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의아한 ‘9세 소녀 우상화’…김정은의 속내는
누가 봐도 의아한 ‘9세 소녀 우상화’…김정은의 속내는


▲ 북한의 이례적인 ‘백두혈통’ 공개를 두고 후계작업이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잇따른다. 반면 북한 첫 ‘여성 최고지도자’ 출현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도 있다. 사진은 8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의 모습. [사진=뉴시스]

 

북한의 때 아닌 후계구도 작업 정황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현직 최고지도자 생전에 후계자를 공개 지목한 전례는 없다는 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 우상화 작업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한 북한에서 아들이 아닌 딸을 후계자처럼 떠받드는 건 처음이라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된다.

 

국내외 정보당국에서는 김주애가 정말 김 위원장의 뒤를 잇는다기보다는 북한이 김주애 공개를 통해 4대 혈통세습 의지를 굳히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대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 위원장 생전의 이러한 행보 배경에는 ‘여인들의 궁중암투’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존경하는’ 극존칭에 피휘 강요‧우표 공개까지

 

지난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인민군 창건(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 한 소녀가 등장했다.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모습을 드러낸 소녀는 김 위원장과 리설주 부부의 딸로 알려진 김주애(만 10세 추정)였다.

 

9일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당의 혁명적 무장력인 조선인민군 창건 75돐을 경축하는 성대한 열병식이 2월8일 수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됐다”며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사랑하는 자제분’과 리설주 여사와 함께 광장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김주애가 첫 등장한 건 지난해 11월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현장 관련 보도였다. 당시 김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호칭했던 통신은 작년 11월26일 ICBM 개발‧발사 공로자와 김 위원장, 김주애 등의 기념사진 촬영행사 보도에선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언급했다. 급기야 열병식 전날(2월7일)의 건군절 기념연회 보도에서는 ‘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극존칭했다.

 

김 위원장도 김주애에 대한 정을 숨김없이 과시했다. 8일 열병식에서 조부인 김일성 주석처럼 검은 중절모‧코트 차림으로 참석한 김 위원장은 강순남 국방상(국방장관), 김덕훈 내각총리, 리병철‧리영길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도열한 가운데 김주애 손을 잡고 레드카펫 위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른 리설주를 포함해 김 위원장 가족이 행진하자 당‧정‧군 간부들은 일제히 손뼉 치며 따랐다.


▲ 9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앞줄 가운데)과 부인 리설주(맨 왼쪽), 딸 김주애(김 위원장 왼쪽)의 모습.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김 위원장은 김주애의 손을 잡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뉴시스]

 

김주애를 김 위원장 후계자로 떠받드는 듯한 북한의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10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당국이 ‘주애’라는 동명이인들에게 개명을 강요 중이라고 전했다.

 

RFA에 의하면 소식통은 “어제(2월8일) 정주시 안전부에서는 주애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과에 등록된 여성들을 안전부로 불러내 이름을 고치도록 했다”며 “내가 사는 인민반에도 주애라는 이름을 가진 12살 여자애가 있었는데 안전부 주민등록과에서는 여자애 부모를 안전부로 호출해 딸 이름을 바꾸고 출생증 교체를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개명 이유로는 “당국이 주애라는 이름을 전부 조사하고 개명토록 강제하는 건 최고존엄의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선전되고 있는 딸 이름이 주애이기 때문에 동명인을 없애라는 내적지시가 내려왔다고 안전부 간부가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마치 전근대적 왕조체제처럼 피휘(避諱)를 시행 중이다. 피휘는 다른 문장에서 임금이나 최고위층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해당 문장을 고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때문에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이 ‘일성‧정일‧정은‧설주’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다.

 

RFA는 “북한 당국은 김일성 시대에는 일성이라는 이름을 사용 못하도록 했고 김정일 시대에는 정일이라는 이름을 강제로 바꾸도록 했다”며 “김정은 시대가 출범하자 정은이라는 동명인을 모두 없애고 수령신격화를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통일부‧국정원 “가부장적 北 감안할 때 女 세습에 의문”

 

북한은 피휘뿐만 아니라 김주애가 타는 것으로 보이는 백마 및 김주애 사진을 담은 우표 도안 공개에도 나섰다. 이러한 북한의 파격행보를 두고 김주애가 북한 역사상 첫 ‘여성 최고지도자’로서 김 위원장 뒤를 잇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한다. 그러나 정부나 정보당국에서는 회의적 시각이 짙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주애 후계자설과 관련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김주애 띄우기는) 세습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으나 김정은의 나이, 북한 체제의 가부장적 성격 등을 감안할 때 여성 세습 부분이 과연 맞느냐는 의문도 많다”며 사실상 부인했다.

 

권 장관은 또 “(특정인물에 대한 세습 의지 과시 등) 어떤 한 부분으로 특정하지 않고 북한이 4대 세습을 미리부터 준비하고 김정은‧백두혈통을 중심으로 한 체제결속을 단단히 하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며 “(열병식에 참가한) 군인들이 ‘백두혈통 결사보위’라고 외친 것을 보더라도 어떤 특정인보다는 김정은과 그 일가에 대한 충성을 보다 단단히 하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고 했다.


▲ 지난 2019년 12월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 소장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일대의 위성사진. 북한이 ‘중대한 실험’을 했다고 밝힌 시점에서 발사장 왼쪽에 차량 등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민관이 합심해 북한을 들여다보고 있는 미국처럼 우리나라 정보당국도 각종 정보자산을 동원해 북한을 실시간 감시 중이다. [사진=제프리 루이스 소장 트위터 캡처]

 

통일부에 비해 비교적 북한 내부를 상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국가정보원도 입장은 비슷하다. 국정원은 지난달 5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주애 공개를 두고 “김정은의 세습정치에 대한 의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후계자가 된다는 판단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민관을 막론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일상화된 북한에서 여성은 후계구도에서 늘 열외였다. 김일성은 딸 김경희가 있었지만 아들 김정일‧김평일만을 두고 누구에게 자리를 물려줄지 저울질했다. 김정일도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딸 김설송, 재일교포 출신의 고용희와의 사이에서 딸 김여정 등을 뒀지만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배제시켰다.

 

“김여정 세습 시 리설주와 그 자녀 숙청은 자연스런 수순”

 

‘김주애 후계자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김 위원장이 아들이 아닌 딸을 띄우는 배경에 눈길이 쏠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서 과거 누차 2인자처럼 권력을 과시해왔던 김여정과 리설주 간 갈등과 같은 ‘궁중암투’가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는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원장을 지낸 최진욱 한국전략문화연구센터 원장은 지난달 27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김여정은 영향력이 강하고 야망이 있으며 공격적이다. 리설주가 그것을 달갑지 않아 해 김정은이 딸 주애를 공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자가 아닌 김여정이 김 위원장 뒤를 이를 가능성을 우려한 리설주를 안심시키기 위해 김 위원장이 딸 주애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게 최 원장 진단이다. 실제로 북한 ‘로열패밀리’ 사이에서는 골육상잔이 난무한 바 있다. 김 위원장부터 최고지도자가 되자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김 위원장의 이복누나 김설송 등도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다.

 

최 원장은 김 위원장의 김주애 공개 배경에는 동생 김여정에 대한 일정 배려도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최 원장은 “김정은 후계자가 여성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아들이 될 가능성은 더 크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 등에)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면 그가 후계자라는 사실이 명백해 김여정으로서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미묘하지만 분명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어린 딸을 이용했다”고 했다.


▲ 지난 2014년 4월 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참가자들과 모란봉악단의 축하공연을 관람 중인 리설주(맨 왼쪽), 김정은 국무위원장(리설주 오른쪽), 김여정(맨 오른쪽). 일부 전문가들은 김주애 공개 배경에는 ‘여인들의 궁중암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여정의 권력욕은 해외 전문가들로부터도 확인된다.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겸 히로시마대 객원교수인 마키노 요시히로는 지난달 4일 발간된 책 ‘김정은과 김여정’에서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간호가 허락된 사람은 여동생 김경희와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 내연녀로 지목된 김옥, 그리고 김정은 삼남매뿐이었다”며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를 서두르던 김정일에게 김여정은 ‘나도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교수는 한일 정부당국자 등으로부터 이같은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이러한 궁중암투에서 여동생 대신 배우자의 손을 더 높게 들어준 가운데 한 때 북한 체제의 2인자처럼 활동했던 김여정은 당분간 숨죽인 채 지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에 의하면 8일 열병식에서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던 김여정은 행사장 구석으로 밀려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여정은 주석단에 오르는 건 고사하고 인민군 장병들 뒤에서 홀로 서 있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궁중 역사를 보면 자기 자식이 임금이 안 되면 그 순간 폐기당하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 리설주의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며 “김여정이 조용히 있었다면 리설주가 이렇게까지 나설 이유는 없다”고 했다.

 

다만 적어도 김 위원장 생전에는 김여정이 숙청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있다. 생모를 어려서 잃고 여동생 김경희와 평생 의지했던 김정일처럼 재일교포 출신 생모를 여읜 채 미국에 망명 중인 조카 김한솔의 도전을 받는 김정은‧김여정 남매도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것이다. 김한솔은 김 위원장의 이복형이자 김 위원장에게 암살된 김정남의 아들로서 ‘백두혈통 장손’이 된다.

 

마키노 교수는 “김여정은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붉은 귀족’으로 불리는 3층 서기실, 노동당 조직지도부 핵심인사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라며 “김정은에게 있어 여동생은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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