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피해자인데”…결집된 불법 앞에 작아진 공권력
“전 국민이 피해자인데”…결집된 불법 앞에 작아진 공권력
▲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도심 집회로 인한 국민적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예전에는 주말 낮 시간대에 벌어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요즘 들어 평일, 심야 시간대에도 집회가 벌어져 피해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불만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차로를 막고 집회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1. 한 중소제약사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는 안승윤 씨(43·남)는 요즘 들어 부쩍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 업무 특성 상 서울 시내를 차로 이동하는 일이 잦은데 차로를 점령한 집회 인파 때문에 교통체증이 발생해 이동 시간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들러야 하는 거래서 수는 기존과 변함이 없는데 이동 시간이 늘다 보니 혹여나 약속 시간에 낮을까 노심초사하는 일이 잦아졌다. 거래처 방문 시간을 맞추느라 점심을 거르는 일도 부지기수도 퇴근 시간도 늦어졌다.

 

#2. 택시기사 강상원 씨(51·남·가명)는 최근 들어 황당한 일을 겪었다.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명동을 갈 일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평소보다 교통체증이 특히 심했다. 이동 시간이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터기 숫자도 계속해서 올라갔는데 그 때 외국인 손님이 버럭 화를 냈다. 대화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황상 과도한 요금에 항의하는 내용으로 짐작됐다. 결국 강 씨는 도착지 보다 약 5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손님을 내려줬다. 극심한 교통체증의 원인은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집회 때문이었다.

 

#3. 서울시청 인근에 위치한 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홍미정 씨(28·여)는 얼마 전 생전 하지 않던 지각을 하게 됐다.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었으나 시청역에 내려 회사와 가까운 지하철 출구를 두고 멀찌감치 놀아가야 했다. 곳곳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을 보고 겁이 덜컥 났기 때문이다. 결국 홍 씨는 회사와 다소 거리가 있는 다른 출구를 이용했다. 다른 출구로 나와 회사로 가던 인도 곳곳엔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고 있는 다른 집회 참가자들도 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도심 집회로 인한 국민적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예전에는 주말 낮 시간대에 벌어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요즘 들어 평일, 심야 시간대에도 집회가 벌어져 피해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불만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이동시간 증가, 소음으로 인한 건강피해, 고성방가, 노상방뇨 등 혐오 행위로 인한 불쾌감·공포감 생성 등 피해 종류도 다양하다.

 

집회 피해로 인한 분노는 정부를 향하고 있다. 공공의 피해를 유발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미온적 대처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헌법에서 명시된 ‘집회의 자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의 자유권 행사로 인해 공공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만든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또한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피해 입은 국민의 분노는 결국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바뀔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 빙자한 타인 피해 유발 행위에 국민 피해 확산, 경찰은 소극적 대응만

 

우리나라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선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등 총 4개 항으로 구성돼 있다.

 

▲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달 16∼17일 양일 간 노숙 집회를 벌였다. ‘야간문화제’라는 이름을 내세운 변칙적 집회였지만 경찰은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장소 인근에서 노숙을 하고 술판을 벌여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진=뉴시스]

 

가장 오래된 기본권인 ‘자유권’의 일종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이러한 내용을 헌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만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과정에서 공공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위 법률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소위 ‘집시법’이라 불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그 중 하나다. 집시법 역시 ‘집회의 자유’에 대해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한 제한을 가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지난 1962년에 제정됐다.

 

집시법의 내용은 집회로 인한 다수의 피해 발생 우려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옥외집회의 사전 신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해산된 정당의 목적 달성을 위한 집회나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금지 △야간집회 금지 △헌법재판소, 국회 등 국가 주요 시설 100미터 이내에서의 집회 금지 △질서유지선 제도 △확성기 등 사용의 제한 등이다. 대부분 선량한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집시법은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의 내용을 일부 제한한다는 점에서 현실 적용에 제약을 받은 경우가 많다. 헌법의 가치를 앞세운 무분별한 집회·시위가 빈번하게 벌어지는데도 집시법 위반 처벌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 그 증거다. 정부의 대처 또한 소극적인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서 집회를 주체하는 측의 행동은 갈수록 과격해졌고 반대로 정부의 대처는 갈수록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경찰 강력대응 엄포에도 무분별한 집회·시위는 여전히 ‘ing’

 

최근 들어 경찰이 공공의 피해를 유발하는 무분별한 집회·시위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는 모습이다. 당장 최근에 벌어진 일만 보더라도 집시법의 존재 여부에 의구심이 뒤따른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달 16∼17일 양일 간 노숙 집회를 벌였다. ‘야간문화제’라는 이름을 내세운 변칙적 집회였지만 경찰은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장소 인근에서 노숙을 하고 술판을 벌여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 다수의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결국 비판의 화살은 정부를 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치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불법 행위가 계속 벌어지는데도 제대로 된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단속과 처벌 권한을 지닌 정부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윤희근 경찰청장. [사진=뉴시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5일에도 1박 2일의 대법원 앞에서 노숙 집회를 강행했다. 앞서 소극적인 대처로 지적을 받은 경찰은 이날 집회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한 모습을 보여 결국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편까진 막지 못했다. 참가자들을 직접 들고 이동시키는 등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느라 해산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탓이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김시윤 씨(40·남·가명)는 “퇴근하려면 서초역 앞을 지나야 하는데 일대 교통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며 “심지어 서초역 사거리 인근에선 경찰이 집회 인원을 해산시키느라 지나가는 차를 다시 유턴 시키는 모습까지 연출됐다”고 말했다. 이어 “도대체 언제까지 집회나 시위로 선량한 국민이 고통받아야 하나”라며 “공공의 안전과 편익을 도모해야 할 정부는 도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결국 비판의 화살은 정부를 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치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 불법 행위가 계속 벌어지는데도 제대로 된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단속과 처벌 권한을 지닌 정부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이 연속해서 벌어질 경우 범인 보단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과 같은 원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지금처럼 불법 집회·시위가 도심 곳곳에서 벌어져 시민 피해가 커질 경우 종국엔 정부 책임론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고 불의의 사고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경찰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불법을 눈감는 듯한 태도를 보여선 안된다. 우리 사회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점을 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오후 5시까지 허용된 집회 시간도 무시하고 경범죄 처벌대상인 음주소란, 쓰레기투기, 노상방뇨를 거리낌 없이 자행해 서울 도심을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며 “그 결과 시민들은 출퇴근길에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어야 했고 인도와 도로는 술병과 쓰레기, 악취로 가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미온적 대처로 인해 민주노총의 불법 노숙집회가 가능했다고 본다”며 “문재인 정부 당시 느슨해진 집회와 시위 대응 체계가 관행처럼 굳어진 탓인데 윤석열 정부의 경찰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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