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피·땀 서린 논·밭, 팔지도 물려주지도 못 합니다”
“평생의 피·땀 서린 논·밭, 팔지도 물려주지도 못 합니다”

[Le view<247>]-고령화 사회, 노인들이 위험하다(中-재산권침해) “평생의 피·땀 서린 논·밭, 팔지도 물려주지도 못 합니다”

투기근절 취지로 농지법 급히 개정, 농지 취득 자격요건 대폭 강화

르데스크 | 입력 2023.05.17 17:40

 

▲ 최근 농촌은 ‘돈맥경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 공공기관 직원의 투기 사건 이후 농지 거래가 까다로워진 탓이다. 고령의 농민들 중 일부는 재산의 현금화가 어려워지면서 생겨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모내기 중인 한 농민의 모습.(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고된 농사일과 일손 부족으로 힘든 농촌 노인들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의 투기 논란으로 농지법이 개정되면서 대부분 농지로 이뤄진 농촌의 토지 거래가 뚝 끊긴 탓이다. 토지 거래가 막히면서 몸이 불편하거나 힘이 부쳐 농사일을 관두게 되더라도 당장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졌다.

 

농사를 짓지 않는 자녀에게 땅을 물려주는 것도 어려워졌다.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 원칙에 의해 농지는 농사를 지을 사람만 소유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녀가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물려받은 농지는 곧장 매각해야 한다. 그러나 농지 거래가 어려워지면서 이중과세 방지 목적의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건강 나빠져 농사일 쉬고 싶은데”…팔리지 않는 농지에 시름 깊어지는 고령의 농민들

 

강원도 철원군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중선 씨(74·남)는 최근 들어 고민이 부쩍 늘었다. 무릎 통증 때문에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려워 땅을 팔려고 내놨지만 도통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재작년까지는 땅을 임대해 어찌어찌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작년부터는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상 수입이 뚝 끊긴 셈이다.

 

자식들에게 받는 용돈으로 근근이 생활은 하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노후엔 땅을 팔아 일부는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로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계획이 무산되다시피 했다. 현금화하지 않고 농지채로 자식들에게 물려줄까 생각도 했지만 자식들이 손사래를 치는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땅을 소유하게 되면 3년 이내에 팔아야 양도세를 피할 수 있는데 만약 3년 내에 팔지 못하면 증여세에 양도세까지 내야 한다. 사실상 거의 남는 게 없다고 봐야 한다.

 

 

▲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에 민감했던 시기 불거진 공공기관 직원의 투기 논란에 당시 정부·여당은 투기 목적의 농지 거래를 막겠다는 취지로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의 주말·체험영농목적 취득 제한 △농지취득자격증명 심사 요건 강화 △토지와의 직선거리가 30㎞ 이상 떨어진 거리에 사는 외지인이 농지를 구입하는 경우 농지 매도 시 양도세 중과 등의 내용을 담은 농지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사진은 공무원 투기 제보 안내 현수막.(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김 씨는 “예전엔 그래도 가격을 낮추면 곧장 팔리곤 했는데 요즘에는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도통 없다”며 “시내에 있는 부동산에 물어 보니 농지법이 바뀌어서 농지 거래가 어려워졌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3년 전인가 공공기관 직원들의 땅투기 사건이 터진 이후 국회에서 아무나 농지를 취득할 수 없게 만들겠다고 법을 바꿨다고 하는데 왜 사고는 딴 사람이 치고 피해는 농민이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는 이윤숙 씨(71·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차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 농사짓는 밭을 부동산에 내놨지만 도통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씨가 부동산을 통해 들은 이유 역시 농지법 개정으로 농지 매입이 까다로워지면서 거래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농민들 땅을 헐값에 매입해 비싸게 파는 투기꾼들을 잡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최소한 법을 바꾸기 전에 우리 같은 농민들이 입게 될 피해 정도는 미리 예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당장 아들이 집 사는데 얼마라도 보태주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속상할 따름이다. 땅으로 물려주려고 해도 팔수가 없으니 농사도 안 짓는 직장 다니는 아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공공기관 직원 투기 논란에 부랴부랴 법 개정, 팔기도 물려주기도 어려워진 농민 유일 재산

 

지난 2021년 개발 정보를 미리 획득한 공공기관 직원들이 개발 예정 부지인 농지를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에 민감했던 시기라 비판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결국 당시 정부·여당은 분노한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당시 정부·여당은 투기 목적의 농지 거래를 막겠다는 취지로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의 주말·체험영농목적 취득 제한 △농지취득자격증명 심사 요건 강화 △토지와의 직선거리가 30㎞ 이상 떨어진 거리에 사는 외지인이 농지를 구입하는 경우 농지 매도 시 양도세 중과 등의 내용을 담은 농지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됐다.

 

 

▲ 농민들은 농지 취득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거래 자체가 어렵게 되다 보니 고령의 몸을 이끌고도 농사를 지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증여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농촌의 젊은 세대가 도시로 빠져나가는 현 상황에서 농민의 자녀들 역시 거의 대다수가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다. 사진은 참여연대가 주최한 농지 거래 실태와 농지법 개정안 효과 진단 간담회 현장. [사진=뉴시스] 

 

법 개정 시행 이후 농지 거래는 급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田) 거래량은 전년 동월 대비 31.6% 줄었다. 1월의 경우 전년 대비 43.7%나 감소했다.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농촌에서 고령의 농민들은 건강상의 문제로 농사를 짓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면 농지를 팔아 생활비, 의료비 등의 노후 자금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농지 취득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거래 자체가 어렵게 되다 보니 고령의 몸을 이끌고도 농사를 지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증여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농촌의 젊은 세대가 도시로 빠져나가는 현 상황에서 농민의 자녀들 역시 거의 대다수가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다.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 원칙에 의해 농지는 농사를 지을 사람만 소유하게 돼 있다. 만약 농사를 짓지 않는 자녀가 농지를 상속·증여받을 경우 매도해야 한다. 다만 상속·증여세와 양도세를 이중으로 내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농지를 상속·증여 받더라도 3년 내에 매도하면 양도세가 면제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농지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3년 내 매도 조건을 맞추기 어렵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증여가 이뤄질 경우 수증자는 증여세에 양도세까지 납부할 수밖에 없다. 고령의 농민들이 세금 부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한 세무법인 소속 세무사는 “최근 들어 농지 증여와 양도 상담이 부쩍 늘었다”며 “예전 같았으면 현금화 시켜 증여가 이뤄지는데 도통 현금화가 진행되지 않으니 증여하는 쪽도, 증여 받는 쪽도 답답해하긴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농민의 토지 거래 조건을 완화하거나 농민 자녀의 증여 농지 양도세 혜택을 확대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불만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며 “고령 나이에 가뜩이나 농사일로 힘든 농촌 노인들의 심적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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