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방위 갑론을박…“남녀평등” vs “포퓰리즘”
여성민방위 갑론을박…“남녀평등” vs “포퓰리즘”


▲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해 9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태풍 힌남노 북상 관련 비상대비태세 등 현안브리핑을 위해 민방위복 차림으로 단상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스1]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 중 한 사람인 김기현 의원의 ‘여성 민방위 교육’ 공약이 찬반논란에 휩싸였다. 더불어민주당 등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의 국방 버전”과 같은 반대 목소리가 쏟아지는 반면 김 의원은 여성의 자위(自衛)권 확보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르데스크가 정부 자료를 토대로 확인한 결과 우리나라와 유사한 안보환경인 대만은 물론 많은 수의 선진국들이 여성 민방위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적잖은 수의 여성은 물론 정치권도 민방위 교육에 부정적 또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사회적합의를 이루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우크라서 女 피해 막심…화생방‧심폐소생‧산재 등 교육 필요”

 

“당대표 정책공약으로 내세운 여성군사기본훈련 도입을 위한 1호 법안으로 민방위기본법 개정안을 설 명절 직후 발의한다” 김 의원은 1월22일 보도자료를 내고서 그간 남성 중심이었던 민방위 교육 범위를 여성으로까지 넓히겠다고 밝혔다.

 

현행 민방위기본법은 18조(조직)에서 “민방위는 20세가 되는 해의 1월1일부터 40세가 되는 해의 12월31일까지의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으로 조직한다”고 명시 중이다. 예외는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교정직공무원 △소년보호직공무원 △군인 △군무원 △예비군 등이다. 여성은 자원자에 한해서만 민방위 대원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여성 민방위 대원은 없다시피 하기에 유명무실하다.

 

김 의원이 25일 실제 발의한 개정안은 여성도 △심폐소생술 및 제세동기 사용법 △산업재해 방지 △화생방 대비 △교통‧소방안전 등의 교육을 이수토록 했다. 김 의원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기본적 생존훈련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여성 군사기본훈련 도입을 즉각 추진하기 보단 스텝 바이 스텝으로 차근차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우크라이나 현지 피란민은 1407만명, 난민은 783만명 이상이다. 민간인 사상자는 1만7181명으로 사망자는 6702명, 부상자는 1만479명이다. 이 중 여성‧어린이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 행정안전부가 작성한 ‘외국의 민방위업무 추진조직현황’ 자료. [사진=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 캡처]

 

반발은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나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21대 국회 전반기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등을 지낸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SNS에서 “여가부 폐지의 국방버전”이라며 “전쟁과 국민 갈등의 행보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윤상현 의원은 “안보공약이 아니라 젠더공약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며 김 의원이 이대남(20대 남성) 등의 표심을 얻기 위해 개정안을 발의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그 부분(개정안)에 대해 (당 차원에서) 검토한 바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김 의원은 포퓰리즘성 공약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1월26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현직 국회의원 모임 마포포럼에서 ‘개정안이 이대남 표심을 노린 것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 “군대와는 상관없이 남북이 대치하는 유사시에 공습대피‧화생방대처‧심폐소생술 등 훈련을 평상시에 받아야 한다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포퓰리즘이다” “아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일부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여성 민방위 교육은 국제사회 추세에 역행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하지만 르데스크가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에 게재된 행정안전부의 ‘외국의 민방위업무 추진조직현황’ 자료를 살펴본 결과는 달랐다.

 

화생방 훈련 받는 스웨덴 女…이스라엘선 교전 투입도

 

행안부에 따르면 스웨덴의 경우 16~70세 남녀를, 덴마크는 16~65세 남녀를 민방위 대원으로 편성 중이다. 우리와 안보상황이 유사한 이스라엘도 16~62세 남성 및 17~50세 여성이 교육 대상이다. 마찬가지인 대만도 16~65세 남성 및 16~35세 여성에게 의무적으로 민방위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의무제가 아닌 지원제로 민방위를 운용 중인 미국‧영국‧싱가포르 등도 남녀에 차별을 두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는 ‘여성 지원 가능’ 조항이 유명무실한 한국과 달리 실제로 많은 수의 여성 민방위 대원들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 자료에 적시된 해외국가들 중 남성만을 민방위 교육 대상으로 하는 나라는 스위스(20~50세 남성)‧독일(18~65세 남성‧자원제) 등 소수에 불과했다.

 

지난 2012년과 2014년 정부 용역으로 작성된 ‘민방위 실태분석을 통한 제도개선 방안’ ‘민방위 정책기술 개발기획연구’ 보고서 및 국민안전처 등에 따르면 스웨덴의 민방위는 안보대비는 물론 재난‧재해를 포괄하는 시민보호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웨덴 남녀 민방위 대원들은 화재와 같은 자연재해 발생 시 투입되기 위해 인명구조요원으로서의 교육을 받는다. 구체적으로 전체 교육기간 18주 중 9주는 체력단련 및 재해구조훈련 등을 이수한다. 이후 9주는 지자체 구조대에서 근무한다.

 

매년 100명 안팎 규모로 배출되는 일부 스웨덴 민방위 대원들은 화학무기 관련 재난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위생요원으로도 양성된다. 이들은 13주의 교육기간 중 9주는 체력단련, 화학물질 유출 및 화학무기 대비 훈련을 받는다. 4주간의 특별훈련 기간에는 화학무기로부터의 보호, 화학물질 측정기구 조작법 등의 교육을 이수한다.

 

이스라엘 남녀 민방위 대원들은 효과적인 인명구조 등을 위해 24시간 비상대기체계를 유지한다. 구조부대는 물론 전투부대도 있어서 유사시 정규군을 도와 실제 교전에 투입된다.


▲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인 폴란드 메디카 국경검문소에서 여성‧아동이 대다수인 피란민들이 쉼터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여성 민방위 교육 문제는 유독 한국에서 젠더 간 충돌로까지 번지는 등 큰 사회적 갈등을 유발 중이다. 여성 민방위 관련 여론‧설문조사 결과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성 군복무 관련 조사를 통해 갈등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2021년 4월23일부터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여성 군복무 찬성은 45.6%, 반대는 49.6%로 팽팽했다.

 

실제 시민들 반응도 유사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 중인 대학생 최지연(22‧여‧가명)씨는 “남성 민방위제로 잘 유지되는 것을 왜 굳이 건드리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반면 대학생 유진수(24‧남)씨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병역자원 고갈 등 안보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회적 여파를 감안해 여성 민방위 문제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인력확보 필요성에는 공감 중이다. 여성으로서 상명대 군사안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윤지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인구절감 등의 영향으로 기능 중심의 병역을 육성해야 한다”며 “여성인력 등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채널 로그인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이 궁금하신가요? 혜택 보기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
- 평소 관심 분야 뉴스만 볼 수 있는 관심채널 등록 기능
- 바쁠 때 넣어뒀다가 시간 날 때 읽는 뉴스 보관함
- 엄선된 기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뉴스레터 서비스
- 각종 온·오프라인 이벤트 우선 참여 권한
회원가입 로그인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