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보는 한국 전세제도…“얼핏 좋아 보이는데 위험할 듯”
외국인이 보는 한국 전세제도…“얼핏 좋아 보이는데 위험할 듯”


▲ 최근 부동산 시장이 전세 사기로 도마위에 올랐다. 국내에만 존재하는 전세 시스템은 그동안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오면 정상적으로 작동해 왔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최근 빌라 경매 상담을 도와준다는 카드를 내건 부동산. ⓒ르데스크

 

최근 전세 사기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인 전세에 대해 외국인들은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세 제도가 국민들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는 좋은 제도지만 허점이 많은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는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일반적으로 주택 매매 가격의 60~80%를 일시금으로 지불하고 계약기간 동안 거주하는 시스템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때 일시금 전액 반환받는다. 해외에서는 대부분 월마다 주거비를 지급하는 ‘월세’가 자리 잡은 반면, 국내에서는 월세보다 전세 비중이 높다.

 

사실 전세 제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임대차계약 문화는 아니다. 과거 15세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전세란 개념이 존재했고, 인도와 볼리비아에도 일부 존재하고 있다. 다만 전세 제도가 있는 국가들은 금융제도가 불안정한데 반해 경제 수준이 높은 국가 중 전세 제도가 아직까지 살아남은 국가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 6명중 1명 월세 못네는 상황…“우리도 전세 있었으면”

 

▲ 대부분 해외에서는 전세가 없고 월세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월세는 전세보다 비싸, 일부 국가에서는 월세에만 월소득의 30%를 넘게 쓰기도 한다. 사진은 미국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뉴욕 월세가격으로 월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엄청난 월세가격을 자랑한다. [사진=부동산사이트갈무리]

 

전세를 처음 들어본 외국인들은 전세가 굉장히 이상한 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전세는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이익이 있는 제도다.

 

먼저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집을 얻을 수 있고 미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 자가를 구매할 수도 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보증금을 은행 예금에 넣고 월세처럼 밀릴 걱정 없이 예금을 받거나 다른 사업에 투자할 수도 있다.

 

KB부동산에서 발표한 ‘월간시계열’에 따르면 2월 기준 전국 전세가율은 66%다. 지역별로 수도권 59.2%, 지방 76.0%, 5개 광역시 68.1%, 세종시 45.6%로 집계됐다.

 

애리조나에 거주하는 캣 스파윗 카탈레아(Cat Supwit Ctaleya·29) 씨는 “미국에서는 굉장히 생소한 제도라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며 “막상 들어보니 생각보다 좋은 제도인 것 같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월세 부담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국제사회보장 동향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성인 인구의 14%가 주거비를 체납하는 월세를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6명 중 1명이 월세를 부담하지 못하는 재정상황에 처해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미국 평균 소득 대비 월세 비율은 30%를 돌파했다. 월세입자들은 소득의 30%를 월세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뉴욕이나 LA, 마이애미 등 부동산 가격이 높은 지역은 소득의 60% 이상을 월세로 지출하기도 한다.

 

캣 씨는 “대학 졸업 후 뉴욕에 취직한 친구들은 소득이 높지만 월세로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임금 인상보다 월세와 금리가 더 올라가면서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다”며 “만약 미국에도 전세 제도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 고용주 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아파트 평균 임대료는 2017년 대비 28% 상승했다. 미국 전체 월평균 임대료는 1940달러(한화 약 250만원)이다. 대다수 재정관리사들은 월 소득의 30%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지역별 차이가 있지만 미국 대도시에서 월세를 살면서 안정적인 재정상태를 유지하려면 월 800만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전세 유용하지만 알고보면 굉장히 위험한 제도

 

▲ 국내 전세 제도는 매우 효율적인 중간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외국인들은 전세를 리스크가 있는 제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은 호주 시드니 거리로, 호주도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월세 부담을 느끼는 세입자들이 증가하고있다. [사진=독자제공]

  

전세 제도를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던 반면, 굉장히 위험한 제도라는 견해도 있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임대인을 어떻게 신용하고 큰돈을 맡길 수 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금 국내를 강타한 전세 사기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발생했다.

 

콜로라도에서 부동산업자로 일하고 있는 에리카 킴(Erika Kim·여) 씨는 “전세 제도는 장점도 많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많다”며 “한국처럼 부동산 가격이 몇십 년 동안 오르거나 안정적인 경우에는 잘 작동하지만 반대로 부동산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세 사기도 상승장만 보고 갭투자를 한 전세 매물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 한번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전세 제도로 세워진 시장은 쉽게 무너진다. 반면 월세는 매월 금액을 납부하는 방식이라 전세에 비해 부동산 시장에 끼치는 부작용은 적은 거 같다”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는 에릭 정(Eric Jung·33) 씨도 한국에서 전세가 월세와 자가구입의 중간다리 역할 치고 금액이 너무 크단 것을 지적했다. 정 씨는 “서울에서 전세가 최소 2억정도로 알고 있는데 중간다리 역할 치고는 가격이 좀 비싼 거 같다”며 “호주에서는 오히려 월세가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호주의 경우에는 셰어하우스로 시작해서 월세를 거쳐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없으면 안되는 전세 제도…보완할 부분은 많아

 

▲ 외국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최근 국내에서는 전세사기로 골머리를 썩고있다. 많은 청년들이 전세 사기로 고통받고있어 전세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보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기자회견 장면. [사진=뉴시스]

 

전세 제도는 부동산 불확실성에 매우 취약해 리스크가 있지만, 청년층이나 저소득 가구의 주거 환경을 보장해 주고 중간사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시스템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전세 제도는 대한민국에서 없어지기도 없어서도 안될 제도로 자리 잡은 만큼 전체적인 보완과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 사회에 전세는 매우 중요한 주거형태로 자리 잡은 만큼 금융적 검토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특히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정보의 비대칭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메튜 페넬(Matthew Fennell) 아시아 소사이어티 상급 기고자는 “많은 한국인들은 전세가 월세보다 경제적인 주거 비용이라 생각하고 주택 소유의 꿈을 이루는 단계 중 하나로 여긴다”며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장점이지만 리스크가 따른다. 그래서 임대인과 건물 등기부 등 금융적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세사기를 당하기 전 근저당 설정, 매매가와 전세가 비교, 전세보증보험 가입 거절 여부, 등기부 등본 신탁등기 기재 여부, 신탁원부, 권리관계 계약서 등을 검토하면 전세사기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전세계약 후 전입신고, 우선변제권, 전세보증보험 등을 발급·가입해야 사기를 방지할 수 있다.

 

문제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전세사기에 대한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임차인에게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하고, 또 빌라왕과 같은 무분별한 갭투자를 막기 위해 은행 대출 시스템 또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인중개사 등이 리스크를 의무적으로 알려줘야 하지만 실상은 제공을 잘 안한다”며 “은행 또한 무분별하게 대출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출심사를 더 까다롭게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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