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못가면 개근거지”…초등생 놀이문화된 혐오 키워드
“해외여행 못가면 개근거지”…초등생 놀이문화된 혐오 키워드
[사진=뉴시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성인들 못지않은 과시와 허세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보다 재정적으로 못 산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거지’라고 놀리는 문화가 성행하며 논란을 빚고 있다.


2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아이가 개근 거지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글이 화재다. 작성자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아버지로 최근 아들이 ‘개근 거지’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개근거지는 개근상을 받은 아이들을 비하하는 단어다. 과거에는 개근을 한 아이들에게 ‘개근상’을 수여하는 등 긍정적 의미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학기 중 해외여행 등 교외 체험학습을 가지 않고 학교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아이들을 비하하는 말로 전락했다. 즉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이 여유가 없어 체험학습조차 못한다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해당 글 작성자는 “어제 아들이 ‘친구들이 개거라고 한다’고 울면서 말하더라”며 “개거가 뭔가 했더니 ‘개근 거지’ 거지의 줄임말이었다'”고 밝혔다.

 

▲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허영과 사치 문화과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어린이날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몰린 인파. [사진=뉴시스]

 

작성자는 외벌이로 월 실수령액이 300만~350만원이며, 생활비와 집값을 갚고 나면 여유 자금이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A씨는 “학기 중 체험 학습이 가능하다는 안내는 받았는데 안 가는 가정이 그렇게 드물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우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경주나 강릉, 양양 같은 국내 여행을 알아봤다. 하지만 아들은 국내 여행은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다른 친구들은 괌, 싱가포르, 하와이 등 해외여행을 가는데 자신만 국내로 가는 건 창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아내와 아들만 값싼 항공권으로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작성자는 “옛날에는 부모께서 키워주심에 감사하며 교복도 가장 싼 브랜드 입고 뭘 사달라고 칭얼거린 적도 없다”며 “요즘은 정말 비교 문화가 극에 달한 것 같다, 결혼 문화나 허영 문화도 그렇고, 정말 갑갑하다"고 말했다.

 

이어 누리꾼들은 부정적인 반응이다. 한 누리꾼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저러면 나중에 커서는 어떻게 될지 정말 걱정이다”며 “너무 잔인하고 심각한 사회현상이다”고 말했다.

 

‘개근 거지’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각종 거지 문화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월세에 사는 아이는 ‘월세 거지’, 빌라는 ‘빌라 거지’, 200~300만원 벌이는 ‘200·300충(蟲)’, 임대 아파트에 살면 ‘LH거지’, 국산차를 타면 ‘국산 거지’ 등 그 수도 셀수 없이 많다.

 

 

▲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거지 비하 문화가 어른들과 SNS의 사치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사진은 명품을 사기 위한 오프런 대기줄. [사진=뉴시스]

 

남양주에서 초등학생 5학년 아이를 키우는 이승혜(39)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아이가 하루는 저에게 와서 우리 집은 차 언제 바꿀 거냐고 물어봤다”며 “친구들이 국산차 탄다고 놀리니 다음에 살 때는 외제차로 사면 안되냐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누가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었더니 외제차를 타는 친구들 무리가 따로 존재하고 그들이 국산차 타는 아이들을 놀리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초등학교 때 나와 다르다고 놀리는 건 과거부터 있었지만 부모 차를 가지고 차별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부터 사치 문화가 성행하는 것은 사회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성인들의 행동과 모습을 따라 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초등학생부터 허영과 혐오가 판을 치는 것은 미래에 큰 사회장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개근거지’와 같은 말을 듣는다면 평생 상처로 안고 살아갈 우려가 있다”며 “아이들은 어른들이 쓰는 나쁜 표현을 학습해 발화하는 만큼 어른들과 사회가 먼저 반성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초등학생부터 사치스러운 소비성향을 습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한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비교하며 거지라는 비하 발언을 하는 것은 또래뿐만 아니라 SNS에 많이 노출된 결과로 분석된다”며 “이러한 소비성향과 습관은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만큼 올바른 지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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