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외제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청라 전기차 화재사고 이후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에서 저가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위험한 차로 소비자들의 인식이 180도 바뀌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브랜드 인식 하락이 전기차를 넘어 내연기관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벤츠 EQE 350+ 차량에서 갑작스럽게 화재가 발생해 87대가 전소되고 793대가 그을리는 피해가 발생했다. 또 해당 아파트 단지 내 대규모 정전과 단수가 이어지면서 입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벤츠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해당 전기차 모델에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돼있었고, 상위 모델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벤츠를 둘러싼 공포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또 다른 자동차보다 비싸면서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사실에 겉만 번지르르한 브랜드라는 인식도 함께 확산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벤츠를 비하하는 ‘짱츠’(중국산+벤츠)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벤츠는 CATL과 파라시스사 배터리를 사용했다. 모두 중국 배터리 회사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제품에 비해 20~30% 이상 가격이 낮다. 특히 파라시스 배터리는 중국 현지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는 비주류다.
심지어 중고차 업계에서도 벤츠 전기차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케이카(K car) 등 중고차 플랫폼에 따르면 화재 이후 벤츠 전기차 물량이 늘어났고 가격 7000만원대에서 5000만원대까지 무려 2000만원 가까이 하락했다. 또 전기차 인식 저하로 판매가 되지 않아 벤츠 전기차 자체를 취급하지 않는 업체도 증가하고 있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화재사건 이후 벤츠 전기차 매물이 늘었다”며 “급매물인 만큼 가격이 저렴해서 초기에 몇 개 구매했지만 팔리지 않을 것 같아 더 이상 매입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자 벤츠 전기차 구매자들 사이에서는 후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벤츠 전기차 소유자는 “벤츠를 보고 좋은 차 탄다라는 소리를 들을 시대가 지났다 해도 지금처럼 달리는 폭탄 취급을 받을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남들보다 비싼 돈을 주고 구매했음에도 오히려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냥 국산차 풀옵션을 살 걸 괜히 벤츠 전기차를 샀다”고 밝혔다.
전기차 오너들뿐만 아니라 내연기관 오너들도 속이 쓰리긴 마찬가지다. 벤츠 GLS 시리즈 타고 다니는 이은경(48) 씨는 “최근 벤츠 화재사고를 언급하면서 내 차는 괜찮냐는 소리를 들었다”며 “GLS는 애초에 전기차가 아니라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고 답했다.
벤츠를 꿈꿨던 소비자들도 해당 사건으로 다른 차를 알아보는 분위기다. 내년 은퇴와 함께 벤츠 GLA 구매를 생각했던 김옥현(60) 씨는 “지금까지 국산차를 타왔던 만큼 마지막 차로 오랫동안 꿈꿨던 벤츠를 구매할 계획이었다”며 “그런데 최근 사건으로 벤츠가 값만 비싸게 받는 기업 같아 보여 BMW나 볼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밝혔다.
벤츠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판매량 1위를 기록하다가 지난해 BMW에 1위를 뺏겼다. 올해 1위를 재탈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전기차 화재에 대한 여론을 진화하기 전까지는 목표 달성이 힘들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벤츠 전기차 사건으로 하락한 브랜드 가치는 내연기관 모델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벤츠는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명성에 맞게 급이 높은 제품을 써야 했다”며 “이번 사고로 벤츠 이미지 실추는 피할 수 없어 보이고 이는 기존의 내연기관 차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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