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공포 잠긴 튀르키예…“약탈·범죄 만연, 악마가 활개친다”
슬픔·공포 잠긴 튀르키예…“약탈·범죄 만연, 악마가 활개친다”

▲ 시리아는 내정으로 인해 국제적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부 사람들은 

  중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르데스크 [동영상=아나스알무스타파 제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대지진이 발생한 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르데스크는 현지 실상을 듣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지 취재원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재 결과, 현지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 끔찍했다.


골든아워는 종료됐고, 사망자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20일 기준 지진 사망자는 4만6000명을 넘겼다. 튀르키예에서만 4만600여명, 시리아선 6500여명 이상이 지진으로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건물 잔해 속에 깔린 이들이 정확히 얼마나 남았을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일부 전문가들은 붕괴 잔해 아래 최대 20만 명이 아직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지진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길 가능성도 14%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의 손길을 내밀어 작은 기적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다. 지진 피해 수습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약탈과 질병이 범람하고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현지 상황은 최악이다. 거기에 골든아워까지 끝나 희망의 불씨는 꺼져버렸다. 그리고 참사 이후 정치적, 경제적 혼란,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남겨진 고아까지 해결해야 할 부작용도 산더미다.


르데스크는 시리아에서 튀르키예 망명해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나스 알무스타파(Anas Al-Mustapa·44)씨와 터키 아마시아에 거주하는 무스타파 옥수즈(Mustapa Öksüz·45)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전으로 고립된 시리아맨손으로 땅을 파며 구조작업

 

▲ 시리아 지진 피해 지역은 반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지진 후 한동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손으로 건물 잔해를 직접 파헤쳤다. 사진은 붕괴된 건물 속 생존자 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리아인들. [사진=독자제공]

 

시리아의 상황은 튀르키예보다 심각하다. 시리아는 내전으로 정치적·경제적으로 튀르키예보다 훨씬 혼란한 상태로 국제적 지원조차 힘든 국가다. 시리아에서 6500명이 사망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추정으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시리아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 지역이 반정부가 장악한 지역이란 것이다. 그래서 지진 초기에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시리아 정부측에서 거부하는 일도 발생했다. 지금은 시리아 정부도 지원을 허용한 상태지만, 이미 골든아워가 끝나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튀르키예가 각종 지원 물품과 봉사자, 의료인, 미디어, 수색대로 붐볐던 반면, 시리아 북서부 지진 피해 지역은 아무런 국제적 도움과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립된 상태로 방치됐다.


아니스 씨는 본래 시리아인으로 본래 시리아에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터키에 망명해 있는 상태다. 르데스크는 그에게서 시리아 상황을 전해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나는 시리아 인이고 지금은 터키에 있지만, 아직 많은 동료들이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어 사진과 현지 상황을 매일 보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시리아 현황 사진을 보여줬다. 무너져 내린 집부터 잔해에 깔린 사람까지 현장의 참사가 고스란히 보였다.


그가 시리아에서 받은 현지 상황은 튀르키예보다 심각했다. 봉사자도, 마땅한 장비도 없이 생존한 주민들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파고 또 팠다고 전했다. 몸이 멀쩡한 사람은 노인이건 아이건 구분하지 않고 모두 생존자 구출에 투입됐지만 그들의 힘만으로 모두를 구하기는 역부족이었다고 설명했다.

 

▲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대지진으로 4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천문학적인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 건물들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붕괴했고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잃었다. 사진은 지진으로 집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단 사실에 주저앉은 시리아 남성. [사진=독자제공]

 

아니스 씨 동료에 따르면 시리아의 한 아버지 야잔(Yazan·가명)씨는 지진으로 평생 살았던 집이 무너지고 어머니, 아내, 딸, 아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는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파헤쳐 봤지만 홀로 가족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에는 마땅한 장비도, 인력도, 아무것도 없었고 그는 그렇게 가족을 눈앞에서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단 것이다.


아니스씨는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이어 "세계가 작은 기계 하나로 연결되고 우주로 여행을 하는 시대에 건물 잔해조차 치울 장비가 없어서, 주사 한 번이면 치료할 병을 치료하지 못해서 죽어가는 일이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튀르키예는 적어도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시리아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내전으로 너무 오래 고통받았고 지진으로 더 이상 버틸 힘마저 상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끝나버린 골든아워약탈과 질병 아픔만이 남아버린 땅

 

▲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안탈리아는 계속되는 여진으로 사람들이 거리 나와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붕괴된 거리에서 모닥불을 쬐는 튀르키예인들. [사진=AP]

 

아나스씨는 지진이 일어난 6일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에서 온 친구들과 튀르키예 코니아주 식당에서 밥을 먹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6일 새벽, 대지진이 튀르키예를 덮치고 그는 인권 운동가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튀르키예 안탈리아로 달려갔다고 밝혔다.


아나스 씨는 “지진후 안탈리아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곳이 아니였다”며 “현장은 뉴스에서 보는 것보다 더 피비린내가 나는 지옥이다”고 말했다.


그에게 지진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그는 당시에는 정말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무언가 큰일이 닥치면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움직인다는 것을 경험 했다”며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정도로 끔찍할지 몰랐다”고 밝혔다.


그에 말에 따르면 현장은 모든 것이 부서진 상태다. 계속되는 여진과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건물 속에서 사람들은 슬픔과 공포가 합쳐진 패닉 상태였고, 그 공포와 슬픔이 도시를 장악했다고 밝혔다.


집을 잃거나 불안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건물 잔해가 뒤덮은 거리를 채웠고 수시로 일어나는 여진으로 도시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고 지진 직후 도시 상황을 묘사했다.


옥수즈씨도 지진 당시 터키 상황은 여태 느껴본적 없는 공포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사는 곳은 지진 피해지역과 400km가량 떨어져 있는 지역이지만 지진의 충격뿐만 아니라 공포와 죽음의 충격도 함께 느꼈다"며 "아마 모든 터키인뿐만 아니라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이번 대지진으로 자연의 힘앞에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인류를 마주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구조되는 생명들로 희망의 불씨가 지펴졌고, 팔 다리가 멀쩡한 사람들은 모두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 생명이 무사히 구출될 때마다 우리는 신에게 감사했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 도시는 수도 전기를 비롯한 대부분 인프라가 망가진 상태고, 일부 악인들은 전쟁 피해를 틈타 강도행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한 현장에는 질병까지 퍼지기 시작해 지진이 끝났지만 도시는 여전히 위험하다. 사진은 보급을 받기위해 줄을 선 튀르키예 생존자들. [사진=AP]

 

아나스 씨에게 지금 현재 상황을 물어봤다. 그는 지금은 지진 초기보다는 많이 진정됐지만, 오히려 희망이 점점 사라져, 공포나 슬픔보다는 공허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약탈과, 질병 등으로 현장은 오히려 구조 초기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지진 초기에는 모든 터키인과 세계가 하나로 뭉쳐 이 비극을 이겨내기 위한 단합을 보여줘 일말의 희망과 인류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은 초기와 완전히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며 “처음에는 인류애와 희망이 안탈리아에 있었다면 지금은 약탈과 질병,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은 구조대와 연방기술구호청은 안전을 이유로 구조 작업을 중단했다. 오스트리아는 터키 내 무력 충돌로 군 구조대가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는 상황도 겪었다.

 

옥수즈 씨도 현재 혼란한 터키 상황에 대해 "악마들이 활개하고 있다"며 "전세계가 터키에 도움을 주는 와중에 정작 일부 터키인이 형제들을 배신하고 탐욕에 눈이 멀었다"고 분노했다. 이어 "그들은 분명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스테판 하인 ISAR 대변인은 “지역 간 무력 충돌이 늘고 있고, 무기도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지금부터 약탈이나 납치 등에 관련된 이들은 국가의 강한 통제가 뒤에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선포 후 하루 만에 48명이 약탈 행위로 체포됐다.

 

아나스씨 또한 안전 문제로 지금은 현장에서 철수한 상태다. 그는 주로 어린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진행했다. 그러나 약탈로 얼룩진 도시에서 더 이상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어 철수했다고 밝혔다.

 

▲ 사진은 인터뷰에 응해준 아나스씨와 그가 돌보는 아이들. [사진=아나스알무스타파]

그는 "건물의 잔해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구조 후에도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며 "도시에는 모든 것이 파괴되 모든 것이 부족해 일부 사람들이 강도로 변해 약탈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도시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질병도 퍼지고 있어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가 케어했던 9살 소년 아멧은 지진으로 일가족을 모두 잃었다. 지금 소년은 이스탄불의 친척 집으로 떠난 상태다. 아멧만 해도 사정이 조금은 괜찮은 편이다. 친척을 포함한 일가족을 지진으로 잃은 천애고아들도 많다고 밝혔다.


CNN에 따르면 야니크 튀르키예 가족사회복지부 장관은 이번 지진으로 1000여 명의 아이들이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홀로 남겨진 상태라고 보도했다.


아나스 씨는 “대지진으로 모든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며 “성인들도 문제지만 특히 아이들이 걱정이다. 재난 후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단기적 국제 지원이 아닌 장기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아니스씨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식으로 도울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지금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에는 천사들도 많지만 악마들도 많다"며 "그들은 지진 속에서도 자신만을 위해 사기를 치고 있다. 우리를 도와기 위해 물품을 지원하거나 성금을 할 때는 반드시 유니세프나 유엔같이 권위 있고 신용 가능한 곳을 통해 기부해 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진 피해자와 지역 복구를 명목으로 가짜 후원금 사기 행각이 SNS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AI로 만든 가짜 사진을 이용해 후원금을 모은 계정들을 보도했다. 가짜 모금을 진행한 '@튀르키예릴리프'는 트위터 계정은 페이팔을 통해 900달러(약 114만원)을 모았다고 밝혀 공분을 사기도 했다.


아니스 씨는 '여러분의 마음이 악마들에게 가지 않고,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기를 신에게 기도한다"고 말했다. 옥수즈 씨 또한 "우리를 도와준 모든 이들을 잊지 않겠다. 큰 빚을 졌다"며 "한국 구급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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