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홍준표와 베게티우스
[데스크칼럼] 홍준표와 베게티우스


▲ 오주한 정치부장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4세기경 로마제국의 병법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저술한 군사학논고(De Re Militari)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세상에 선악(善惡)이 존재하는 한 악에 맞서 힘을 키워야 침략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평화를 원한다면서 합법적 무력행사 조직인 경찰 등을 약화‧폐지한다면 역으로 흉악범들이 날뛰어 평화는커녕 폭력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 같은 만고의 진리 앞에 선견지명을 지닌 이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방력 강화를 주창했다. 그러나 꿈같은 이상에만 젖었거나 불순한 목적을 가진 맹목적 주화론(主和論)자들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번번이 훼방을 놨다. 맹목적 주화론자들은 외침(外侵)을 당한 후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뒤늦게 후회하곤 했다.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1548년 13세의 나이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그는 수양버들을 벗 삼아 탁상공론을 즐기는 대신 병조판서(兵曹判書) 등을 역임하면서 국방력 강화에 매진했다. 병조판서는 오늘 날의 국방장관 격이다.

 

허구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등에 의하면 이이는 임진왜란 발발 10년 전인 1582년에 이미 침략 가능성을 감지하고 ‘10만 양병(養兵)설’을 제시했다. 그 해 일본에서는 혼노지(本能寺)의 변이 발생해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인(天下人)의 자리를 노리는 등 지각변동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류성룡 등은 “군사 양성은 화를 키우는 행위”라며 10만 양병설을 강력 반대했다. 조선 조정도 대규모 상비군 확보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결국 옆 나라의 허약한 국방력을 얕본 히데요시는 1592년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를 선봉으로 하는 16만 대군을 출병시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부산 상륙 후 파죽지세로 북진(北進)한 왜군은 불과 20여일만에 수도 한양을 함락하고 수많은 조선 백성을 살육했다. 피난길에 오르면서 “이이의 말이 과연 사실이었다”고 한탄한 것으로 알려진 류성룡은 뒤늦게 전시(戰時) 재상으로서 동분서주했지만 전국토의 초토화는 막을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지도자로서 나치독일에 맞섰던 윈스턴 처칠도 같은 케이스다. 1938년 9월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 독일 제3제국 총통과 뮌헨협정을 맺고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언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일부를 히틀러에게 ‘조공’하면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게 체임벌린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처칠은 “영국은 불명예를 선택했고 전쟁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조야(朝野)는 그를 ‘전쟁광’으로 몰아가면서 조롱하고 비난했다. 누가 옳았는지는 머잖아 가려졌다. 히틀러는 체임벌린을 비웃듯 협정 체결로부터 불과 6개월 뒤에 체코를 완전 병합하고 마각을 드러냈다.

 

협정에 가담한 프랑스는 나치독일의 식민지‧괴뢰국이 됐다. 나머지 유럽국가들도 속속 히틀러에게 먹히거나 복종을 강요당했다. 뒤늦게 땅을 친 영국은 전시 수상 처칠의 지도력 하에 처절하게 항전한 끝에야 겨우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를 거둘 수 있었다. 영국은 미국의 지원을 얻는 대가로 막대한 대영제국 영토를 미국에 할양하거나 포기하는 등 출혈을 감수해야만 했다. 전쟁 과정에서의 인명피해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들이 망각된 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국방력 강화 여부를 두고 소모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간의 정상회담을 두고 “위장평화쇼”라며 경계했다. 그는 북핵에 맞서 한국 핵전력 보유를 촉구하기도 했다. 홍 시장에게 돌아온 건 ‘전쟁광’ ‘막말’ 등 조야의 비난과 조롱뿐이었다.

 

그러나 약 4년이 지난 지금 북한이 대남 선제 핵공격을 법제화함에 따라 ‘위장평화쇼’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미몽(迷夢)에서 깨어난 조야는 뒤늦게 한국 핵무장을 요구 중이다. 국민의힘은 홍 시장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

 

늦게나마 자정(自淨)의 기미가 보이고 있는 점은 환영할만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베게티우스의 잠언대로 국방력을 소홀히 한 민족에게 평화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침 야욕은 지금 6‧25 이래 극에 달한 상태다. 야당은 이미 용도 폐기된 위장평화쇼나 반대를 위한 반대 등 소모적 논쟁을 야기하는 대신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 핵전력 확보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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