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사건·사고로 인한 신뢰 하락, 세계 각 국 정부의 규제 등으로 가상화폐 시장이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엄청난 손실을 입은데다 시세 회복마저 요원한 탓이다. 특히 빚까지 내서 투자한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 투자자들은 고금리 여파까지 겹쳐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상화폐 시세 하락은 비단 투자자 손실뿐 아니라 또 다른 피해도 낳고 있다.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에 당장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 보니 무조건 버티기에 돌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높은 대출이자를 감당하느라 지갑을 굳게 닫고 있다. 결국 내수시장 침체로 이어져 소비재 시장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식품, 패션, 유통 등은 물론 레저,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타격을 입고 있다.
가상화폐 폭락에 투자자들 패닉…“손절하자니 손실이 크고 버티자니 이자가 부담되고”
가상화페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 2021년 8200만원을 웃돌 정도로 높은 시세를 기록했으나 이후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말에는 2000만원 초반까지 떨어졌다. 올해 들어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며 얼마 전에는 4000만원을 돌파하긴 했지만 여전히 고점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비트코인과 함께 가상화폐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이더리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21년 11월 600만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폭락을 거듭해 15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고점에 비하면 4분에 1 수준에 불과한 금액이다. 이더리움 역시 올해 들어 약간의 상승세를 보이며 270만원 선을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고점에 비하면 턱 없이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가상화폐 시세 하락의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상화폐 신뢰 하락을 부추길만한 글로벌 거래소의 파산 사태, 불법상장, 시세조종 등 가상화폐 관련 각종 사건·사고, 세계 각 국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 세계 각 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상화폐 시장에 모여 있던 거액의 자금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시세가 폭락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상화폐 열풍에 편승한 국내 투자자들은 암담한 처지에 놓였다. 가상화폐 시세 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다. 특히 ‘유행’이라 불렸을 정도로 흔하게 보였던 빚을 내 투자한 사람이나 가진 재산을 몽땅 투자한 빚투·영끌족의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엄청난 손실로 보유한 가상화폐를 팔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자금 마련을 위해 받은 대출이자는 오른 탓에 ‘보릿고개’나 다름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했다는 직장인 홍성원 씨(36·남)는 “비트코인 시세가 6000만원일 신용대출 7000만원에 가지고 잇던 현금 5000만원을 더해 총 1억2000만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지금 보유자산 금액은 8000만원도 되지 않는다. 결국 가진 현금은 모두 날리고 대출금만 남은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한 채 그저 버티기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 큰 문제는 엄청난 손실 때문에 당장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금리가 처음 대출받을 당시에 비해 3~4배 가량 올랐다는 점이다”며 “15만원 가량이던 월 이자가 50~60만원에 달하다 보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일단 투자금을 회수할 때까진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이지만 삶은 많이 피폐해진 게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무조건 버티자” 심리에 내수경기도 위축, 꽉 닫힌 지갑에 소비재 시장도 우울
가상화폐 시세 붕괴로 홍 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보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홍 씨와 마찬가지로 버티기에 돌입한 사람들이 지갑을 굳게 닫다보니 소비재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 즐기는 것 등 사실상 모든 분야의 소비를 줄이면서 피해가 전방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식품, 패션, 유통, 레저, 문화 등의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한국은행, 통계청 등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2019년 1월까지만 해도 98.4로 기준치인 100에 근접했다가 코로나19 사태 발발 직후인 2020년 초 70대로 급락했다. 이후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며 2021년 6월 110.5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도 꾸준히 기준치를 웃돌았다. 그러나 투자시장의 침체와 금리 상승이 본격화 된 지난해 중순부터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지난달까지 기준치인 100을 하회하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우리나라 가계부문의 현재생활형편, 생활형편전망,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 현재경기판단, 향후경기전망 등 총 6개의 주요 개별지수를 표준화해 합한 지수다. 100을 기준으로 초과할 경우 소비자들이 현재의 경기를 과거 평균 수준보다 좋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100 미만은 그 반대다. 이를 감안했을 때 국내 소비자들은 지난해 중순부터 줄곧 경기가 안 좋다고 느끼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소비재 시장의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국 식·음료 제조업체 154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1분기 경기 현황지수는 86.0에 불과했다. 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호전됐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식품업계 경기 현황지수는 지난해 3분기 94.7에서 4분기 87.4로 떨어졌고 올해 1분기까지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꽁꽁 언 소비심리는 기존에 없던 기현상도 만들어내고 있다. 자린고비를 일컫는 속어 ‘짠돌이’와 재테크의 합성어인 ‘짠테크’ 열풍이 그것이다.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작은 수입이라도 챙기는 행위를 일컫는 ‘짠테크’는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짠테크로는 무지출 챌린지(지출 제로에 도전), 앱테크(포인트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수입 창출) 등이 있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의 약세와 고금리 여파가 동시에 겹치면서 예전 빚을 내 투자했던 빚투·영끌족들은 보릿고개나 다름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그 여파가 곧장 소비위축으로 이어져 관련 산업까지 줄줄이 타격을 입는 연쇄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끌·빚투족이 사태를 스스로 해결하는 시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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