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돈 대신 굴리는 국민연금, 민간기업 경영 ‘이래라 저래라’
국민 돈 대신 굴리는 국민연금, 민간기업 경영 ‘이래라 저래라’
[사진=국민연금공단]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산업계의 큰 손으로 불리는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 수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앞세워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권에 깊숙이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어서다. 특히 경제계 안팎에선 국민연금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상 ‘관치’나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며 기업 경영의 자율성 훼손이 우려된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14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한 기업은 601곳에 달했다. 같은 기간 참여한 주주총회 횟수는 총 680회나 됐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의결권을 행사한 601개 기업 중 전체 안건에 100% 찬성한 기업은 총 237개(39.4%)에 불과했다. 심지어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안건 대부분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50% 이상의 반대율을 기록한 기업도 28곳(4.7%)이나 됐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기업은 약 1200여곳이다. 투자금액은 총 148조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 기업도 281곳이나 된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올라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는 △네이버(9.34%) △SK하이닉스(7.9%) △기아(7.71%) △삼성전자(7.35%) △현대차(7.35%) △POSCO홀딩스(6.71%) △LG에너지솔루션(5.74%) 등이 있다.

 

포스코, KT&G 등 정부 소유 다름없는 민간기업 경영개입 보폭 넓히는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지난 8월 ‘건강한 지배구조 개선위원회(이하 개선위)’를 신설했다. 포스코, KT&G 등과 같은 소유분산기업 경영진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였다. 이들 기업은 과거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이 되긴 했지만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에 올라 있어 여전히 정부 입김이 막강하게 작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 [그래픽=김진완] ⓒ르데스크

 

 

국민연금이 신설한 개선위는 기존에 운영하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한층 높인 기구로 평가되고 있다. 수책위는 경영계, 노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외부 전문가 위원들로 구성돼 국민연금의 부적절한 주주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반면 개선위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전문가 위원 10명을 임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나아가 정권 입맛에 맞는 인물을 앉혀 대부분의 의사 결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특히 김 이사장 취임 이후 국민연금이 민간기업 경영개입 의지를 꾸준히 드러냈다는 점은 경제계의 우려를 키우는 대목으로 꼽혔다. 앞서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은 “황제 경영, 셀프 연임에 대한 우려가 없도록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며 민간기업 CEO 인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이사장 역시 2022년 12월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지난해 8월엔 삼성생명·SK하이닉스·하나금융 등 국내 기업 10여 곳에 대한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투자자가 상장사 주식의 5% 이상을 보유할 경우 보유 상황과 목적 등을 공시해야 한다. 보유 목적은 △경영 참여 △일반투자 △단순 투자 등 세 가지로 나뉜다.

 

국민연금은 투자 기업의 CEO 선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지난해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결정했을 때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결국 국민연금의 반대로 구현모 대표와 최측근 윤경림 KT 사장 모두 낙마했다. 국민연금은 얼마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 된 포스코그룹 인선에 대해서도 반대 의지를 피력한 상태다. 현재 포스코홀딩스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주주는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사진=뉴시스]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꾸준히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선임안에 노골적인 반대의사를 표했다. 2020년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전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의 선임안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졌다. 다만 아직까지 국민연금의 금융지주 경영 간섭은 뜻대로 되진 않고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긴 했으나 금융지주 회장 선임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이사장이 나서서 CEO 인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좋은 실적을 낸 CEO의 연임을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 기관인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에 주주권을 행사하면 사기업이 국가 기업처럼 돼 자본시장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며 “국민연금은 각 사안에 대해 면밀한 분석과 더불어 결정 사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연구팀 관계자는 “최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 때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의결권이 정치적 의도를 띄고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주주가치 제고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정기주총 시즌에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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