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포기하고 지금 막 쓰자”…미국發 ‘기브업 소비’ 주의보
“미래 포기하고 지금 막 쓰자”…미국發 ‘기브업 소비’ 주의보
▲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청년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 대신 현재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소비를 늘리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두바이의 한 특급호텔 전경. ⓒ르데스크

 

“요즘의 젊은이들은 얇은 지갑과 값비싼 취향을 갖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미국 청년층 소비에 대해 평가한 문구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청년들의 사치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소비력은 2010년대 유행했던 욜로족이나 플렉스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더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코로나19부터 기후변화, 러-우전쟁, 경제위기, 이념대립 등 다양한 위기를 겪어왔던 청년들은 지금 아니면 못 즐긴다는 인식에 소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 이른바 ‘기브업(Give up) 소비’라 불린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된다.

 

금리 인상에도 하루 1500만원 넘는 파티룸은 완판…이용자 대부분 청년세대

 

미국 호텔에서 이벤트플래너로 10년간 일한 김민아(34·여) 씨는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호텔에서 파티를 즐기는 젊은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밝혔다. 과거엔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이상 호텔에서 파티를 즐기는 경우가 드물었고 이용자 또한 대부분 40대 이상 경제적 안정을 취한 세대였는데 최근에는 20·30세대가 오로지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호텔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처음에는 엔데믹에 의한 일시적인 영향일 줄 알았는데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호텔에서 전문 플래너까지 고용해 파티를 여는 비용은 20·30세대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 의아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워낙 잘사는 사람이 많으니 그러려니 하려하지만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며 “이전에는 이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 최근 미국에선 하루에 100만원이 넘는 파티에 참석하거나 빚을 내고 여행을 다니는 등 분에 넘치는 소비를 일삼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파티를 준비하는 호텔 파티플레너들. ⓒ르데스크


김 씨가 근무하는 호텔의 파티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스위트룸 파티 상품의 가격은 대여만 시간당 370달러(한화 약 50만원), 기본 14시간 기준 대여비는 700만원에 달한다. 플레너와 술, 음식 등 기타 가격은 별도다. 대여비와 기타 비용을 합치면 보통 15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설명이다. 파티룸 인원수는 최대 12명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파티 한 번에 인당 최소 125만원을 소비하는 셈이다.

 

올해 태어나 처음으로 미국 밖을 벗어나 두바이로 여행을 한 비앙카(Bianca·24) 씨는 살면서 가장 많은 돈을 사용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비앙카 씨는 “예전에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노후까지 생각해 계획적인 지출을 했지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단 생각에 여행을 결심했다”며 “코로나19와 지금 세계에 벌여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내가 돈을 모은다고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모기지 사태로 성실하게 살았던 우리 집은 큰 위기를 겪었고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며 “그리고 지금 지구에 일어나는 기후변화를 보면 나에게 미래가 있는지 강한 의심이 든다. 앞으로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럴 바엔 현재에 충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포기한 과소비 문화, 플렉스 문화로 멍든 한국에 침투하면 미래 불투명

 

미국의 경제 상황은 청년들의 소비와는 딴판이다. 미국 기준금리는 엔데믹 이후 꾸준히 올라 10월 기준 5.50%를 기록했다. 소비자 물가 지수는 8월 기준 307.03%p에 달했다. 미국 신용평가 시스템 벤테지스코어 조사 결과, 올해 청년들의 신용카드 대출 잔액은 2020년 대비 38%나 증가했다.

 

청년들의 실업률은 상승하는 반면 평균 임금은 요지부동이다. 경제 지표 전문 분석 플랫폼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8월 미국 청년 실업률은 8.6%로 올해 최고치다. 직장인 시간당 평균 임금 인상은 매달 0.1달러 가량 오르다 7월부터 0.06달러로 떨어졌다. 

 

▲ 청년들의 사치는 욜로와 플랙스와는 사뭇 다르다. 코로나부터 각종 악재를 겪은 청년들의 미래가 없다는 비관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소비패턴이라 전문가들은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사진은 여행지 비싼 점심(왼쪽)과 고급 와이너리 레스토랑에 가득찬 청년들, ⓒ르데스크


미국의 전문가들은 경제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청년 소비가 크게 늘어난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으로 해석했다. 컨설팅그룹 맥킨지(Mckinsey)는 “지금 청년들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야기한 경제 위기와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비관주의가 자리 잡았다”며 “미국 청년 중 4분의 1은 은퇴 후 삶에 대한 경제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절반은 평생 집을 구입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미래를 위한 준비 대신 현재 소비를 크게 늘리는 행태를 두고 ‘기브업(give up) 소비’라고 평가했다. 미래를 포기하고 오로지 지금의 삶에만 집중한다는 의미다. 기브업 소비는 과거 플렉스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더 극단적이고 비관적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평가된다.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 청년세대의 소비문화가 우리나라 청년세대에 끼칠 영향을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플렉스 문화 여파로 오마카세, 골프 등 수입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일삼는 문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기브업 소비’까지 등장한다면 나라의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 청년 소비에도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아끼려는 청년들은 무지출 챌린지나 거지방 등에 참여해 소비를 줄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빚까지 내서 사치를 부리고 있다”며 “청년층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타깝지만 포기하고 소비를 한다면 정말 미래가 없어진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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