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회사, 나는 나”…20·30 선긋기에 기업도 순응
“회사는 회사, 나는 나”…20·30 선긋기에 기업도 순응

 

▲ 최근 획일적·수직적 구조에서 비롯된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고 다양성·수평적 구조에 발맞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조용한 사직, 이직 등 기존 기업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사진은 출근 중인 직장인들의 모습. [사진=뉴스1]

 

기업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획일적·수직적 구조에서 비롯된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고 다양성·수평적 구조에 발맞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MZ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가 기업의 핵심 인재로 부상하면서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탓이다. 변화에 뒤처질 경우 인재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인재의 유·무는 기업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요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딱 할 일만 하는 조용한 사직부터 이직 열풍까지…‘회사 보다 나’ 확고한 20·30세대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용한 사직’ 열풍이 불고 있다. 조용한 사직은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근로 방식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조직생활에 적응하고 승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거의 직장생활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조직과 조직의 이익 보단 개인과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20·30세대의 성향이 직장 생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20·30세대 1448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0명 중 8명(79.7%) 조용한 사직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응답자의 47.5%는 이미 조용한 사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답했다.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업무를 찾아서 하거나 추가로 맡지 않는다(54.2%) △초과 근무를 하지 않는다(38.2%) △부업이나 취미 생활로 자아실현을 한다(36.6%) △승진을 거부한다(8.4%) 등이 꼽혔다.

 

조용한 사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실천에 옮긴 이유로는 정당한 보상이 따르지 않는 추가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62.7%)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이어 △일과 일상의 분리가 필요해서(37.4%)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보기 때문에(23.2%) △회사와 개인의 성장을 구분하기 위해서(20.3%) △일·성과 중심의 사회가 변화하길 바라서(13.6%) 등이 뒤를 이었다. 대부분의 이유가 개인을 우선시 하는 성향과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평가된다.

 

조용한 사직과 함께 불고 있는 또 다른 유행은 ‘이직’이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선 이직이 사회생활의 필수 코스처럼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2030세대 남녀 직장인 4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7.4%가 이직을 시도했다. 이들 중 63.3%는 이직에 성공했고 나머지 24.1%는 이직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이직 시도를 하지 않은 응답자는 12.6%에 그쳤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젊은 직장인들이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다양했다. 연봉 불만족이 37%로 가장 높긴 했지만 △업무가 지루하고 스스로 번아웃 됐음을 느낄 때(26.7%) △회사가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25.2%), △체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볼 때(25.0%) 등의 답변도 높은 비율을 보였다. 연봉을 제외한 나머지 이유는 개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과 관련 깊은 것으로 분석된다.

 

20·30세대 인재 유출에 결국 백기 든 기업들, 재택근무·호칭파괴·회식자재 등 변화 선택

 

‘나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20·30세대 성향이 실제 직장 생활에서도 나타나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과 소비자 트렌드 변화 등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20·30세대 인재 확보가 필수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은 스스로 변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20·30세대의 성향에 맞춰 기업문화에 변화를 주는 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회식 자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개인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20·30세대 직원들의 성향을 배려해 각 부서에 회식자체 지침을 하달하고 있다. 회식 자제가 20·30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선 사내 복지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는 탓이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직장인 94.5%는 ‘코로나19로 달라진 회식 문화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짧은 회식’을 선호하는 비율도 60%가 넘었는데 20·30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했다.

 

호칭·연공서열 파괴도 20·30세대를 붙잡기 위해 기업들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다. 20·30세대가 수직적 구조에 대해 반감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수평적 구조로 바꾸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호칭이나 연공서열을 없애는 시도에 나서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지난 1일 경영진과 임원에 대한 호칭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기존과 같은 직책과 직급을 이용한 수직적인 호칭을 금지했다. 총수인 이재용 회장에게 ‘회장님’ 대신 ‘JY님’ 또는 ‘재용님’ 등으로 부르는 식이다.

 

LG그룹은 재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호칭 파괴를 시도한 기업 중 하나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019년 LG그룹 계열사 중 처음으로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LG유플러스는 앞서 2017년 5월부터 기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5단계였던 체계를 사원·선임·책임 등 3단계로 변경하는 등 일찌감치 수평적 조직문화 형성에 공을 들여왔다.

 

 

▲ 국내 주요 기업들은 개인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20·30세대 직원들의 성향을 배려해 각 부서에 회식자체 지침을 하달하고 있다. 회식 자제가 20·30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선 사내 복지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는 탓이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직장인 94.5%는 ‘코로나19로 달라진 회식 문화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사진은 회직 중인 직장인들의 모습. ⓒ르데스크

 

임원 직급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과거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등으로 구분됐던 임원 직급과 호칭을 통합하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부터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모두 ‘부사장’으로, CJ그룹은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도 통합했다. 지난해에는 한화그룹이 임원 호칭을 상무, 전무가 아닌 담당·사업부장 등 수행하는 직책에 맞춰 변경했다.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도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는 직원 승격의 기본조건이었던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을 폐지하는 대신 성과와 전문성을 다각도로 검증하기 위한 ‘승격세션’을 도입했다.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 폐지에 따라 사내 인트라넷에 표기된 직급과 사번 정보가 삭제되고 매년 3월 진행되던 공식 승격자 발표도 폐지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타인의 불필요한 간섭이나 번잡한 분위기를 지양하는 20·30세대를 위해 재택근무를 추진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국내 IT업계의 대표주자인 네이버는 주 5일 내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원격근무와 주 3일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는 오피스 근무 방식 중 한 가지를 6개월마다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선택은 구성원 개인의 몫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도 2020년 3월 처음으로 비대면·디지털 기반 원격근무 제도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100% 원격근무 체제를 유지 중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20·30세대 인재를 잡기 위한 대기업들의 기업문화 개선 노력이 활발히 전개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직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20·30세대 특성 상 기업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곧장 인재 유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들의 기업문화 변화 노력은 핵심 인재를 뺏기거나 몰리는 현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며 “앞으로 기업 내에서의 20·30세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만큼 기업 내부의 변화는 활발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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