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주력 계열사 중 한 곳인 한화솔루션이 미국 현지에서 경영 외적인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합법인 정·관계 로비(lobby) 규모를 늘렸으며 정계 네트워크 또한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기조가 대척점에 있는 만큼 선제적 대비 태세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등에 따르면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이하 한화큐셀)은 미국 조지아주에 3조2000억원 가량을 투자해 태양광 통합 생산 단지를 구축했다. 한화큐셀은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라 AMPC(첨단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내년부터 잉곳·웨이퍼·셀·모듈을 모두 미국 내에서 제조하기 시작하면 세액공제 혜택은 연간 1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화석에너지 중심 정책 예고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치러지는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정책의 축소 또는 폐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전면적인 폐기는 아니더라도 혜택 규모를 줄이거나 외국 기업에 대한 혜택을 예외로 두는 등의 변수 발생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한화큐셀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절반 이상 규모 로비자금 투입, 무역규제·IRA지원 분야에 올인
올해 한화큐셀은 미국 로비 자금을 대폭 늘렸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적인 비즈니스다. 다만 로비 대상, 금액, 활동 내역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미국 로비자금 정보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한화큐셀은 올해 1분기에만 104만달러(약 14억원)를 현지 대관 비용으로 투입했다. 연간 사상 최고치를 찍은 지난해 투입비용의 66%에 달하는 금액을 1분기 만에 썼다. 전년 동기 29만 달러와 비교하면 4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올해 한화그룹이 미국에서 고용한 로비스트는 12명으로 역대 가장 많다.
로비 대상은 미국 정부 기관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미국 상무부(Dept of Commerce) △미국 에너지부(Dept of Energy) △미국 재무부(Dept of the Treasury) △미국 국가경제 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미국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백악관 예산관리국(Office of Management&Budget) △미국 무역 대표부(Office of US Trade Representative) △백악관(White House) 등을 대상으로 로비 활동을 펼쳤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무역 규제와 IRA 지원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미국 상무부와 재무부, 국가경제 위원회, 백악관 예산관리국 등은 IRA 지원금과 연관된 부서들이다. 미국 국가안보회의, 미국 무역 대표부 등은 무역과 규제 문제와 얽혀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을 대비해 친환경 에너지를 밀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시기에 로비를 늘려 가능한 많은 대미 문제를 해결하고 세제 혜택 등을 미리 확보해 놓겠다는 행보로 해석된다.
한화큐셀이 2008년부터 미국 현지 로비 활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로비스트를 고용하며 본격적으로 로비 활동을 전개한 것은 트럼프 1차 집권 시기인 2017년부터였다. 한화그룹이 미국 내에서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본격화한 시점과 맞물린다. 로비 금액 또한 트럼프 당선을 기점으로 △2018년 5만달러 △2019년 32만달러 △2020년 45만달러 △2021년 64만달러 △2022년 90만달러 △ 2023년 158만달러 등으로 꾸준히 늘렸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화큐셀이 그동안 로비 자금을 늘린 이유가 IRA 세제혜택과 중국 경쟁업체 견제 등의 목적이었다”며 “그러나 미국이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IRA 문제도 끝나가는 시점인 올해 로비 자금을 늘린 것은 그 목적이 예전과 사뭇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생겨날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바이든 옛 비서실장 영입에 공화당 연결고리 강화까지…정·관계 로비스트 역대급 규모
한화큐셀은 로비뿐만 아니라 미국 내 네트워크 강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재계 등에 따르면 한화큐셀은 최근 미국 현지 대관 조직인 코퍼레이트 어페어(CA)팀을 만들었다. 팀의 수장에는 미국 정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대니 오브라이언(Danny O'Brien) 폭스코퍼레이션 수석 부사장을 앉혔다.
오브라이언 수석부사장은 2003~2006년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상원의원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2008년에는 부통령으로 출마한 바이든 대통령 대선캠프에 합류해 정치 이사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폭스사 부사장 겸 정부 관계 책임자로서 입법, 규제 및 전략 정책 문제를 주도했다.
한화큐셀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과의 접점도 늘려 나가고 있다. 2일 PR 전문매체 오드와이어 피알(O'Dwyer‘s PR) 따르면 한화큐셀은 미국 전 공화당 의원들이 다수 포진한 컨설팅 업체 '벤처 거버먼트 스트레티지스(Venture Government Strategies)와 대관 업무를 체결했다.
벤처 거버먼트 스트레티스즈에선 전 켄자스주 공화당 하원 의원 출신의 케빈 요더(Kevin Yoder)와 비서실장 데이비드 나톤스키(David Natonski), 전 앨라배마주 공화당 상원 의원 리차드 쉘비(Richard Shelby)의 보좌관을 지냈던 해밀턴 블룸(Hamilton Bloom) 등이 팀을 이뤄 큐셀 아메리카의 대관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팀의 이끄는 요더 전 하원의원은 하원 국토안보 세출 소위원회, 입법부 세출 소위원회 등을 지낸 예산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화큐셀 공장이 위치한 미국 조지아의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도 공화당 출신이다. 향후 트럼프 당선과 더불어 주지사와의 시너지까지 고려해 벤처 거버먼트 스트레티스즈와 업무 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김선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친환경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공약을 고려하면 트럼프 후보 당선 시 IRA 지원 규정들의 무력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의회에서 법안 자체를 폐지할 가능성이 적다고는 하나 대통령의 행정명령, CRA 등 수단을 활용하는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