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예림(28) 씨는 최근 SNS발 소비 형태에 대해 ‘지킬 앤 하이드’라고 비유했다. 지킬 앤 하이드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집필한 소설로 착한 지킬 박사와 나쁜 하이드라는 두 개의 인격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성실하고 검소한 지킬이지만 SNS에서는 잘나가는 하이드란 것이다. 현실에서 힘들더라도 SNS에서만큼은 돈 걱정 하나 없는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인스타그램 속 나를 보면 매일 맛있는 음식에 여행도 부담 없이 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아끼려고 노력한다”며 “그래서 가끔 SNS 속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현실의 내가 아끼는 것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SNS 세상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며 “그렇지만 SNS 자체가 취미생활이 돼 버려서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김 씨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SNS 속 나를 위해서 현실의 나를 포기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과소비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SNS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김 씨는 SNS를 두고 마치 하이드가 되는 약과 같다고 정의했다.
새해를 맞아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은 류찬성 씨(29)도 소비에 있어 SNS가 1순위라고 밝혔다. 류 씨는 “SNS를 안 할 때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물건 위주로 구매했으면 지금은 종결(하이엔드)급이 아니면 오히려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든다”며 “거기에 주변 친구들까지 다 좋은 물건을 사니 나도 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도 SNS를 통한 과소비를 알고 있음에도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생각과는 다른 소비 결과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으로 SNS 소비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매개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꼭 무엇을 소비하느냐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 필요하다”며 “자각하기 위해서는 소비 교육이 수반돼야 하고 SNS에 동조하지 않는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SNS따라 변화한 시장…“비싸거나 싸거나 중간이 없어요”
청년들의 SNS발 극단적 소비에 대한 기업의 책임도 배제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근 기업들은 아주 비싸거나 싼 제품들로 판매 전략을 꾸리고 있다. 올해 설 선물 세트 구성만 봐도 국내에 양극화 소비가 얼마나 심화됐는지 알 수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롯데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은 중간단계를 제외하고 가성비와 프리미엄 선물세트를 모두 늘리는 양극화 마켓팅을 진행했다. 기자가 설 기간에 방문한 백화점에서는 20만원 미만의 가성비 세트 혹은 100만원 이상 프리미엄 상품들 위주로 진열돼 있었고 40만원 혹은 50만원대의 애매한 가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2년 동안 소비자들은 싸거나 아주 비싼 제품 구매하고 있어 이에 맞춰 상품을 구성하고 있다”며 “프리미엄 상품의 경우는 포장부터 SNS까지 염두하고 최고급으로 구성한다”고 밝혔다.
백화점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나는 SNS에 자랑할 목적도 없고 그렇다고 선물로 너무 싼 것은 사고 싶지 않아 적당히 고급진 선물을 찾고 있는데 대부분 너무 비싸거나 아니면 구성이 빈약한 싼 선물이 대부분이라 고민된다”며 “예전에는 다양한 상품군이 골고루 포진해 있던 것 같은데 SNS가 성행한 뒤 자랑용 프리미엄 혹은 아끼기 위한 싼 상품들만 너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 역시 최근 상품들의 구성이 지나치게 양극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 채널에서 중간 가격대를 빼고 고가와 초저가로만 상품을 내놓는 건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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