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태원에서 악마를 보았다
[데스크칼럼] 이태원에서 악마를 보았다
▲ 오주한 정치부장

10월29일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핼러윈데이를 즐기러 나온 10~20대 청년들 백수십명이 몰려든 인파로 인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국민을 한층 경악케한 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진 광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전근대사에서나 볼법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촌극이었다.

 

고대~근세에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희박했기에 이른바 ‘패잔병 사냥꾼’들이 출몰했다. 대표적 사례가 15~16세기 일본 전국시대의 오치무샤가리(落武者狩り‧낙오무사사냥)다.

 

사냥꾼들은 평소에는 평범한 농민이었지만 지방 번주(藩主)인 다이묘(大名)들 간의 전투가 벌어지면 악귀로 돌변했다. 벼를 베던 낫 등은 패잔병 약탈을 위한 흉기로 변모했다. 사냥꾼들은 대규모 전투가 끝나면 들판을 뒤덮은 부상자‧사망자에게로 몰려가 웃으면서 단체로 춤을 췄다.

 

목적은 물론 사상자들을 돕거나 위로하는 게 아니었다. 사냥꾼들은 천지를 울리는 비명소리에는 귀 닫은 채 조총·창‧칼‧갑주‧활 등 패잔병의 값나가는 물건을 모조리 약탈했다. 사상자가 반항하면 그대로 낫이 목줄기를 향했다. 그렇게 강탈당한 부상자들은 맨땅에 방치돼 지옥보다 더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갔다.

 

대표적 희생자가 “적은 혼노지(本能寺)에 있다”는 말로 유명한 아케치 미츠히데다. 주군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미츠히데는 대군을 이끌고 회군해 교토의 사찰 혼노지를 쳤다. 노부나가는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자결했지만 미츠히데는 삼일천하 끝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일전(一戰)에서 패했다. 도주한 미츠히데는 패잔병 사냥꾼들의 습격을 받아 죽창에 찔려 죽은 뒤 수급(首級)이 히데요시에게로 보내졌다.

 

그런데 이러한 야만의 시대에나 존재했던 풍경이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펼쳐져 전 국민의 눈을 의심케하고 있다. 현장에 있던 일부는 부상자들이 울부짖고 시신조차 수습 못한 아비규환(阿鼻叫喚) 옆에서 음악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고 한다. 참사현장의 한 클럽 전광판에는 “압사 ㄴㄴ(아니다) 즐겁게 놀자”는 문구가 떴다고 한다.

 

일부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고 한다. 현장을 촬영한 영상들은 각종 동영상 공유사이트에 올라 천문학적 조횟수를 기록하면서 계정주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시민들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현장에서 부상자 심폐소생술(CPR)에 나섰던 한 의사는 직장인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지나가는 20대가 ‘아씨, 홍대 가서 마저 (술) 마실까’하고 말하는 걸 듣고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몸서리가 쳐졌다”고 밝혔다. 또다른 의료인도 “시체 찍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어느 나라에나 공감능력이 없는 반(反)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전근대적 인격장애자들의 존재 실태가 적나라하게 확인됨에 따라 우리 사회에 근본적 문제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사고 당시 이태원 일대가 유흥분위기였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무리 만취했다 해도 시신을 촬영하고 춤을 추는 실태는 정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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