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지옥’ 한국에선 청년 미래 보장된 100년 기업 힘들다
‘세금지옥’ 한국에선 청년 미래 보장된 100년 기업 힘들다

[Le view<264>]-청년 울리는 현실괴리 법(法)(⑨-상속·증여세법) ‘세금지옥’ 한국에선 청년 미래 보장된 100년 기업 힘들다

최대 60% 살인적 상속세에 기업경영 의욕 하락, 매각·청산 사례도

르데스크 | 입력 2023.06.14 17:36

 

▲ 최근 과도한 증여·상속세 부담에 회사를 매각 또는 청산하는 사례가 늘면서 직장인들과 청년세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회사 주인이 바뀔 경우 기존 직원의 구조조정이나 처우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 상속·증여세 재원 마련 부담 때문에 신규 채용에 소극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다. 사진은 상속세 개선 토론회에 참석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사진=뉴시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높은 증여·상속세율이 기존 직장인의 불안을 키우고 구직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과도한 증여·상속세 부담에 회사를 매각 또는 청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통상적으로 회사 주인이 바뀔 경우 기존 직원의 구조조정이나 처우조정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상속·증여세 재원 마련 부담 때문에 신규 채용에 소극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다.

 

특히 경제활동 기간이 많이 남은 청년세대에겐 구조조정이나 신규채용 축소가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처우가 달라지거나 경제활동에 공백이 생길 경우 개인의 삶까지 망가질 확률이 높은 탓이다. 청년세대는 결혼이나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기성세대에 비해 큰 편이다. 상속·증여세 부담이 큰 기업 중에는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강소기업도 여럿 포함돼 있어 청년세대의 선택지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상속·증여세 때문에 주인 바뀐 락앤락·유니더스, 매각 후엔 존재감 유명무실

 

재계 등에 따르면 과거 강소기업으로 유명했던 주방용기 제조업체 ‘락앤락’은 최근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새 주인을 맞이한 후 무리한 확장을 거듭한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2017년 8월 설립자인 김준일 락앤락 전 회장은 본인 소유의 락앤락 지분 63.5%를 약 6300억원에 홍콩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니티)에 매각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이 매각 이유로 알려졌다.

 

락앤락의 새주인이 된 어피니티는 기존 주방용기 업체에서 종합생활용품 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주력 제품인 밀폐용기와 더불어 음료용기, 주방용품, 소형가전 등으로 제품을 확대했다. 이러한 락앤락의 변신은 얼핏 성공한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매출은 소폭 상승했지만 수익성은 갈수록 뒷걸음질쳤다.

 

 

▲ 재계 등에 따르면 과거 강소기업으로 유명했던 주방용기 제조업체 ‘락앤락’은 상속세 부담을 느낀 창업주가 지분을 매각한 이후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서울지방국세청. [사진=뉴시스]

 

2017년 당시만 해도 516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은 2018년 365억원으로 반토막났다. 급기야 지난해엔 2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생산라인 증설, 인력 증원 등 무리한 제품 확장에 따른 고정비 상승 때문이었다. 업계 안팎에선 지속가능한 경영 보단 덩치를 키운 후 매각차익을 얻는 게 목적인 ‘사모펀드 기업의 비극’이라는 평가와 동시에 ‘살인적 상속세로 인한 최악의 결말’이라는 안타까운 반응이 적지 않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유니더스는 고 김덕성 유니더스 회장이 1973년 설립한 회사로 한때 글로벌 콘돔 생산 1위까지 올랐던 기업이다. 창업주 별세 후 아들인 김성훈 전 대표가 지분을 물려받았는데 당시 부과된 상속세는 약 50억원에 달했다. 김 전 대표는 10년 동안 매년 약 5억 원씩 연납할 계획이었으나 사세가 기울면서 수입이 줄어 상속세를 내지 못했다. 결국 김 전 대표는 2017년 11월 유니더스 지분 34.88%를 매각했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살인적’ 수준…중소기업 40.4% 폐업·매각 가능성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을 경우 세율이 50%에 달한다. 기업 경영권까지 물려받으면 10%가 할증돼 60%로 높아진다.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도 상속세율이 높은 편이지만 공제 혜택이 커 실제로 내는 상속세율은 한국보다 낮다. 일례로 일본은 비상장 기업의 경우 세액 80%의 납부를 유예했다가 5년 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면제해줘 실효세율은 11%에 불과하다. 프랑스와 영국의 가업 상속 실효세율도 각각 11.25%, 20%에 그친다.

 

우리나라도 공제 제도가 있긴 하지만 해외 국가에 비해 혜택이 적고 조건도 까다롭다. 우리나라에선 10년 이상 대표로서 직접 경영을 해야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영기간이 늘어날수록 공제액이 늘어나는데 공제구간이 10년이나 된다. 30년 이상 기업을 대표로서 경영해야 500억원을 공제받는다. 매출액이 3000억원을 넘으면 경영기간과 관계없이 공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고용조건이다. 기존 고용 인원이 10년 동안 줄어들면 안 된다. 10년 내에 가업용 자산을 20% 이상 매각해도 공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앞으로 락앤락, 유니더스 등과 비슷한 사례는 계속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소기업 오너 상당수가 고령에 접어든 탓에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인한 줄매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계에는 70세 이상 중소기업 CEO가 2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승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창업 10년 이상 된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8.0%만이 가업 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조사에 비해 9.8%p 줄어든 수치다. 승계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기업도 2017년 32.0%에서 지난해 40.4%로 늘었다. 가업 승계를 계획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결국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중이라는 것으로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상속·증여세 부담 최종 피해자는 기존 직원과 구직자, 대대적 수술로 경영 의욕 북돋아야”

 

문제는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해당 기업의 소속 직원과 구직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이 매각될 경우 사업구조 개편에 따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뒤따르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거나 처우 악화에 시달린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락앤락은 중국·인도 등의 해외법인을 줄줄이 매각했다. 유니더스도 과거 주인이 바뀐 후 약 3년간 기존 직원의 20% 가량이 회사를 떠났다.

 

 

▲ 상속·증여를 염두한 기업의 경우 대부분 상속 재원 마련을 위해 생산설비·고용 등의 투자 규모를 줄이는 방식을 채택하는데 그 과정에서 청년세대의 피해가 뒤따른다. 대부분 고용 투자를 줄이는 탓에 청년세대의 일자리 선택지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된다. 사진은 채용게시판을 보고 있는 구직자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재계 등에 따르면 상속·증여를 염두한 기업의 경우 대부분 상속 재원 마련을 위해 생산설비·고용 등의 투자 규모를 줄이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 과정에서 청년세대의 피해가 뒤따른다. 고용 투자를 줄인다는 의미는 그만큼 채용문턱이 높아지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속·증여세로 기업의 매각 사례가 늘어날 경우 안정적인 일자리로 평가되는 장수기업 숫자도 감소해 자연스레 청년세대의 일자리 선택지도 줄어들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OECD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기업의 경영 의지를 떨어뜨리고 투자·고용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상속·증여세 재원 마련을 위해 배당을 늘리려면 신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데 결국 최대 피해자는 청년세대가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추광호 경제정책실장은 “업력이 긴 장수기업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함은 물론, 고용창출 능력도 뛰어난 편인데 과도한 상속·증여세율이 장수기업 탄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2018년 기준 일본은 장수기업(100년 이상)은 3만3259개인 반면 한국은 10개에 불과한데 지금도 우량 기업들이 가업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속·증여세법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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