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다발 전세사기 이전 상황은 정책실패→시장과열→영끌투자
동시다발 전세사기 이전 상황은 정책실패→시장과열→영끌투자

 

▲ 최근 전국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발한 전세사기 사태를 일으킨 원인으로 전임 정부와 당시 여당의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가 지목되고 있다. 전세사기 대상 주택 중 상당수가 고강도 규제로 생겨난 ‘갭투자’로 거래된 주택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빌라 밀집지역 전경. [사진=뉴시스]

 

최근 기승을 부리는 전세사기는 피해자 대부분이 무주택 서민인데다 피해액 자체가 힘겹게 모은 ‘내 집 마련의 종잣돈’ 성격을 띠고 있어 ‘최악의 악질범죄’로 불린다. 사기 피해자 중 일부가 좌절감과 상실감을 이겨내지 못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사례까지 등장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서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전국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발한 전세사기 사태를 일으킨 원흉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지목되는 아이러니 한 상황도 등장해 이목이 쏠린다. 정확히는 직전 정부, 그리고 과거 여당이었지만 현재는 야당이 된 정당이 만들어 낸 고강도 부동산 규제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결정적 원인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전세사기 대상 주택 중 상당수가 고강도 규제로 생겨난 ‘갭투자’로 거래된 주택이라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급격한 집값 하락에 속 타는 집주인들…“전세보증금 일부 돌려줄 테니 재계약 합시다”

 

서울시가 서울주거포털에 공개한 ‘전·월세 시장지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전세가율은 아파트 55.2%, 연립·다세대 주택 76.8% 등이었다. 전세가율은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을 나타낸 수치로 비율이 높을수록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가율이 100%을 넘는 주택을 일컬어 흔히들 ‘깡통주택’이라 부른다. 이를 감안했을 대 빌라가 아파트에 비해 깡통주택으로 전락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25개구 가운데 빌라 신규계약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영등포구(86.3%)였다. 또 △도봉구(85.2%) △강북구(84.9%) △성동구(84.1%) △구로구(84.0%) △송파구(82.7%) △광진구(83.4%) △중구(82.9%) △강서구(81.4%) △강동구(80.2%) 등이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 [그래픽=석혜진]ⓒ르데스크

 

이어 △성북구(79.0%) △양천구(77.9%) △중랑구(77.8%) △동대문구(77.4%) △은평구(76.6%) △서초구(75.4%) △관악구(74.5%) △강남구(74.2%) △금천구(72.7%) △동작구(72.0%) △마포구(67.0%) △노원구(65.8%) △서대문구(62.9%) △종로구(55.5%) △용산구(50.9%) 등의 순이었다.

 

주목되는 사실은 현재 집계된 전세가율이 어디까지나 신규 계약만을 집계한 수치라는 점이다. 기존에 계약한 빌라의 경우 현 시세 대비 계약 당시의 전세가격의 비율은 이미 100%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상적으로 전세계약 기간은 2년으로 설정하는데 최근 1~2년 사이 집값이 급격하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안팎에선 전세가율이 100%를 넘는 현상을 일컬어 ‘역전세’라 부른다.

 

역전세 현상이 발생할 경우 재계약 시 전세가격을 낮춰서 재계약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이미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서울 연립·다세대의 순수 전세거래 가격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1471건 가운데 55%인 804건의 전세가격이 하락했다.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같은 단지, 같은 면적에서 전세 계약이 1건이라도 체결된 거래의 최고 가격을 서로 비교한 결과다.

 

특히 아파트 신규 입주물량이 많았던 지역에서 전세가격 하락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아파트 전세 매물이 늘어나면 그만큼 빌라 수요가 감소해 시세 하락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서울 25개 지역구 중 은평구는 전세 거래 81건 중 54건이 하락 거래(67%)였다. 강남구도 55건 중 34건(62%), 서초구 72건 중 43건(60%)이 각각 하락 거래로 조사됐다. 도봉구는 전체 거래 24건 중 하락 거래가 16건에 달했고 양천구도 60건 중 38건이 하락 거래였다.

 

무분별한 규제가 부른 비극…집값폭등➞갭투자 성행➞집값하락➞전세금 미반환

 

 

▲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갭투자’는 자신의 자본은 소액만 투입하고 나머지 비용은 전세금으로 충당하는 주택매입 방식을 말한다. 세금이나 기타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매매 차익이 기대될 때 시도하는 방식이다. 앞서 문재인정부 시절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강행처리로 전세·매매 시세가 폭등했을 때 이러한 갭투자가 성행했다. 사진은 전세사기 관련 정부 대책을 발표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뉴시스]

 

문제는 이러한 역전세 현상이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의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임대인이 전세금 일부를 돌려주는 형태로 가격을 내려 재계약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땐 상황이 심각해지는 탓이다. 임대인이 전세금을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해버리는 등의 이유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 거의 대부분 전세사기로 이어진다.

 

일례로 지난해 중랑구를 비롯한 서울·수도권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전세사기의 경우 빌라, 다세대주택 등을 약 400채 보유한 단 1명의 임대사업자가 세금 체납으로 모든 주택을 압류당하면서 촉발됐다. 해당 임대사업자가 미납한 종합부동산세는 무려 36억원에 달했다. 해당 임대사업자는 정부 규제의 여파로 인한 전세가격 급등 시점에 ‘갭투자’ 방식으로 빌라 수백 채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갭투자’는 자신의 자본은 소액만 투입하고 나머지 비용은 전세금으로 충당하는 주택매입 방식을 말한다. 세금이나 기타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매매 차익이 기대될 때 시도하는 방식이다. 앞서 문재인정부 시절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강행처리로 전세·매매 시세가 폭등했을 때 이러한 갭투자가 성행했다. 당시만 해도 ‘무조건 사자’ 심리가 만연해 있었다.

 

▲ [그래픽=석혜진]ⓒ르데스크

 

그러나 재작년 말부터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고 정권 교체 이후 윤석열정부의 집값안정화 조치가 이뤄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집값이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부담도 늘면서 갭투자자들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주택을 안 팔자니 세금과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고, 팔자니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이 부족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결국 그들의 마지막은 파산이었다.

 

실제로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강제경매개시결정이 등기된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주택 등) 수는 총 4845개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3701개) 대비 30.9% 급증한 수치다. 강제경매는 채무자가 대여금 등을 변제기일까지 갚지 못할 때 발생한다. 최근 늘어난 강제경매는 상당수가 갭투자와 영끌 등으로 무리하게 주택을 구입한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진행되는 경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갭투자자들이 세입자에게 제때 채무상환을 하지 않으면 세입자에 의해 강제경매가 이뤄지는데 지금과 같이 집값이 하락한 시기엔 낙찰가가 전세가 보다 낮아 결국 세입자 피해는 불가피하다”며 “갭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또 갭투자가 성행하는 상황을 만든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고 진단했다.

 

서진형 공동주택포럼 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최근 벌어지는 전세사기 유형 중 상당수가 갭투자로 매입한 주택에 들어갔다가 집주인이 파산하면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케이스다”며 “결국 갭투자가 성행하도록 만든 실패한 정책이 지금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잘못된 정책을 지금이라고 폐기하고 정책을 강행한 주동자들 또한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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