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범죄의 비정상 결말…피해자 평생 고통, 가해자 거리 활보
몰카 범죄의 비정상 결말…피해자 평생 고통, 가해자 거리 활보
[사진=뉴시스]

“피의자를 징역 O년O월에 처한다. 다만 판결 확정일부터 O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그동안 불법촬영(이하 몰카) 관련 범죄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주문 중 하나다. 흔히 ‘집행유예’라 불린다. 범죄 사실은 인정되지만 일정 기간 형 집행을 미뤄주고, 그 기간이 경과할 경우 형 집행을 하지 않는 판결이다. 피의자 입장에선 감옥에 수감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보니 사실상 법원의 선처나 다름없는 판결로 인식된다.

 

지하철·화장실·탈의실 몰카범부터 심신상실 시킨 후 간음·몰카 범죄자까지 전부 ‘집행유예’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에 따르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버스정류장 등에서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무려 8차례에 걸쳐 몰래 촬영한 A씨에게 1심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했다. 비슷한 시기 남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척 다른 사람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고 화장실 등에서도 같은 행위를 저지르다 붙잡힌 B씨도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소년이고 초범이라는 점이 집행유예 판결의 이유였다.

 

지난해 6월 지하철역 등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해 여성의 다리와 허벅지 부분을 몰래 촬영하는 등 무려 5차례에 걸쳐 유사 범죄를 저지르다 적발된 C씨는 1심에서 벌금 500만원형을 받는 데 그쳤다. 피의자가 외국인이라 한국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이수명령을 통한 재범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초범인 점을 반영했다는 게 1심 재판부의 양형 이유였다.

 

▲ 손지잡 형태를 한 불법촬영 기기. [사진=뉴시스]

 

범행 자체가 상당히 충격적임에도 결국 집행유예로 마무리된 사건도 존재한다. 범인이 피해자의 어느 신체 부위를 어떻게 만졌는지 등 충격적인 범행 과정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판결문에 적시될 정도로 범죄 사실이 명확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범인은 간음을 시도하기 전에 피해자를 심신상실 또는 항거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고 이를 촬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고작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이었다.

 

아예 재판조차 받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고 있는 136개 해외 서버 사이트를 수사기관에 고발했고 총 49명이 불법 촬영물 유통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중 42명이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불기소처분(不起訴處分)’이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검사의 처분을 말한다. 사이트 운영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거나 운영자는 특정했지만 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불기소처분의 이유였다.

 

“몰카범죄는 인권침해 범죄, 솜방망이 처벌로는 몰카공화국 오명 못 벗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 안팎에선 불법촬영(이하 몰카) 범죄의 처벌기준 상향이 시급하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범죄 발생 건수가 갈수록 늘고 있는데다 행위 자체도 점차 악랄해지고, 무엇보다 평생 상처를 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의 고통 정도에 비해 처벌 수위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주장이다.

 

직장인 강수진 씨(32·여)는 “직접 당해보진 않았지만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몰카에 한 번 당하고 나면 불안감과 공포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들었다”며 “만약 촬영물이 유포까지 된다면 피해자는 평생 낙인을 찍힌 채 살아 간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디지털 기술이 진화할수록 몰카 범죄도 갈수록 늘어나고 반대로 적발은 더욱 어려워질 텐데 지금과 같은 처벌 수위는 범죄를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영부인을 불법 촬영한 인물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통상 불법촬영 범죄는 타인을 몰래 촬영한 행위 자체 보단 촬영의 목적에 따라 성(性) 범죄 처벌 등의 법을 근거로 양형이 결정된다”며 “그러나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몰카 범죄에 대한 판결 사례가 다른 범죄보다 적다 보니 강력한 처벌이 가해지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늘고 몰카 관련 기술도 갈수록 진화할텐데 그러면 관련 범죄가 더욱 빈번해지고 피해자도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지금과 같은 접근으로 문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라도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을 대폭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몰카 범죄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누군가의 행동이나 모습을 몰래 촬영하고 이를 유포까지 한다는 점에서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는 행위로 봐야한다”며 “인간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인권을 침해하고 경시한다는 점만 놓고 보면 살인죄에 가까운 무거운 처벌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몰카 범죄 처벌기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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