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대비를 위해 평생 벌어온 돈으로 3억7000만원으로 2018년 부평지하상가를 매입한 조경하(가명)씨는 7월 1일부로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당시 양도·양수·전대가 가능하다는 인천시의 말을 믿고 투자했지만, 불법으로 결론난 탓이다. 70세가 넘은 조 씨는 3억7000만원을 포기하거나 직접 장사를 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전대행위를 둘러싸고 부평역지하상가 임차인과 인천시 간 오랜 갈등이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인천시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지하상가 상인들은 애초에 인천시가 만들었던 조례 자체가 불법이니 이에 대한 보상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건의 시발점은 인천시에서 만든 2002년 조례부터다. IMF 여파로 재정난을 겪던 인천시는 인천역 리모델링 사업비 투자를 목적으로 이전에 없던 조례를 제정했다. 새롭게 제정된 조례에는 다른 지하상가에서 볼 수 없던 ‘양도·양수·전대’가 가능했다. 또한 리모델링비를 기부채납시 20년 유상 반복 사용도 허용했다.
문제는 해당 조례는 상위법인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공물법)에 위배된 불법이란 사실이다. 공물법에 따르면 공유재산과 행정재산은 양도·양수·전대가 불가능하다. 지하상가는 실질적으로 상권이지만 법적으로는 도로에 해당돼 공물법 적용을 받는다.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 등 정부부처들은 오래전부터 해당 조례 시정 권고 명령을 내려왔다. 인천시는 시정 권고가 내려올 때마다 조례를 개정했지만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양도·양수·전대는 2020년 조례 개정전까지도 허용해왔다.
2022년 10월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간 인천시와 임차인들의 갈등은 임차인들의 패소로 판결났다. 대법원은 인천 지하도상가 관리운영 조례를 최종 무효처리시키고 양도·양수·전대는 위법 행위로 금지 판결을 냈다.
“법대로 할 수 밖에” vs “불법을 만든 거부터가 문제”
임차인들은 인천시의 태도에 반발하고 있다. 애초에 사고 팔 수 없는 국가 재산을 양도·양수·전대하게 만들어 투자를 받고 재산화시킨 것부터 사기라는 입장이다. 인천시는 해당 조례가 불법인줄 알면서도 리모델링 투자를 받기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임차인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인천시 관계자에게 불법인줄 인지하고 조례를 만들었냐고 질문했다. 관계자는 “너무 오래된 사항이고 2년에서 3년사이로 담당자가 바뀌어서 해당 사항은 잘 알지 못한다”고 회피했다.
신부평 지하도 상가 임차인 김혜숙(60)씨는 27년간 모은 전 재산을 잃을 위기라고 밝혔다. 김씨는 “저희 같은 일반 시민이 인천시에서 이야기하는 상위법을 어찌 알 수 있었겠냐”며 “인천시에서 양도·양수·전대가 가능하다 했고, 법인 사무실에서도 가능하다고 해서 매매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작은 불법조례를 만든 인천시에 있고 직무유기한 공무원들이 이 상황까지 오게 만든 것이니 인천시는 책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른 임차인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주안역 지하상가에 백송희(65)씨는 “인천시가 불법조례를 만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에게 사기를 쳤다”며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노후대책을 위해 상가 2개를 매입했고 인천시, 세무사, 부동산 모두 아무 문제 없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황민규 인천지하도상가 비상대책위원장은 “인천시는 불법인걸 알면서도 조례를 만든 것부터가 잘못이다”며 “과거 IMF 당시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대출까지 알선시키며 비용을 부담시켰고, 그 대가를 주기위해 불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대화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소통의 창구를 닫고 있어 정말 답답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대법원 판결이 난 이상 법대로 진행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조례 상위법인 공물법에 위반되고 대법원판결까지 난 이상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인천시 소상공인 정책과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상 인천시는 법을 이행해야 한다”며 “그동안 집행유예 기간도 드렸고 2025년까지 연장하려 했으나 대법원 판결로 이제는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니 7월 1일부터는 직접 장사를 하시거나 퇴거하셔야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인천시도 소상공인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법의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지원해줄 것이다”고 말했다.
탁상행정이 부른 참사, 해결법 마련도 쉽지 않아
인천시는 직접 지하상가에서 장사를 하시면 문제없고, 전대인 경우만 강제집행 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대다수 임차인들은 노후를 위해 지하점포를 구매한 노인들이다. 적게는 60세에서 많게는 85세인 임차인들은 고령으로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이 대다수다. 직접 지하상가에 들어와서 장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평생모은 노후자금을 지하상가에 투자한 상황이라, 투자금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벼락거지’신세를 면치 못한다. 대출까지 끼고 있는 임차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2017년 지하상가 한칸을 3억원에 구매한 이숙자(80)씨는 “노후를 위해 자식 도움까지 받아 구매했는데 갑자기 시청에서 상가를 내놓던가 직접 장사를 하라고 한다”며 “나이 80이 다 된 사람이 어떻게 장사를 할 수가 있겠냐”고 말했다.
임차인들 뿐만 아니라 임차인들에게 전대 받아 장사하는 ‘전차인’ 문제도 심각하다. 전차인들은 7월 1일 인천시 강제집행이 들어오면 지하상가에서 바로 쫓겨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전차인들의 경우 사업자등록을 하고 사업자로 대출을 받은 상황이다.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순간 사업자등록이 말소되고 대출을 바로 갚아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지하상가에서 악세사리 숍을 전대해 운영하는 김미려(41·가명)씨는 “지금 지하상가가 많이 어수선한 상황인데 강제집행날 나가라 하면 나갈 수 없다”며 “나도 여기 사업자 등록하고 권리금부터 월세까지 낼거 다 내고 들어온 사람인데 무슨 권리로 그럴 수 있냐”고 반발했다.
이어 “전차인들도 엄연히 사업자 등록하고 돈내고 정당하게 대출받아 장사하는 건데 이렇게 무대포로 나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고 말했다.
임차인들이 포기하고 양도한다 해도 문제다. 대부분 임차인들은 1개에서 2개 점포를 가지고 있고 전차인들은 많게는 4개씩 점포를 빌려 운영한다. 점포 1개당 평수는 2.5평으로 규모가 작지 않은 이상 최소 2개는 빌려야 장사가 가능하다. 각 점포 임차인들이 다르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즉 4개 점포를 운영하는 전차인은 4명의 임차인들이 권리를 포기해야 강제집행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보상이 이뤄진다해도 셈법은 복잡해진다. 임차인들은 구매한 시점도, 상권도, 투자금액이 각기 다른만큼 원하는 보상 규모도 서로 다르다. 임차인들의 공통적으로 말하는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황민규 인천지하도상가 비상대책위원장은 “임차인들은 사정이 각기 달라 원하는 보상안은 아직 통일되진 않았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액 보상이 아닌 피해에 대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보상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인천시와 소통하고 서로 맞춰 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인천시는 합리적인 보상을 위한 첫걸음인 대화조차 해주고 있지 않다. 계속 법을 앞세워 7월 1일 강제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 말하는데, 먼저 불법을 저질러 이 사태를 만들고 방관한건 인천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또한 인천시가 만든 불법 조례에 상인들이 희생당했다는 입장이다. 김형주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는 "인천시는 이 사단이 나기 전까지도 상위법에 반하는 것을 알고도 계속 양도·양수·전대를 허가해 왔다"며 "본인들이 조례제정과 행정처리를 잘못했음에도 모든 책임을 임차인들에게 전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조례제정 당시 상위법령인 지방세정법에 양도·양수·전대가 불가능했는데, 이미 그때 당시 상위법령에 반하지 않는 조례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음에도 조례하고, 방관하고, 정보 또한 제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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