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땐 모범생, 취업 후 효자여도 집살 땐 ‘찬밥’
학생 땐 모범생, 취업 후 효자여도 집살 땐 ‘찬밥’
▲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을 둘러싼 역차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취약계층에 집중돼 있다 보니 노력해서 일군 성과조차 외면받고 있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사진은 인천계양 신도시 조감도. [사진=국토교통부]

 

#. 초·중·고교 12년에 대학 4년 동안 악착 같이 공부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입사해서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결혼까지 했는데 정작 특별공급 대상은 아니라네요. 아내도 저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현재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보니 소득기준에서 탈락했어요. 학교 다닐 땐 남들 놀 때 공부하며 모범생 소리를 듣고 취직 후엔 효자소리를 들었는데 막상 집을 사려니 완전 찬밥신세네요.

 

정부에서 수시로 바뀌는 청약제도를 볼 때 마다 한숨만 나와요. 완전 추첨제가 있다곤 하는데 왜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물량이 훨씬 많은 특별공급에서 제외돼야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얼마 전 학창시절 내내 공부도 안하고 놀다가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취직한 친구가 특별공급에 당첨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정말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물론 사회적 약자배려가 필요하긴 하지만 스스로 일군 결과를 인정하는 배려도 중요하다고 봐요.

 

소형평수 추첨제 늘리고 미혼청년 특공 신설…“청년 주거문제 해결 배려 목적”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을 둘러싼 역차별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청약 신청조차 불가능한 까다로운 소득조건 때문이다. 청년세대 중 상당수는 궁핍한 삶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간 게 특공 신청의 결격사유가 되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서는 소득조건이 평범한 직장인조차 허용되지 않는 수준인데다 각종 꼼수에 대한 대비책도 부족해 사실상 보여주기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6일 공공·민영주택 청약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가점제 100%였던 투기과열지구 85㎡ 이하 중소형 평수 민영주택 청약에 추첨제가 신설된다. 앞으로 60㎡ 이하는 가점 40%, 추첨 60%로 수분양자가 결정된다. 60~85㎡ 이하는 가점 70%, 추첨 30%로 비중이 변경된다.

 

소형평수에서 가점제 물량이 줄어든 대신 중장년층 선호가 높은 대형평형(85㎡ 초과)에서는 가점제가 지금보다 확대된다. 투기과열지구 내 85㎡ 초과의 경우 현행 가점과 추첨이 각각 50% 였지만 앞으로는 가점 80%, 추첨 20% 등으로 바뀐다. 조정대상지역은 가점 30%, 추첨 70%에서 가점과 추첨 각각 50%로 조정된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국토부 관계자는 “일반공급 가점은 부양가족 35점 등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유리한 구조로 짜여 있어 상대적으로 청년세대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며 “기존대로라면 청년세대는 투기과열지구 85㎡ 이하 물량조차 당첨되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에 주택 마련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추첨제를 신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공분양 청약제도도 변경된다. 그동안 기혼자 위주로 운영됐던 특별공급에 미혼 청년을 위한 물량이 마련된다. 자격은 주택 소유 이력이 없는 19~39세의 미혼 청년으로 1인 가구 월 평균 소득 140%, 순자산 2억6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연내 근로기간이 긴 청년을 우선 배려하고 부모 자산이 일정 수준 초과할 경우 청약 기회를 제한하는 방안은 추후 마련된다.

 

대기업 직장인 소외되는 특공 소득기준…“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들어간 게 죄인가”

 

다수의 청년들은 이번 공공·민영주택 청약제도 개편을 두고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숱하게 역차별 논란이 일었던 소득기준에 대한 대책 내용이 전무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미혼 청년 특별공급 물량에 대해서도 소득기준을 제시해 역차별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아 주목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에 신청하기 위한 소득조건은 우선물량 기준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 당 월 평균 소득 기준 공공주택 100%(맞벌이 120%), 민영주택 120%(맞벌이 130%) 이하여야 한다. 일반 물량의 경우엔 공공주택 130%(맞벌이 140%), 민영주택 140%(맞벌이 160%) 이하만 신청 가능하다. 소득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청약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도시근로자 가구 당 월 평균 소득에 따른 비율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3인 가구 기준 △100% 620만8934원 △120% 745만721원 △130% 807만1614원 △140% 869만2508원 △160% 964만8256원 등이다. 맞벌이 가정이 공공주택 신혼부부 특공에 신청하기 위해선 부부합산 월급 총액이 우선물량 745만721원, 일반물량 869만2508원 이하여야 한다. 민영주택은 합산 소득이 우선물량 807만1614원, 일반물량 964만8256원 등을 넘으면 신청하지 못한다.

 

고용노동부 임금직무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 직장인 평균연봉은 4606만원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383만원이다. 일반적으로 결혼적령기가 30대 초중반임을 감안했을 때 부부 모두 직장생활을 한다면 월 평균 소득 합계는 766만원이다. 남들만큼 번다고 가정했을 때 공공주택 신혼부부 특공 중 우선물량 신청은 불가능하다.

 

▲ 정부가 내놓은 청년 특별공급 기준은 평범한 직장인조차 접근하기 힘든 수준으로 평가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오로지 소득을 기준으로만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정작 노력한 사람만 소외받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르데스크

 

문제는 이러한 결과가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도출됐다는 점이다. 만약 평균 이상으로 벌 경우 특공 신청 선택지는 더욱 줄어든다. 30대 직장인 상위 25%의 평균 연봉은 5530만원이다. 월급으론 약 460만원 가량 된다. 부부 모두 상위 25% 소득 안에 포함된다고 가정했을 때 월 합산 소득은 920만원에 달한다. 이들 부부가 청약을 신청할 수 있는 신혼부부 특공은 민영주택 중에서도 일반물량 밖에 없다.

 

미혼 청년 특별공급 역시 소득기준이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1인 가구 월 평균 소득 140% 소득은 449만원이다. 30대 주를 이루는 국내 대기업 대리·과장급 평균 연봉은 각각 4790만원(월 400만원), 5824만원(485만원) 등이다. 능력을 인정받아 빨리 승진한 사람은 청년 특별공급 청약신청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정부가 청년 특별공급 신청자격에 부모 자산을 감안한다고 예고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신혼부부 특공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는 점도 논란거리다. 최근 부모 회사에서 일하며 월급을 적게 받는 대신 법인카드를 사용한 청년이 신혼부부 특공에 당첨되는 사례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학창시절 내내 공부해서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한 청년이 이른바 ‘금수저’ 보다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오로지 소득을 기준으로만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정작 노력한 사람만 소외받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공공주택포럼 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약자 배려 명분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매기다 보니 소득 기준으로 나눌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획일적인 기준을 매기는 것은 잘못됐다”며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다 보면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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