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집회지옥…500만 직장인은 체념의 ‘셀프 대피령’
예고된 집회지옥…500만 직장인은 체념의 ‘셀프 대피령’

 

▲ 지난 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오는 15일까지 약 2주간 서울 도심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서 집회·시위를 동반한 대대적인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직장인들은 벌써부터 출·퇴근길 교통체증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직장인은 휴가나 연차 사용까지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세종대로 차로를 막고 시위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오는 15일까지 약 2주간 서울 도심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서 집회·시위를 동반한 대대적인 총파업을 예고한 탓이다. 앞서 민주노총의 도로점령 시위에 출·퇴근길 곤욕을 치렀던 직장인들은 또 다시 예고된 도심 대규모 시위에 벌써부터 걱정 섞인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일부 직장인은 휴가나 연차 사용까지 염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도심 한복판 차로 4개 막고 벌인 시위에 서울 출·퇴근 직장인들 ‘교통지옥’ 고통

 

민주노총은 지난 5월 16~17일 양일에 걸쳐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당시 약 2만4000명(경찰추산)의 인원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4개 차로를 막고 집회를 진행했다. 집회는 당초 오후 5시까지로 허가됐지만 민주노총은 ‘이태원 참사 200일 추모대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집회를 이어나갔다. 결국 집회는 오후 8시가 넘어서야 끝났고 수많은 인파가 해산하는데 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최종적으론 9시가 넘어서야 상황이 마무리됐다.

 

이날 진행된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로 서울 도심 전체가 사실상 마비되다시피 했다. 서울에서 교통량이 많기로 손꼽히는 세종대로 차로가 집회 인원과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로 채워지다 보니 차량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졌고 그 여파는 서울 전체로 확산됐다. 개인적·공무상의 이유로 이동을 해야 하는 수많은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날 서울 도심을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소의 3~4배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 5월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로 서울 도심 전체가 사실상 마비되다시피 했다. 서울에서 교통량이 많기로 손꼽히는 세종대로 차로가 집회 인원과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로 채워지다 보니 차량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졌고 그 여파는 서울 전체로 확산됐다. 사진은 퇴근시간대 한 지하철역의 모습. [사진=뉴시스]


가장 큰 피해자는 직장인들이었다. 약속된 시간을 어기고 집회가 계속되면서 퇴근시간대까지 교통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개인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물론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도 곤욕을 치러야 했다. 교통체증 때문에 아예 차를 회사에 두고 퇴근하려는 직장인들이 대중교통으로 몰린 탓이다. 이날 온라인커뮤니티나 SNS 등에서는 지하철에 사람이 몰린 탓에 몇 번을 그냥 보내다 보니 퇴근시간이 2배 이상 소요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교통상황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개인차량을 이용해 퇴근했던 직장인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평소 1시간 걸리던 퇴근 시간이 적게는 2시간, 많게는 3시간 이상 소요되다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교통지옥을 유발한 민주노총에도 화살이 쏘아졌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노총 공화국” “서울 경제활동 인구 500만명의 불편을 유발한 2만5000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 “대한민국 서열은 직장인, 공권력, 민주노총 순” 등 불만을 넘어 자조 섞인 반응이 들끓었다.

 

“1~2만명 벌이는 시위에 500만 서울시민이 피해…이 나라가 법치주의 국가 맞나”

 

앞서 한 차례 곤욕을 치렀던 직장인들은 이번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 예고에 상당히 격양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수차례 불편을 끼친 것도 모자라 대놓고 불편을 끼친다고 예고까지 하고 있다며 이는 수백만에 달하는 직장인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시 전체 인구수는 약 942만명이다. 이 중 경제활동 인구는 약 529만명에 달한다. 경제인구 5명 중 1명 가량은 자영업자이며 나머지는 전부 직장인이다.

 

광화문에 위치한 한 대기업 본사에 재직 중인 홍은철 씨(41·남)는 “지난 5월 시청 주변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하는 바람에 평소 40분 걸리던 퇴근이 2시간 가까이 걸렸다”며 “사전에 시위가 허가된 시간이 정해졌을 텐데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까지 도로를 점거한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또 그것을 그대로 방치한 경찰도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우리나라가 법치국가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 직장인들은 이번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 예고에 상당히 격양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수차례 불편을 끼친 것도 모자라 대놓고 불편을 끼친다고 예고까지 하고 있다며 이는 수백만에 달하는 직장인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진은 대통령실 일대에 부착된 집회 금지 안내 표지판. [사진=뉴시스]

 

이어 “문제는 이달 중순까지 이미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고 예고한 상태인데 언제 어디서 벌일지 모른다는 점이다”며 “결국 옴짝달싹 못하고 똑같은 피해를 또 입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미리 뉴스를 보고 차를 집에 두고 온다는 동료들이 꽤 되고 심지어 몇몇은 아예 연차를 쓸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부연했다.

 

시청 인근에 위치한 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김지은 씨(28·여)는 “5월에도 회사 앞에 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여서 인도부터 차도까지 주변 전체가 엄청 혼잡했었다”며 “당시 지하철역으로 사람이 몰리면서 세 번이나 그냥 보내고 간신히 타다 보니 퇴근시간이 기존에 비해 40분 넘게 늦어졌고. 심지어 다음날도 주변에 시위하던 사람들이 노숙을 해서 악취도 심하게 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번달 중순까지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시위를 벌인다는데 벌써부터 출·퇴근이 걱정이다”며 “적어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 텐데 왜 소수가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상황을 정부가 계속해서 방치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용산에 위치한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재직 중인 황수연 씨(34·여)는 “대통령실이 삼각지역으로 옮겨 온 후부턴 회사 주변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며 “출근 시간대부터 퇴근 시간대까지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가끔 도로를 막고 시위를 진행하는 탓에 낮에 외부 업무를 보려면 예전보다 최소 30분은 일찍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는 이달 중 집시법 제재 규정을 개정하고 집회·시위 소음 기준을 대폭 강화한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따르면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안건에 대한 국민 의견은 3일 기준 추천 12만9416건(70.8%), 비추천 5만3288건(29.1%) 등으로 최종 집계됐다. 사진은 경찰과 대치 중인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진=뉴시스]

 

이어 “이달 중순까지는 아예 대놓고 시위를 한다고 예고했다고 하는데 또 얼마나 혼잡스러울 지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며 “예전 70~80년대 같은 분위기도 아니고 집회·시위의 자유도 좋지만 다수의 피해를 방지하는 안전장치 정도는 마련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소수권력에 의해 다수의 피해가 당연시 여겨지는 사회가 될까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연일 계속되는 집회·시위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고조되자 정부는 이달 중 집시법 제재 규정을 개정하고 집회·시위 소음 기준을 대폭 강화한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따르면 ‘집회·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 안건에 대한 국민 의견은 3일 기준 추천 12만9416건(70.8%), 비추천 5만3288건(29.1%) 등으로 최종 집계됐다. 직전 안건인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안건’이 총투표 5만8251건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30배가 넘는 참여도를 보였다.

 

대통령실이 집시법 개정 작업에 나선 배경에는 지난 5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광화문 세종대로 등 서울 도심에서 노숙집회를 벌이는 과정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고조된 점이 자리하고 있다. 법 규제 강화 등 집회·시위 관행을 바로잡아 달라는 민원이 쇄도해 결국 대통령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실은 13만여 건에 달하는 국민 의견을 분석해 국민제안심사위원회에 결과를 보고하고 법 개정 사항을 담은 권고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별도로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은 ‘공공질서 확립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개정을 논의할 주요 사안으로는 △야간 집회 제재 규정 개정 △집회 소음 데시벨(㏈) 기준 강화 △도심 주요 도로 집회·시위 제한 시행령 준수 등 세 가지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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