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관심사 ‘명절 떡값’ 둘러싼 불편한 오해들
직장인 관심사 ‘명절 떡값’ 둘러싼 불편한 오해들
▲ 명절 휴가비(상여금), 이른바 ‘떡값’은 임금 체계에 따라 지급될 수도, 지급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엔 임금체계에 따른 조치일 뿐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굳이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사진은 출근 중인 직장인들. [사진=뉴스1]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이 가까워지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직장인들 사이에선 명절 휴가비(상여금), 이른바 ‘떡값’이 화두로 떠올랐다. 명절 시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떡값’ 이슈는 매 번 똑같은 결말로 끝맺음을 맺는다. 누군가는 기쁨을, 또 다른 누군가는 아쉬움을 표출하는 식이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기뻐할 이유도, 아쉬워할 이유도 없다. 호봉제, 연봉제 등 각기 다른 임금체계로 인해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일 뿐이다. 간혹 임금체계와는 다르게 복지 개념으로 ‘떡값’이 지급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연봉제 하에서 떡값을 받는 경우 평소 월 급여가 생각보다 적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한국에서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떡값’ 때문에 기업인·직장인 전부 속앓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에서는 설날 ‘떡값’과 관련된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공무원을 비롯해 각 대기업의 ‘떡값’ 액수를 리스트로 만든 게시물도 존재한다. 각 게시물에는 “어딘 얼마를 준다더라” “누군 얼마를 받는다는 데 나는 못 받는다” “공무원은 얼마를 받는다” “이래서 좋은 데 취직해야 한다” “작년엔 나왔는데 올해는 안 나온다” 등 다양한 댓글이 달려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떡값’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지를 방증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떡값’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떡값’을 준다는 의미는 그만큼 직원에 대한 복지체계가 잘 갖춰져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떡값’이 잘 나가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기준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떠밀리듯 떡값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사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명절 떡값을 지급하는 이유 1위는 ‘직원들의 사기와 애사심을 높이기 위해서’가 꼽혔다. 이어 ‘정기 상여금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기업은 ‘선물로 대체하고 있어서’, ‘지급 규정이 없어서’ 등을 이유로 들었다.

 

▲ 지난해 사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명절 떡값을 지급하는 이유 1위는 ‘직원들의 사기와 애사심을 높이기 위해서’가 꼽혔다. 이어 ‘정기 상여금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사진은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창고 내부. [사진=뉴스1]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주들은 여유가 돼서 떡값을 지급하면 모르지만 반대의 경우엔 난처한 수준을 넘어 마치 죄인이 된 것 같다고 토로한다. 특히 여력이 없어 떡값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금방 입소문이 나서 신규 채용에도 애를 먹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항변한다. 복지가 열악한 기업으로 낙인이 찍힌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안산시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홍정식 대표(56·남·가명)는 “경기가 좋으면 모르겠지만 요즘 같아선 명절에 해외에라도 나가있고 싶다”며 “떡값을 따로 지급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다 보니 직원들 눈치를 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직원들이 원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여유만 있다면 왜 마다 하겠나”라며 “마치 악덕 고용주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든다”고 부연했다.

 

직장인들도 언제부턴가 ‘떡값’에 민감해졌다는 입장이다. 평소엔 만족하면서 회사에 다니다가도 명절 시즌 주변에서 ‘떡값’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면 괜히 위축되고 급기야 박탈감까지 생긴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마치 좋지 않은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여기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결국 회사를 옮긴 직장인들도 일부 존재했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한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한승진 씨(35·남·가명)는 “전에 다니던 회사는 주변 사람이나 업무, 급여 등 전부 만족스러웠다”며 “다만 신생기업이고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보니 명절 휴가비나 이런 복지가 다소 약한 편이었는데 이런 부분을 주변에 이야기하니 나를 안쓰러운 듯이 평가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의 반응이 매번 한결 같으니 어느새 자괴감이 들고 위축된 느낌까지 들었다”며 “나보다 스펙이 낮은 친구들이 마치 자랑하듯 명절 휴가비나 복지 등을 이야기하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떨어졌다. 결국 1년 가량 다니다가 퇴사를 하게 됐는데 그 이후론 이력서를 낼 때 연봉이나 업무 외에 복지나 이런 부분도 함께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떡값’은 호봉제 유산, 연봉제에선 없는 게 정상…오해 이용한 복지 눈속임 주의보

 

그런데 다수의 전문가들은 ‘떡값’에서 비롯된 기업의 어려움, 직장인들의 자괴감 등은 사실 불필요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면밀히 따지면 호봉제에서는 기업과 근로자가 정하기 나름인 개념이고, 연봉제에선 아예 적용되지 않는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간혹 연봉제를 채택한 기업이 ‘떡값’을 주는 경우도 호봉제 시절 존재했던 관습이 사회 미풍양속 때문에 쉽게 없애지 못했을 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단 복지 차원에서 명절 휴가비를 지급하는 경우는 예외다.

 

▲ 연봉제는 직무나 성과, 업적, 기여도 등을 고려해 매 년 총 연봉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매 년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해 연봉이 달라지기 때문에 호봉제 보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단기간에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성과를 선반영해 결정하는 연봉제 하에서는 사전에 협의한 추가 성과급, 복지제도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연봉에 포함돼 있다. 사진은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떠나는 시민들. [사진=뉴스1]

 

노무 전문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급여체계는 크게 호봉제와 연봉제로 나뉜다. 호봉제는 근속연수와 직급을 기준으로 사전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호봉제는 성과나 업무특성 등을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근속연수만을 고려한다. 임금과 별개로 명절 휴가비(성과금) 등도 사전에 정해진 규정을 따른다. 공무원, 군인 등 성장 보다는 안정적인 운영이 필요한 조직이 호봉제를 택하고 있다.

 

반면 연봉제는 직무나 성과, 업적, 기여도 등을 고려해 매 년 총 연봉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매 년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해 연봉이 달라지기 때문에 호봉제 보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단기간에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성과를 선반영해 결정하는 연봉제 하에서는 사전에 협의한 추가 성과급, 복지제도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연봉에 포함돼 있다. 꾸준한 성장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다수의 기업이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결국 연봉제를 채택한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 ‘떡값’을 받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로 연봉제가 완전히 정착한 해외에선 사전에 협의된 실적 성과금을 제외하곤 어떤 특별한 날이라고 지급되는 ‘떡값’ 개념은 전무하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역시 ‘떡값’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연봉제에 대한 오해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연봉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떡값’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연봉에 떡값을 포함시키는 기업들이 일부 존재한다. 명절휴가비를 지급한다고 말한 후 이를 전체 연봉에 포함시키는 식이다. 예를 들어 연봉 3000만원, 추석·설 명절휴가비 각각 100만원 등으로 책정한 후 월 급여를 2800을 12로 나눠서 지급하는 식이다.

 

한 회계법인에 다니는 직장인 양희승 씨(35·남·가명)는 “예전에 다니던 한 회사는 처음 계약을 할 때 초봉 4000만원, 식대, 명절휴가비 등을 제시했다”며 “그 당시만 해도 연봉제에 대해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할 때였는데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곧장 입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중에 급여 명세서를 받고 나서야 식대, 명절휴가비 등이 4000만원에 다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 때부터 명절휴가비 이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연봉만 보게 된다. 당시 주변에 나랑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상여금이나 식대, 유류비 등 기타 항목이 제외된 금액이 월 급여로 들어오는지 모르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직장인들을 상담하다 보면 회사에서 매 월 얼마씩 적게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며 이를 받을 수 없냐는 문의가 자주 들어오는데 대부분 보면 명절휴가비나 연말 정기 성과금을 받고 있는 경우다”며 “연봉제에선 사전에 따로 이야기되지 않는 한 어떤 명목이든 전체 지급된 금액만 맞으면 회사 잘못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과거 호봉제가 일반화 돼 있다가 연봉제를 받아들인 케이스라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유독 많은 것 같다”며 “명절 떡값에 대한 인식도 그 중 하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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