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시장 세력의 말장난”…국제 사회에 부는 ‘Anti-ESG’ 열풍
“反시장 세력의 말장난”…국제 사회에 부는 ‘Anti-ESG’ 열풍

 

▲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Anti-ESG’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진은 미국 내에서 ‘Anti-ESG’를 주도하는 공화당 지지자들. [사진=AP/뉴시스]

 

불과 몇 년 전까지 세계 경제의 화두로 자리매김했던 ‘ESG’에 대한 반감 여론이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다는 이유다. 개념의 실체가 모호하고 평가 기준 자체도 주관적이라 사실상 자유시장경제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기업 때리기 도구”…ESG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 기업들도 쉬쉬

 

자본주의 체제의 최선봉에 서 있는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Anti-ESG’ 움직임이 일고 있다. 등장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개념의 실체가 모호하고 반시장 성격이 강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Anti-ESG’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Anti-ESG’ 세력은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재무적 요인에 있으며 관련 내용이 이미 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며 ESG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도 ESG가 국가와 국민의 경제적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며 ‘Anti-ESG’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앤드류 페티옹 덴버대학교 법과대 겸임교수는 한 신문 기고문을 통해 “ESG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책임 등의 비재무적 지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결국 이들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자본주의에 대한 실질적·정치적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견해를 보였다.

 

 

▲ [그래픽=김진완] ⓒ르데스크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는 사실상 ESG 관련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등장했다. 2022년 말 기준 미국 전역에서는 반ESG 법안 39건이 발의됐고 주 정부 9곳에서 법안이 통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미국 플로리다주에선 ESG 투자를 규제하는 법이 시행됐다. 텍사스주에선 에너지 관련 기업을 투자에서 배제하는 투자펀드의 공적연금 출자대상 제외 조치가 내려졌다. 이밖에 켄터키·루이지애나·미주리 등 각 주에서도 ‘Anti-ESG’ 선포가 잇따랐다.

 

‘Anti-ESG’ 움직임은 경제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결정적 사건도 등장했다. 지난 2018년부터 공개적으로 ESG 경영을 강조해온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지난해 6월 “ESG 담론이 개인의 정치에 이용되면서 사회가 양극화되는데 일조했다”는 발언한데 이어 급기야 “ESG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내 주요 기업들도 서서히 ESG와 거리를 벌리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ESG’라는 용어가 점차 미국 기업인 사이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2분기 기준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반영된 500대 기업 가운데 실적 발표에서 ESG를 언급한 기업은 61곳에 그쳤다. 2021년 4분기 155곳에서 크게 감소한 수치다. 일례로 코카콜라는 지난해부터 경영 관련 보고서에서도 ‘ESG’ 대신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EU는 5만개의 상장 기업이 2024년부터 연간 보고서에 ESG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을 발표했으나 반대 목소리에 밀려 결국 지침 내용을 완화하기로 했다. 사진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한 환경운동단체. [사진=AP/뉴시스]

 

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연간 100개 이상 쏟아지던 ESG기업투자펀드가 빠르게 줄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55개가 출시됐던 ESG펀드가 하반기에는 단 6개 출시에 그쳤다. 펀드명에서도 ‘ESG’가 사라지고 ‘지속가능’ 등의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미국 금융서비스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미국 내 ESG 관련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만 최소 140억달러(약 18조4716억원)에 달했다.

 

유럽 내에서도 ESG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SG 정책이 경제적 피해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서다. 네덜란드에선 ESG 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정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서 네덜란드 정부는 2030년까지 질소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전체 축산 농가의 가축수를 최대 50%까지 감축하고 농장을 폐쇄하는 등의 정책을 내세운 바 있다.

 

ESG 반발 여론은 EU 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서 EU는 5만개의 상장 기업이 2024년부터 연간 보고서에 ESG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유럽 전역에 걸쳐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는 결정”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확산됐고 결국 EU는 지침 내용을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ESG 최대 맹점은 모호한 평가 기준…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기업 압박 가능”

 

 

▲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Anti-ESG’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사진은 유럽연합 본부. [사진=AP/뉴시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Anti-ESG’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는 목소리가 많다. 하온누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가격 상승과 세계적인 긴축정책으로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수익률을 우선시하는 펀드가 다시 각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환경보호, 사회약자에 대한 배려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개념이고 진즉부터 법으로 규정된 내용들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ESG라는 개념이 등장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제성이 더욱 커졌지만 사실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등 서서히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진형 경인여대(경영학과) 교수는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경기침체, 고금리 기조 장기화, 여야 간에 극한대립 등 우리나라 정치·경제 분야의 상황은 미국과 상당히 흡사한 부분이 많다”며 “앞으로 경제성을 우선시하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 ESG경영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Anti-ESG’ 움직임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국기독문화연구소 관계자는 “ESG의 가장 큰 맹점은 평가 기준 자체가 모호해 해석만으로 기업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며 “이는 국가 기관이나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이미 존속 자체만으로 고용 창출과 국가경제 기여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며 “기업 본연의 목적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독려하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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