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첫 삽 떴는데”…비싼 미국산 구매 압박에 K-기업들 울상
“공장 첫 삽 떴는데”…비싼 미국산 구매 압박에 K-기업들 울상
[사진=AP/뉴시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전기차 충전기 업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 전역에 설치하는 전기차 충전기에 미국산 부품을 55% 이상 써야만 정부 보조금을 주는 ‘바이 아메리카’ 제도 적용 시점이 임박한 탓이다.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보니 국내 전기차 중전기 업체들은 보조금 혜택에서 밀려 가격 경쟁력에서도 뒤처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 기업 전기차 충전기 핵심 부품은 모두 중국산…공급망 모두 바꿔야할 판”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의 전기차 인프라 확대프로그램(NEVI) 내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조항이 1년 유예기간을 끝내고 오는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NEVI’는 미국 정부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총 50억 달러를 지원해 미국 내 50개 주 고속도로에 80㎞ 간격으로 600㎾급 초급속 충전소를 짓는 사업이다. ‘바이 아메리카’는 도로, 다리, 철도 등을 신축·개축할 때 미국산 자재·장비를 55% 이상 사용토록 의무화한 규정이다.

 

당초 ‘바이 아메리카’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미국 교통부와 상무부 등도 입장을 선회함에 따라 시행이 늦춰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화당은 전기차 충전기 철강 재료에 대한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요건 해제를 요구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철강 노동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 7월부터 전기차 충전기에 바이 아메리카 조항이 적용될 예정이다. 사진은 LG전자 전기차 충전기를 사용하는 미국 소비자. [사진=LG전자]

 

‘바이 아메리카’ 시행이 기정사실에 가까워지면서 국내 전기차 충전기 업체들에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충전기의 최종 조립만 미국에서 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7월부터는 생산뿐만 아니라 자재와 부품의 공급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자재와 부품 대부분을 중국에서 조달해왔다. 미국산 부품 가격은 중국산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까지 비싸다.

 

비싼 가격을 감수한다 해도 미국산 제품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전기차 급속충전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파워모듈’에 대한 수급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파워모듈은 충전기 원가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이자 고가의 부품이다. 현재 이 부품을 만드는 곳은 소수의 중국 업체뿐이다. 만약 국내 기업이 해당 제품을 미국산으로 대체하려면 직접 설계해 OEM 방식으로 미국에서 생산해 보조금 규정에 대응해야 한다.

 

전기차 충전기 업체 관계자는 “함체와 파워모듈, 차단기, 릴레이, 충전건 등 대부분의 부품들이 중국산인데 이를 모두 미국산 제품으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며 “단순히 마진의 문제가 아니라 완제품을 만드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설령 완제품을 만들더라도 배 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미국 내 전문가들 또한 바이 아메리카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 나라 기업들의 미국 진출에 제동을 걸어 종국엔 미국에 대한 투자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WP는 “인프라 건설의 핵심 부품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시행 유예기간의 연장을 주문했다. 미국 비영리 경제단체 EPI 롭 스콧 이코노미스트 또한 “공공 부문에서의 국내산 제품 구매를 늘리는 정도로 25조 달러의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미국 진출 시동 걸자마자 꺼야할 판…정부의 외교적 지원 외엔 사실상 해결 불가”

 

▲ 북미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맞추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외교적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북미 충전기 사업에 진출한 SK시그넷 사옥 전경. [사진=SK시그넷]

 

현재 미국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SK그룹, 롯데그룹, LG그룹 등이다. 이들 기업은 NEVI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일부 성과도 달성했다. 그만큼 투자 규모도 큰 편이다. SK시그넷은 현재까지 NEVI 프로그램 지급 대상으로 선정된 미국 537개의 부지 중 75개소의 사업을 확보해 약 14%의 점유율을 기록 차지하고 있다. 70개소를 확보한 테슬라 보다 큰 점유율이다. SK시그넷 텍사스 공장은 지난해 7월부터 양산 체제에 돌입해 현재 연간 1만 기의 초급속 충전기 생산능력을 확보한 상태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최근 미국 현지 법인 ‘EVSIS America’를 설립했다. 캘리포니아주에 1000여평 규모의 공장 부지를 확보했으며 상반기 내 모든 생산 라인 가동 준비를 마치고 하반기부터 북미 전역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EVSIS America의 주요 제품인 180kW, 400kW의 초급속 충전기는 바이 아메리카 조항과 NEVI 등의 기준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또한 텍사스 공장에서 175㎾ 급속 충전기의 대량 양산에 돌입했다. 텍사스 공장은 LG전자가 해외에 세운 최초의 전기차 충전기 생산 시설이다. 연면적 5500㎡ 규모로 연간 1만대 이상의 전기차 충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LG전자는 올해 초부터 가동을 시작해 11㎾급 완속 충전기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충전기 기업들의 미국 진출에 제동이 걸리지 않도록 외교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혜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미국이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강화하면서 미국 조달시장 진입장벽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공공 인프라 조달에 대한 규제강화로 비철금속, 플라스틱, 유리, 목재, 폴리머 등과 같은 건축 자재 조달시장과 전기차 인프라 조달시장 진출이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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