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퐁남·설거지론’ 신조어에 담긴 한국사회 자화상
‘퐁퐁남·설거지론’ 신조어에 담긴 한국사회 자화상
▲ 최근 남녀 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일부 극렬 이성혐오자들의 선동 행위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혼기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평가된다. 사진은 남성혐오 현상에 대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뉴스1]

 

청년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로 남녀 간 갈등에서 불거진 이성 혐오 현상이 지목됐다. 페미니스트, 남성우월주의 등으로 불리는 일부 세력의 선동에 가까운 이성 혐오 행태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급기야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들어 남성 또는 여성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 자연스레 오르내리는 현상이 근거로 꼽혔다.

 

퐁퐁남 단어 등장에 불붙은 남녀 갈등…양측 주장 모두 나름의 근거 갖춰

 

‘퐁퐁남’은 올 한해 미혼남녀 사이에서 많이 언급된 신조어 중 하나다. 또 다른 신조어인 ‘설거지론’에서 파생된 단어다. 결혼 전 연애 경험이 많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연애 경험이 적으면서 좋은 직장을 얻은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설거지에 비유하고 그 중 남성을 설거지에 사용하는 세제인 ‘퐁퐁’으로 비유한 것이다. 남성이 여성의 과거를 깨끗이 씻겨주고 새 인생을 살게 해줬다는 의미다.

 

이들 신조어는 모두 남녀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한편, 현재 서로에 대한 남녀 간 인식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표현으로 평가된다. 우선 여성들은 ‘남이 먹던 그릇을 설거지한다’는 뜻 자체가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일반화 시키는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반응이다. 반대로 남성들은 전혀 없는 이야기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흔한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은 모두 나름의 신빙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여성의 주장은 요즘엔 결혼 자체를 원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미혼 여성의 경우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비율은 22.1%로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 결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결혼 자금이 28.7%였고 고용 불안정 등이 뒤를 이었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남성들의 주장도 ‘팩트’를 근거로 하고 있다. 원하는 배우자상을 보면 여성이 남성 보다 경제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에 따르면 미래 배우자의 연봉 조건만 놓고 보더라도 여성은 연봉 6000만원~1억원 선호한 반면 남성은 연봉 3000만~6000만원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남녀 간 격차가 2배 가량 나는 셈이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에도 남녀 간에 차이가 확연했다. 남녀 모두 성격·가치관을 최우선으로 여겼지만 2위부터는 달랐다. 남성은 성격·가치관 외에 외모, 연령 등의 순으로 답한 반면 여성은 소득, 직업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결혼 후 맞벌이 시 가사부담에 대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성은 여성과 남성이 6:4의 비율로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지만 여성 중 대다수는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퐁퐁남 갈등은 남녀 간에 인식괴리 단편적 증거, 결혼기피 현상과 관련 깊어”

 

다수의 전문가들은 신조어 하나를 두고도 남녀 간에 해석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인식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단 갈등이 생겨난 배경에 주목해야 된다는 설명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다양한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남녀 간 갈등이 첨예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남녀 간 인식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결국엔 결혼기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당장 결혼 조건만 보더라도 남성 혹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인식 또는 처해 있는 현실과 서로 원하는 이상이 다르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알아서’ 또는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는 게 대다수 미혼남녀의 반응이다.

 

광화문에 위치한 대기업에 다니는 홍주현 씨(35·남)는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은 남성을 볼 때 성격을 제외하면 경제력을 최우선으로 보는 것은 여전하다”며 “그런데 그 수준이 현실과 너무 괴리가 크다고 생각한다. 연봉 6000만원이면 어지간한 대기업에 입사해 대리급 연봉인데 누구나 다 대기업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두 번 듣게 되면 ‘이번 생에 결혼은 틀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남녀 간 인식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결국엔 결혼기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결혼 조건만 보더라도 남성 혹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인식 또는 처해 있는 현실과 서로 원하는 이상이 다르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알아서’ 또는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는 게 대다수 미혼남녀의 반응이다.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퐁퐁남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게시물.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쳐]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대기업에 다니는 강승오 씨(32·남·가명)는 “사실 ‘퐁퐁남’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설마 했는데 점점 주변 유부남들이 내 이야기 같다는 이야기를 하니 아예 없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며 “물론 나 하기에 달렸고 그렇지 않은 여성을 만나면 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굳이 그렇게까지 발버둥 쳐야 하나 싶다. 결혼을 포기하면 전부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강미혜 씨(31·여)는 “요즘 퐁퐁남, 설거지론 등 남성을 격하시키는 식으로 일부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사실 평범녀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며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어찌됐던 현실적으로 남성의 경제력을 보지 않을 수 없으니 괜히 ‘나도 속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속물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의식하면서 경제력도 따지고 하다 보니 연애를 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며 “요즘에는 이것저것 눈치 보고 신경 쓸 것 없이 쭉 혼자 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변에 나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고 부연했다.

 

시청역 인근에 위치한 한 대기업에 다니는 양진선 씨(35·여)는 “사실 요새 친구들과 모이면 ‘퐁퐁남’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며 “대부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씩은 다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동안 성실하게 살았지만 결혼 후에는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살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괜히 ‘퐁퐁녀’ 취급당할 것 같아 선뜻 속마음을 밝히지 않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어 “남녀 갈등을 유발하는 단어들이 나오면서 남녀가 서로 못 믿게 되는 것 같다. 남자들은 기존에 생각하지 않았던 조건을 따지게 되고 여자들은 이것저것 따지는 남자를 피하게 되면서 서로 만날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며 “차라리 예전처럼 ‘남자는 여성의 성격과 외모, 여성은 남자의 성격과 경제력’ 이렇게 솔직하고 단순하게 서로를 봤을 때가 결혼하기 더욱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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