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지방 출신 개천 용들의 안타까운 사연
“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지방 출신 개천 용들의 안타까운 사연

여의도, 광화문, 강남 등 직장들이 모여 있는 업무지구에서는 1만원으로 점심 한 끼 때우기도 버겁다. 주거비 부담 역시 심각할 정도다. 서울 대부분 지역의 원룸 월세는 이미 70만원을 넘어섰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해도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는 직장인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란 현실에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소리일 뿐이다. 최소한의 목돈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 다니며 월 150만원씩 모아도 1억까지 최소 5년, 최대 지출은 ‘주거비’

 

30일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서울 지역 연립·다세대 원룸(전용면적 33㎡ 이하)의 월세(보증금 1천만원 기준)는 평균 73만원이다. 동일 기준 평균 전세 보증금은 2억1187만원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월세 형태로 거주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관리비·전기·수도·가스 등의 공과금을 포함하면 한 달 주거비만 약 85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에 따르면 20대 직장인의 월 평균소득은 255만원, 30대 직장인은 379만원 등이었다. 평균소득은 비과세 소득을 제외한 세전소득으로 일부 고소득자가 평균값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통상적인 실질 소득은 더욱 낮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평균 연봉이 높은 대기업의 경우에도 신입사원이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이 월 400만원 이상인 경우는 드물다.

 

▲ 여의도 주요 직장가 전경. [사진=뉴시스]

 

5대 그룹사 중 한 곳에 재직 중인 이정훈 씨(29·남·가명)는 “28년을 대구에서 살다 운 좋게 서울에 있는 대기업 본사에 취업하게 돼 큰 꿈을 품고 상경했는데 현실은 정말 암흑이다”며 “현재 세후 약 380만원을 받고 있는데 주거비(월세·관리비·공과금), 통신비, 교통비, 보험료(실비·암) 등으로 130만원 정도가 나가고 아끼고 아껴 생활비 100만원을 가량을 쓰고 나면 저축할 돈이 150만원 가량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원룸에 살며 자취를 하고 있기 때문에 끼니 해결이 가장 큰 문제고 그 외에 샴푸·세제·화장품 등 생필품 가격도 장난이 아니다”며 “한 달에 150만원이면 주변 친구들에 비해 나름 많이 모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렇게 모아도 1년에 1800만원, 5년에 1억원 가량 모일 뿐이다. 도저히 집을 살 엄두가 나지 않다 보니 결혼이나 연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열심히 공부한 지방 청년들도 집값에 좌절…“청년 주거정책 소득기준 완화해야”

 

시중은행과 각종 공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업들이 서울권에 몰려 있다 보니 지방의 우수한 인재들은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 후 취직을 위해 상경을 결심한다. 이에 정부는 사회초년생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청년버팀목전세대출, 청년안심주택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20·30세대 사이에선 소득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방 출신의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선 사실상 정책에서 소외돼 있다는 성토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 서울 동작구 인근 주민 알림판에 원룸·하숙 광고 전단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시 청년안심주택(구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의 자산기준은 공고별로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월 335만원을 넘어선 안 된다. 19세 이상 만 34세 이하의 무주택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버팀목전세대출은 최저 1.8%의 금리로 최대 2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다만 소득 기준이 연 5천만원 이하로 책정돼 서울시가 지원하는 청년 거주정책 대부분의 혜택에서 대기업 재직자들은 제외돼 있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재직자들 사이에선 사회초년생 기준 중소·중견기업과 월급 차이가 크지 않은데다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노력이 상당한 만큼 땀의 가치를 외면하는 엄격한 소득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주택자 1인 가구 대상, 소득의 차이 등을 떠나 사회 초년생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한다는 주장이다.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홍영진 씨(33·남·가명)는 “지방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며 “남들 잘 때 안자고 놀 때 안 놀고 하면서 노력해 가까스로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단지 연봉을 조금 더 받는다고 주거 정책에서 배제하면 누가 열심히 살겠나”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정말 어려운 사람을 위한 복지면 몰라도 특정 연령층을 위한 복지에선 소득기준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김준형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자리가 서울에 몰리면서 청년들의 주택난이 갈수록 심해져 가는 추세다”며 “현재 입주 대상 선정에 철저한 소득제한을 두고 있는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를 개선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어 “무주택자 1인 가구 기준 소득제한 규제를 완화해 실질적으로 청년가구의 시급함을 해결해 줘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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