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님아, 공멸의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데스크칼럼]“님아, 공멸의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오주한 정치부장

창작연대 미상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또는 공후인)는 문헌에 기록된 우리 민족 최초의 시(詩)다. 고조선(古朝鮮)에 살았던 한 백수광부(白首狂夫‧백발의 광인)의 아내가 저자인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두 부부의 비극적 공멸에 대한 백성들의 안타까움이 절절이 녹아 있다.

 

공무도하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무도하(公無渡河‧그대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공경도하(公竟渡河‧님은 끝내 강을 건너셨네) 타하이사(墮河而死‧물에 잠겨 눈 감으시니) 당내공하(當奈公何‧가신 님을 어이할꼬)”

 

공무도하가가 등장하는 책은 후한(後漢) 말기 학자였던 채옹(蔡邕)이 엮은 금조(琴操)다. 이 책에는 공무도하가가 쓰여진 배경이 상세히 담겨 있다.

 

머나먼 과거, 나루터를 지키던 고조선의 진졸(津卒) 곽리자고(霍里子高)는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강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곽리자고는 흰 머리를 풀어헤치고서 광기에 젖은 한 남성이 술병을 든 채 강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남성의 아내는 절규하며 말렸지만 남성은 끝내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 떠오르지 않았다. 넋이 나간 채 집에서 공후(箜篌‧하프처럼 생긴 동북아의 전통 현악기)를 갖고 나온 아내는 주저앉아 악기를 타며 구슬프게 공무도하가를 불렀다. 노래를 마친 아내는 남편의 뒤를 따라 강물에 몸을 던졌다.

 

마음이 심란해진 곽리자고는 귀가해 두 부부의 비극적 최후를 아내인 여옥(麗玉)에게 털어놨다. 여옥은 이를 시로 남겼으며 이 노래를 들은 이들 치고 눈물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후 노래는 여옥의 이웃 여성이었던 여용(麗容)에게 전수됐다.

 

백수광부의 어리석은 행동과 그에 따른 아내의 희생 등 공멸은 고조선 말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위만(衛滿‧생몰연도 ?~기원전 2세기 추정)은 전한(前漢)의 이성(異姓) 제후국이었던 연(燕)나라 출신 인물이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항우(劉邦)를 무찌른 뒤 중원을 통일하고서 공신들에게 땅을 분봉(分封)했다. 전쟁에서의 이렇다 할 공적은 없었지만 한고조의 죽마고우였던 노관(盧綰)은 연왕(燕王)에 봉해져 변경의 만리장성을 지켰다.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한고조는 한신(韓信)‧팽월(彭越)‧영포(英布) 등 개국공신‧이성제후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기 시작했다. 언제든 반란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노관은 다음은 자기 차례라 생각하고서 불안에 떨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조정에 입관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끝내 모반을 일으킨 노관은 진압군에게 패한 뒤 흉노(匈奴)로 달아났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위만도 1000여명을 이끌고 한고조를 피해 고조선에 망명했다.

 

당연히 위만은 국가기밀을 공유할만한 위치의 인물이 아니었다. 고조선 조정으로선 그를 경계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조정은 위만에게 박사(博士) 벼슬을 내려 크게 신임했다. 그것도 모자라 100리의 땅까지 떼어주고 서쪽 변방을 지키도록 했다. 기록에는 명확하지 않지만 위만의 지위가 지위인 만큼 그에게 고조선의 각종 기밀들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크다.

 

위만은 결국 연나라 유민들을 규합한 뒤 고조선을 배신하고서 반란을 일으켜 왕검성(王儉城)을 함락해 기원전 194년 왕위를 찬탈했다. 단군왕검(檀君王儉) 때로부터 이어진 단군조선 왕족 혈통은 끊어지고 대신 위만조선이 들어섰다.

 

위만의 쿠데타는 나비효과도 일으켰다. 한나라와 적극적으로 사신을 주고받던 위만조선마저 기원전 108년 한무제(漢武帝)와의 왕검성전투에서 패해 멸망했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 등지에는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돼 한(韓)민족에 대한 한인(漢人)들의 기나긴 식민지배가 시작됐다. 2등 시민으로 전락한 고조선인들은 지도부의 가벼운 처신을 원망하며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발(發) ‘대통령실 공천개입 의혹 녹취록’에 여당이 발칵 뒤집혔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태 최고위원에게 정부 대일(對日)정책을 옹호하는 대가로 공천을 보장하려 했다는 게 녹취록 내용이다. 태 최고위원은 입장문에서 “녹취에서 나온 제 발언은 전당대회가 끝나고 공천에 대해 걱정하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고 정책 중심 의정활동에 전념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장 섞인 내용”이라며 발언 사실을 인정했다.

 

해당 녹취록은 태 최고위원과 그의 보좌진들 회의 과정에서 녹음됐다고 한다. 이 수석이 정말로 태 최고위원에게 ‘딜’을 제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를 떠나 태 최고위원이 이러한 중차대한 발언을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주변 다수인에게 털어놨다는 게 많은 이들에게 경악으로 다가온다.

 

녹취록 사건에 따른 민심악화는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 주장했던 친중(親中) 의혹 정치세력의 내년 권력 강화, 4년 뒤 재등장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녹취록 사태에 박수 치는 건 ‘제2의 한사군’을 노리는 중국 정부가 될 수 있다. 이번 녹취록 사태를 두고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단군조선 조정의 어리석은 행동은 한사군 시대 개막의 단초를 제공하며 한민족을 도탄으로 밀어 넣었다. 아내의 목숨마저 앗아가고 한 집안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백수광부의 어리석은 행동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더 이상의 눈물, 더 이상의 통곡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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