고는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다”고 즉각 상고 의사를 밝혔다. 이번 판결은 2심으로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있다.

 

재산 분할 액수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최 회장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노 관장의 최종 승소로 이어질 경우 SK그룹의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베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만약 2심 결과대로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고 가정하고 노 관장이 받은 재산분할금을 모두 SK 지분을 산다면 단번에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SK그룹 지배구조는 '최태원➞SK㈜➞SK이노베이션·SK스퀘어·SKC'로 이어진다.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SK㈜는 SK이노베이션, SK스퀘어, SKC,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리츠 등 상장사 9개를 거느린 최대주주다. 최 회장이 들고 있는 SK(주) 지분은 17.73%다.

 

▲ 재판 결과로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약해질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측 법률대리인인 김기정 변호사. [사진=뉴시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인공지능(AI) 붐으로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SK스퀘어가 지분 20.07%로 최대주주다. SK㈜는 SK스퀘어의 지분을 30.55% 갖고 있다. 즉 최 회장이 SK하이닉스의 결정권을 쥐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부문은 다른 산업보다 막대한 자본과 추진력이 필요해 오너 경영이 유리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이혼 분쟁으로 최 회장의 지배력이 약해진다면 SK하이닉스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이용우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일본 반도체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로 오너 경영을 꼽은 바 있다.

 

이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이라는 시스템 차이가 컸다고 본다”며 “사장들은 다음 자리인 회장으로 가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 절대적인 의사결정자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다 보니 반도체같이 변화가 빠르고 집중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한계를 드러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 또한 국내 반도체 산업과 같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산업에는 오너 경영이 적합하단 입장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너에게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소양이 있는데 책임감이다”며 “한국 사정상 오너 경영만큼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모델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AI에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선점 효과로 연일 우상향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시가총액은 150조원으로 증권가에서는 3년 내 시총 200조원 달성을 전망할 정도로 기대치가 높은 기업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 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 글로벌 HBM 점유율은 53%로 압도적 1위다. 업계에서는 SK의 상승 기조와 계획은 최 회장 이혼 소송 결과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보유 현금이 많지 않고 재산 대부분이 주식으로 이뤄져 있는 만큼 패소 시 지분 매각에 나서는 방안 외에는 대안이 마땅치 않다”며 “지분을 매각하면 기업 장악력 약화되고 최악의 겨우 경영권 분쟁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리더십이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 치명적인 악재다”며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고 있는 만큼 전 국민의 악재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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