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왕국이 만들어지는 동안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들만의 왕국이 만들어지는 동안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Le view<219>]-청년 울리는 현실괴리 법(法)(①-대체근로제한) 그들만의 왕국이 만들어지는 동안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임금인상·정년연장 요구하며 툭 하면 파업, 공장 멈춰도 대체인력 못 써

르데스크 | 입력 2023.04.04 16:53

 

▲ 최근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신규 채용을 가로 막는 규제 해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강성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의 근거가 되는 파견금지법 철폐 요구가 특히 거세다. 사진은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소속 노조원들. [사진=뉴시스] 

 

“노조가 ‘임금 올려라, 정년 늘려라’ 요구하면서 파업하면 달래며 들어주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요. 파업 기간 공장은 멈춰있죠. 이런 식으로 인건비는 올라가는 데 생산성은 그대로니 신규 채용은 어려울 수밖에 없죠.”

 

‘기업들이 신규채용에 소극적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인사담당자가 건넨 답변이다. 타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답변 역시 대동소이했다. 파업을 앞세운 처우개선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가 파업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어 기업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부연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노조가 파업할 경우에도 회사는 대체근로자를 투입할 수 없다. 중단된 업무를 도급 또는 하도급 줄 수도 없다. 파업 때문에 공장이 멈춰도 회사는 대응조차 못하고 손실을 그대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기존 인력의 대우가 좋아지면 기업의 신규채용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강성노조 실력행사에 몸살 앓는 산업현장, 천문학적 피해에도 기업은 발만 동동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해양은 초유의 선박 건조 중단 사태를 맞았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 조합원들이 도크를 점령한 채 농성을 벌인 탓이다. 당시 하청지회는 임금인상 30%, 노조 전임자 인정, 대우조선 내 사무실 제공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6월 2일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에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박 건조가 한창인 도크를 점거하며 농성을 벌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선박 건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실력행사는 무려 51일간이나 지속됐다. 선박 건조 중단으로 인한 손실액이 갈수록 커지자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백기를 들었다. 임금 4.5% 인상, 명절 휴가비 50만원과 여름휴가비 40만원 지급 등을 약속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에 따른 손실액 규모가 약 7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 지난해 겨울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산업계가 크게 들썩였다. 물류 운송이 마비되다시피 하면서 각 산업 분야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한 화물연대 노조원들. [사진=뉴시스]

 

지난해 겨울에는 전국 건설현장의 ‘올스톱’ 위기가 닥쳤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물류대란이 벌어진 탓이다. 레미콘, 컨테이너 차량 운전자들로 구성된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나선 이유는 일몰이 예정된 안전운임제 연장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기사가 무리해서 운행하지 않도록 최소 화물운송 운임을 규정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화물운송에 대한 가격하한선이 정해졌다고 보면 된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상당했다. 레미콘 운송이 마비되면서 전국 각 지역에 있는 레미콘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다. 레미콘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전국 각 지역 건설현장도 공사에 차질을 빚었다. 정부가 먼저 파업을 중단하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일부 분야에 한해 업무개시명령까지 발동했지만 사태는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사태는 총파업 돌입 16일 만에 치러진 화물연대의 조합원 투표를 통해 종식됐다. 만약 투표 결과가 달랐다면 초유의 물류대란 사태는 피할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부당한 파업에도 대체인력 투입 못하는 기업들, 강성노조 비위 맞추다 신규채용 여력 감소

 

각 산업 현장에서 크고 작은 파업이 거듭될수록 국민적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한데다 뒤따르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파업이 노조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기업은 대응할 방법이 없어 결국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국민 개개인이 입는 피해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청년들만 놓고 봐도 취업이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기업이 파업을 앞세운 노조의 처우개선 요구를 받아들이면 상대적으로 신규채용 여력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업을 방치하면 공장이 멈춰버리니 기업 입장에선 선택지가 정해져 있는 셈이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결 방법은 기업이 파업에 대한 대응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기업들이 신규채용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기존 인력의 처우개선에 매달리는 이유는 파업을 벌일 경우 더욱 큰 손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파업을 벌이더라도 최소한 공장 가동만 가능하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노조와 대등하게 협상할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법적으로 노조가 일손을 놓더라도 새로운 인력을 대체 투입하거나 다른 업체에 일을 맡기는 것이 금지돼 있다.

 

산업계는 그동안 줄기차게 파업 시 대체근로자 투입을 허용해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내용의 현행 노동조합법은 집단적·획일적 공장 근로를 전제로 설계됐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오로지 처우개선을 이유로 파업을 벌이는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체근로 금지는 과거 강제로 노동을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시기 노조의 정당한 쟁의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마련됐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강제노동은 이미 노조법 외에 다른 법으로도 철저히 금지하고 있고 사회적 잣대도 엄격한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을 막고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체근로를 전면 또는 일부 허용하는 추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항하는 파업이라도 사용자가 파업 기간에 임시 대체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경제적 파업’일 경우엔 영구적 대체근로자 고용도 허용된다. 일본은 직업안정법에서 대체근로를 일부 제한하지만 내부 직원을 통한 대체근로나 기간제 신규채용을 통한 대체근로는 인정하는 게 판례다.

 

 

▲ 현재 해외 각 국에서는 일부 강성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을 막기 위해 대체근로를 전면 또는 일부 허용하고 있다. 사진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멈춰선 레미콘 차량들. [사진=뉴시스]

 

영국은 지난해 7월 인력공급 및 파견법령에 있던 파견 근로자의 대체근로를 제한하는 내용을 없앴다. 이제는 모든 형태의 대체근로가 허용된다. 프랑스는 노동법전에서 파업 중 기간제 근로자·파견 근로자를 이용한 대체근로를 금지하지만 판례를 통해 파업불참 근로자나 도급·하도급에 의한 대체근로를 인정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대체근로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실행이 될 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정의당 등 국회 의석수를 180석이나 넘게 차지하고 있는 야권에서 노조 파업에 힘을 실어주는 법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는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계류 중이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대체근로를 전면허용 해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우리나라는 노조의 쟁의행위 권리는 충분히 보장하고 있으나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사용자의 방어권은 미흡한 편이다”며 “노사갈등으로 인한 산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조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진형 경인여대(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노조 파업에 대한 기업의 대응력이 전무하기 때문에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며 “결국 기존 직원의 처우개선 요구를 계속해서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이러다 보면 신규 채용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강성노조로 유명한 현대차의 생산직 직원 채용이 한동안 멈춰있던 것을 보면 상황이 어떤지 이해가 된다. 결국 기업이 노조파업 대응력을 갖추지 못하면 청년취업난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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