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눈치라도 보는데”…청년·근로자 전부 ‘노조 비호감’
“재벌은 눈치라도 보는데”…청년·근로자 전부 ‘노조 비호감’

 

▲ 요즘 청년세대는 노조와 재벌을 비교했을 때 오히려 노조에 대한 비호감이 더욱 크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같은 하위 노조 조합원들도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과 같은 상급 노조에 대해 비호감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진=뉴시스]

 

노조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과 근로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비호감 집단’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설립 취지를 외면한 채 오로지 권력 투쟁만을 일삼는 것으로 비춰진 게 결정적 이유다. 그 결과 청년세대는 노조와 재벌을 비교했을 때 오히려 노조에 대한 비호감이 더욱 크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심지어 같은 하위 노조 조합원들도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과 같은 상급 노조에 대한 비호감 비율이 호감 비율을 훌쩍 넘어섰다.

 

과거와 달라진 청년세대 인식 “일자리 주는 재벌이 피해만 주는 노조보다 훨 낫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자체 이미지를 파악하기 위해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요즘 청년들의 재벌과 노조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180도 달라졌다. 만 18~29세 청년만 보더라도 재벌에 대한 호감도는 25.1% 수준인 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대한 호감도는 각각 14%와 17% 수준에 머물렀다. 노조 보다 재벌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청년세대에서 사이에서 노조에 대한 비호감이 커진 배경에는 자신의 앞길에 노조 보다 재벌이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자리가 줄어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임에도 투쟁을 일삼으며 기업 활동을 발목 잡는 노조가 좋아 보일 리 없다는 게 청년세대의 반응이다. 반대로 기업에 대해서는 직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체로 인정하게 되면서 호감도가 점차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 만 18~29세 청년들의 재벌에 대한 호감도는 25.1% 수준인 반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대한 호감도는 각각 14%와 17% 수준에 머물렀다. 노조 보다 재벌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가 전경. [사진=뉴시스]

 

대학생 이수진 씨(22·여)는 “요즘 대기업, 은행 등 흔히들 생각하는 좋은 직장을 구하려면 바늘구멍이나 다름없는 확률을 뚫어야 한다”며 “채용인원은 정해져 있는데 좋은 직장을 원하는 수요는 많다 보니 당연히 취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져 고용투자가 늘어야 취업도 쉬워질 텐데 노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를 벌이니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리 없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 김선우 씨(26·남)는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사실 사회문제에 별로 관심도 없고 해서 노조에 대해서도 따로 생각해 본 적 없다”며 “그런데 취업 준비를 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다 보니 현재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을 높이는 주범 중 하나가 노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져야 고용투자가 늘어나는데 파업이나 시위다 해서 공장가동이 멈추는 일이 허다하고 수익이 날 때마다 임금을 올리라하니 어떻게 우리 같은 청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요즘 청년세대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한 계산적 사고가 기성세대 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노조에 대해 비호감이 큰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세대에게 재벌은 자신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주체, 반대로 노조는 취업을 가로막는 주체로 각각 인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요즘 청년세대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무조건 내 편이라는 인식 보단 어떤 게 옳고 그른지, 또 나에게 어떤 게 더 도움이 되는 지를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 전문가들은 요즘 청년세대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한 계산적 사고가 기성세대 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노조에 대해 비호감이 큰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세대에게 재벌은 자신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주체, 반대로 노조는 취업을 가로막는 주체로 각각 인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노숙농성을 벌이는 노조 조합원과 혹시나 모를 사고 방지를 위해 출동한 경찰들. [사진=뉴시스] 

 

그러면서 “과거 ‘인국공 사태’에서 보듯 젊은층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그동안 노동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사안들이 오히려 자신의 일자리에 위협이 된다고 인식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노동계는 과거의 인식과 소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으니 청년세대 눈에는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노동계가 변하지 않는 한 청년세대의 반노조 성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고 분석했다.

 

조합원도 등 돌린 강성노조…“처우·근무조건 만족하는데 시위·집회 도대체 왜 하나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대표되는 상급 노조는 청년세대 뿐 아니라 하급 노조 조합원들에게도 ‘비호감’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회찬재단이 지난 2월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69세 이하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 조합원 가운데 민주노총에 호감을 갖는 비율은 42.8%에 불과했다.

 

노조 조합원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불신을 갖는 이유는 민주노총이 조합원들과 관계 없는 행보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 꼽혔다. 조직이 비대해지고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관료화·권력화 됐고 지금은 소속 조합원들의 권익이나 처우 대신 조직 전체의 권력 챙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인식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회찬재단이 지난 2월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69세 이하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 조합원 가운데 민주노총에 호감을 갖는 비율은 42.8%에 불과했다. 사진은 2030세대로 구성된 노조단체 ‘새로고침’ 발대식 현장. [사진=새로고침]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다니는 강주원 씨(34·남·가명)는 “우리 회사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다 보니 대부분의 직원이 입사와 동시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다”며 “매 달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이긴 하지만 소속감이나 이런 부분은 크게 체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요즘 민주노총하는 행태를 보면 조합비를 내는 게 과연 맞나 하는 생각 들 때가 많다”며 “주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꽤 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에 근무 중인 이하나 씨(31·여·가명)는 “우리 회사 노조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에 가입돼 있다고 하는데 사실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소속감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며 “오히려 퇴근길 집회나 시위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회사가 대기업 계열사고 하다 보니 처우나 이런 부분에 대해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는 데 굳이 노조를 만들고 상급 노조에 가입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귀띔햇다.

 

서진형 경인여대(경영학과) 교수는 양대노총이 이끄는 우리나라 노동계가 과거의 행태에 머물러 있다 보니 점차 소속 조합원들과의 인식 괴리가 생겨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현재 젊은세대가 갖고 있는 노동계에 대한 인식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면서 “현대 사회에서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복잡해졌는데도 노동계는 제조업 중심의 노동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시대적 요구에 맞춰 노동계도 목표나 인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며 “사측과 임금협상 외에 채용계획을 서로 논의 한다던가 정년연장과 같은 기존 노조 조합원들의 이익 보단 청년 근로자의 처우 개선에 관한 부분을 협상하는 식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짚어내고 이를 관철시켜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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