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 편의 코미디”…공영방송 둘러싼 ‘편 나누기’ 역사
“마치 한 편의 코미디”…공영방송 둘러싼 ‘편 나누기’ 역사
▲ 공영방송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 이슈는 역대 정부 마다 끊이지 않고 등장했는데 항상 찬반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정권 성향과 주변 상황 등에 따라 찬성과 반대 측에 선 이들의 면면은 바뀌었다. 과거엔 찬성했다가 정권 교체 후엔 다시 반대하는 식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영방송의 독립성 자체가 이미 퇴색된 지 오래라는 반응이 나온다. 사진은 한국방송공사(KBS) 전경. [사진=뉴시스] 

 

최근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쳐 공영방송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 이슈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같은 사안에 대한 과거의 전례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공영방송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 이슈는 역대 정부 마다 끊이지 않고 등장했는데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찬·반 여론이 팽팽히 갈렸다. 다만 찬성과 반대 측에 선 이들의 면면은 매 번 바뀌었다. 동일 주체가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정권 성향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여론 안팎에선 이러한 전례가 공영방송 수신료 징수가 무의미함을 나타내는 방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수신료 징수의 목적이 경제적 독립을 통한 공영방송의 독립성 확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상황이나 시기에 따라 공영방송의 우군이 바뀐다는 것은 독립성을 잃고 외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미 독립성을 잃은 공영방송의 경제적 독립 보장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주장…여당일 땐 수신료 인상, 야당일 땐 수신료 징수 폐지

 

공영방송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 여부는 역대 정부 때마다 줄기차게 논의돼 왔던 내용이다. 처음 관련 움직임이 생겨난 시기는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당시 언론통제, 편파보도 등의 여파로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높게 일었고 결국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까지 발발했다. 당시 야당 또한 ‘KBS 뉴스 안보기 운동’에 동참해 분위기를 달궜다. 정부는 대도시에 ‘통합공과금’ 제도를 도입하고 KBS에 강제징수권까지 부여했지만 수신료 징수율을 하락했다. 1984년 1255억원에 달했던 수신료는 1988년 465억원까지 떨어졌다.

 

▲ 이명박정부가 출범하자 김대중정권 시절 수신료 분리 징수 반대를 주장했던 시민단체와 이를 동조하던 언론 매체들은 수신료 거부 운동에 앞장섰다. 2010년 정부가 수신료 인상 방침을 밝힌 이후에는 수신료 거부 운동을 더욱 노골화했다. 사진은 이명박정부 시절 공영방송 수신료 강제징수 반대 시위를 전개하는 진보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뉴시스]

 

한 동안 잠잠했던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 이슈는 역사상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일궈낸 김대중정부 초기에 재차 불거졌다. 당시 정권을 빼앗긴 우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KBS 수신료 거부 움직임이 불거져 나왔다. 다만 군사정권 시절만큼 파급력이 크진 않았다. 오히려 뒤이어 출범한 노무현정부 때가 더욱 시끄러웠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자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나 다름없는 수신료 분리 징수를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며 맞불을 놨다.

 

한나라당의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에 여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언론까지 가세해 거세게 반발했다. 언론노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44개 친여 단체로 구성된 언론개혁시민연대는 한나라당의 TV수신료 분리 징수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 친여 성향의 언론 매체들도 일제히 “한나라당은 TV수신료 분리징수안을 철회하라”라는 논조의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의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시도는 결국 반대급부에 밀려 실패하고 말았다.

 

정권 교체 이후엔 공수가 바뀌었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하자 앞서 수신료 분리 징수 반대를 주장했던 시민단체와 이를 동조하던 매체들은 수신료 거부 운동에 앞장섰다. 2010년 정부가 수신료 인상 방침을 밝힌 이후에는 수신료 거부 운동을 더욱 노골화했다. 친여 성향에서 친야 성향으로 바뀐 매체들은 ‘수신료 안내는 방법’, ‘수신료 거부 움직임 확산’ 등 수신료 거부 운동 확산에 적극 가담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박근혜정부에 이어 정권교체가 이뤄진 문재인정부 출범 후에도 공수만 바뀐 상태로 계속 이어졌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시민단체와 수신료 폐지 움직임에 나서자 10년 가까이 수신료 폐지를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수신료 거부 운동은 언론 탄압이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수신료 폐지에 동조했던 매체들도 일제히 논조를 바꿔 민주당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 문재인정부 시절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시민단체와 수신료 폐지 움직임에 나서자 10년 가까이 수신료 폐지를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수신료 거부 운동은 언론 탄압이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은 공영방송 수신료 거부 피켓 시위에 나선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뉴시스] 

 

최근의 공영방송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 움직임은 예전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과거 정부와 집권 여당은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 반대를, 야당은 강제 징수 폐지를 주장했던 것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야당인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수를 앞세워 여전히 막강한 입법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데다 현 공영방송 수장을 비롯한 핵심 임원이 전부 전임 정부 시절 선임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반대 여론을 예상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까지 실시해 압도적인 찬성 여론까지 확인했다. 이후 시행령을 개정하는 식으로 구체적 이행방안까지 마련하며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 시절과 동일하게 수신료 강제 징수 폐지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보였던 모습에서 180도 태도를 바꿔 또 다시 언론탄압·언론장악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코미디 흡사한 뻔뻔한 말 바꾸기…독립성 거리 먼 공영방송 수신료, 국민 판단 따라야”

 

공영방송의 아군과 적이 상황에 따라 바뀌어 온 역사는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 주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신료 강제 징수를 반대하는 측에서 내세운 공영방송의 독립성 확보의 논리를 허무는 사례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적이 아군이 되고, 아군이 적이 되는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이미 공영방송 자체가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수신료를 강제로 징수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강주희 씨(37·여)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수신료 폐지를 주장하다 정권이나 상황이 바뀌면 곧장 공정성, 독립성 등을 운운하며 곧장 폐지 반대를 외치는데 완전 코미디가 따로 없다”며 “게다가 이런 식으로 주변의 입장이 바뀐다는 의미는 공영방송 자체가 독립적이지 않다는 방증 아니겠느냐”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 수신료 강제 징수 문제는 공영방송의 역할 이런 걸 떠나서 시대적 상황과 국민 여론에 따라 판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대학생 조성은 씨(21·남)는 “요즘 같이 TV를 아예 안 보고 스마트폰만 쓰거나 IPTV에 가입하는 세상에 누가 지상파만 따로 보나”라며 “결국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수신료와 IPTV이용료를 동시에 이중납부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공영방송은 정권이나 상황 변화에 따라 뉴스 논조가 편향되다보니 거의 보는 사람도 없다”며 “매 번 지키는 쪽과 공격하는 쪽도 명확하게 갈리는데 그런 채널을 누가 독립돼 있다고 보겠나”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여론의 반응 역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앞서 윤석열정부는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와 관련해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TV 수신료 강제징수 폐지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96.5%에 달했다. 민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공영방송 수신료 영구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에 따르면 찬성 57.9%, 반대 27.2% 등으로 집계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으면 곧장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공영방송부터 장악했다”며 “그러다 보니 공영방송은 점차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특정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져 편향성까지 띠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공영방송은 더 이상 공공의 이익을 방송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며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공영방송이 특정 이념이나 단체, 정치 성향과 독립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만큼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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