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의 워너비’ ‘꿈의 직장’ 떠난 그들의 울림 있는 속사정
‘취준생의 워너비’ ‘꿈의 직장’ 떠난 그들의 울림 있는 속사정

흔히들 ‘이직’이라 하면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로 옮기는 것을 상식처럼 여기지만 오히려 요즘 청년세대 사이에선 정반대의 사례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높은 처우를 받다가 규모나 처우가 기존 회사에 못 미치는 회사로 이직을 시도한 청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얼핏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지만 그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 진다. 구체적인 이유는 제 각각이었지만 공통적으로 회사에 소속된 하나의 구성원이 아닌 나로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은 회사로 이직을 결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 자신을 중시하는 청년세대의 가치관이 직업 선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중견, 중견➞스타트업 특이한 이직…“처우 낮아졌지만 자존감 높아져서 만족해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이준혁 씨(31세·남·가명)는 2019년 신입사원으로 SK하이닉스에 입사했다. 입사 초기만 해도 국내 반도체 업계 2위 기업이자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도 서서히 바뀌었다. 처우나 복지 부분에선 크게 불만이 없었지만 변화 없는 일상에 점차 나 자신을 잃고 하나의 부품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 예전과 달리 최근 들어 큰 회사에서 작은 회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결국 그는 규모가 작은 반도체 분야 기업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업무 강도도 높고 처우도 낮았지만 그곳에선 그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업무가 많았다. 회사의 성장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감도 높았다. 이 씨는 “하이닉스에 다닐 때는 똑같은 업무의 반복이라 하루하루 기계처럼 살았다면 지금은 하루하루 보람을 느낀다”며 “처우는 낮아졌지만 자존감은 높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소·중견 기업에서 대기업 이직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개인차가 있겠지만 처우나 복지 이런 부분만 생각해서 무작정 이직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아마 이직하더라도 만족감은 노래가지 않을 것이다”며 “특히 우리 세대는 개인의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조건 외에 자신의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방에 있는 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원장현 씨(31세·남·가명)는 지난 2019년 300명 규모의 기업에 입사해 3년 뒤 규모가 3분의 1로 줄어든 100명 규모의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가 규모가 작은 회사로 이직한 이유는 맡은 업무의 성격이나 조직 분위기가 자신의 성향과 맡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 씨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회사는 나에게 생산직, 하드웨어 셋업 업무를 요구했다”며 “처음 입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부분이 충족이 안 되다 보니 일하는 내내 의욕이 없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아무래도 규모가 좀 있어서 인지 중간관리자, 관리자 등 생각이 다른 기성세대들도 많았고 그들과의 소통도 좀 힘든 부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 성향이 이직 트렌드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사진=뉴시스]

 

원 씨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 주 구성원인데 나름 분위기도 좋고 적응도 쉬운 편이었다”며 “업무 역시 기존에 내가 하고 싶었던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데 하루하루 눈코 틀 새 없이 바쁘긴 하지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힘든지 모르고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교에 위치한 한 게임회사에 재직 중인 홍은빈 씨(27세·여·가명)는 “처음 입사한 회사는 메이저급 대형 게임사였지만 2년 정도 근무하다가 지금의 회사로 옮겼다”며 “예전 회사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고 처우도 나쁘진 않았지만 다닐수록 내가 점점 사라져간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민 끝에 처우가 좀 낮고 규모가 작더라도 나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를 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며 “지금 회사는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됐고 규모도 작다 보니 개개인이 맡은 업무가 많긴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큰 편이다. 회사도 매 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 내가 회사 성장에 일조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낄 때도 많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규모가 큰 회사와 높은 연봉을 선호하는 이직 트렌드 자체가 변화하진 않았지만 일부 반대 모습이 하나 둘 등장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철저한 시스템이 중요시되는 대기업 성향과 맞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비슷한 사례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서진형 경인여대(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자존감이 높고 존재감에 대한 열망도 강한 편이다”며 “이런 성향은 개인 보단 조직을 우선시하고 개인의 성과 보단 조직의 성과를 강조하는 대기업 조직 분위기와는 분명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엔 대기업에 들어가야 성공했다는 인식도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앞으로 외적인 부분 보다 내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과감한 선택을 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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