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 첫 법률안 거부권 행사한 尹…“혈세 1조4000억 낭비”
‘양곡법’ 첫 법률안 거부권 행사한 尹…“혈세 1조4000억 낭비”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과 관련해 첫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혈세 1조4000억원이 낭비된다”며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야당은 “이 정권은 끝났다”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차례” 등을 주장하며 윤 대통령 탄핵을 경고했다.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제386호 안건인 양곡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하고 정오께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생산량을 전량매입토록 하는 내용이다.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통령이 고유권한인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한 건 2016년 5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이후 7년만이다.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농가소득을 높이려는 농정목표에 반(反)하고 농업인‧농촌 발전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전형적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간 정부는 이번 법안 부작용에 대해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해왔지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법안처리 후 40개 농업인단체가 양곡법 개정안의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다. 관계부처와 여당도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고 검토해서 제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4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재의요구(거부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황근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천문학적 혈세낭비를 지적했다. 그는 “지금도 남는 쌀을 더 많이 남게 만들고 쌀을 사는데 들어가는 국민혈세는 매년 증가해 2030년 1조4000억원대에 이르게 될 것”이라며 “그럼에도 오히려 쌀값은 떨어지고 쌀 재배농가 소득도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현재도 남는 쌀이 매년 5.6% 수준이고 강제매입을 시행하면 최소 6%에서 최대 16%(평균 11.3%)까지 늘어나 매년 초과생산량 정부는 시장격리해야 한다”며 “쌀은 이미 충분한 양을 정부가 비축하고 있고 남아서 문제다. 농업인들이 계속 쌀 생산에 머무르게 해 정작 수입에 의존하는 밀‧콩 등 주요 식량작물은 국내 생산을 늘리기 어렵게 돼 식량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형평성 문제도 언급했다. 정 장관은 “남는 쌀 전량 강제매수법은 농업‧농촌과 국가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사안임에도 입법과정에서 실질적 협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며 “다른 품목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오른쪽) 등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당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4일 논평에서 “양곡법이 그렇게 좋은 개정안이라면 민주당은 과반의석을 차지하고도 왜 문재인정권 때 통과시키지 않았나. 양곡법 개정안은 우리 농업 미래를 파괴하는 오답”이라며 “양곡법 개정안은 목적‧절차에서 모두 실패한 악법이다. 거부권 행사는 당연하다”고 했다.

 

반면 야당은 장 장관 사퇴를 요구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도 시사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위원들, 전국농어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4일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값 정상화법을 거부해 국민 뜻을 무시한 윤 대통령을 강력 규탄한다”며 “농민을 배신한 정 장관은 이 일에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 정권은 끝났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차례”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앞에 민주당은 재의결 추진을 예고했다. 박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과 논의해봐야 하겠지만 당연히 헌법‧법률에 따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했다.


▲ 4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저온저장고에서 관계자가 가득 쌓여 있는 벼 포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재의결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한다. 재적의원 299명 중 국민의힘 의원(115명)이 3분의 1을 넘기에 국민의힘이 집단부결에 나서면 개정안 재통과는 불가능하다. 법안 상정권을 가진 김진표 국회의장이 부결 가능성이 짙은 개정안을 재상정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때문에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양곡법 개정안 대신 쌀산업보장법(가칭) 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입법) 절차 및 법안 내용을 봤을 때 국민에게 주는 부담‧폐단이 많다면 계속 그런 걸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추가 거부권 행사 건의를 시사했다.

 

당정은 오는 6일 협의에서 쌀값 안정 관련 후속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돌아설 수 있는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해서다. 정 장관은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당정이 충분히 협의해 농업‧농촌을 세심히 살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며 “6일 민당정 협의회를 열어 관련 대책을 마련한 뒤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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