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리듯 뽑은 여성 사외이사, 기업성과 기대반 우려반
떠밀리듯 뽑은 여성 사외이사, 기업성과 기대반 우려반
▲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주요 상장사가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사진=뉴스1]

 

최근 주주총회 시즌을 맞은 주요 상장사가 줄지어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이사회 구성을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한 개정 자본시장법이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성 비율을 맞추지 못할 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평가에서 좋지 않을 점수를 받게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떠밀리듯 여성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법적인 규정 도입을 통한 여성의 이사회 참여 확대는 기업 성과와 가치 창출과 전혀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별 다양성 확대가 단순히 여성 이사의 수적 증가에 국한되는 건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ESG 경영 내세운 상장기업들, 광고하듯 ‘첫 여성 사외이사’ 줄줄이 선임

 

올해 주요 상장사의 주주총회에선 여성 사외이사가 다수 선임됐다. 올해 8월까지 최소한 1인 이상의 여성 이사를 포함해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사회 성별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규제를 통해 강제하다보니 기업들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여성 사외이사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23일 주총을 개최한 LG그룹과 롯데쇼핑 등에서도 여성 사외이사 선임 주요 안건으로 상정돼 처리됐다. LG화학은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이현주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를, LG이노텍은 이희정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LG디스플레이는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롯데지주도 이날 주총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했다. 김해경 전 KB신용정보 대표이사 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다른 상장사 역시 주총에서 여성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해 놓은 상태다. 24일에는 LX인터내셔널이 손란 손스마켓메이커즈 대표를, 신세계는 최난설현 연세대 로스쿨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을 앞두고 있다.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상장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간 여성 사외이사가 없었던 기업들 마저 앞다퉈 ‘첫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22일 조영희 엘에이비파트너스 변호사를 선임했고, 현대중공업은 박현정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에 앉혔다. 현대중공업도 박현정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새로 선임했다. 앞서 지난 17일 주총에선 삼성엔지니어링이 최정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를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도 했다.

 

여성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한 기업들이 내놓는 얘기는 대동소이하다. ESG 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오는 8월 개정을 앞두고 있는 자본시장법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자본시장법 적용 대상 기업의 주주총회 소집결의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주총에서 선임되는 신규 이사 177명 중 26.5%(47명)가 여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내이사는 73명 중 2명(2.7%)에 그쳤지만 사외이사는 104명 중 45명(43.3%)이 여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정기 주총에서 제안된 신규 이사 선임안건이 모두 가결될 경우, 전체 등기임원 중 여성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8.2%(102명)에서 11.2%(145명)으로 3.0%p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규로 선임될 사외이사 104명의 이력은 교수가 43.3%(45명)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관료 출신 22.1%(23명), 재계 출신 18.3%(19명), 법조인 9.6%(10명) 등 순이었다.

 

법제화된 여성할당제, 득실 두고 찬반 격화…전문가 “강요된 다양성, 득보단 실”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사회 다양성 확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주요 상장사에서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여성 이사의 비율을 높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법으로 강제된 여성할당제가 기업성과 및 가치 제고에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사회에서 여성 비중이 증가하면 이사회의 효율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할당제라는 수단을 통해 여성의 이사회 참여를 강제하는 건 과도한 관리·감독으로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현재 기업이 요구하는 경험과 능력을 갖춘 여성 인재풀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회 성별 다양성 증대만을 위한 여성할당제는 이사회의 효율성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내에서 자체적으로 여성 임원을 내놓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사외이사로만 대체하는 식의 여성 비율 확대는 보여주기식 다양성 확대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 확대가 강제될 경우 단순히 여성 이사의 수적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만큼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제조업계 한 관계자는 “능력 있는 여성 사외이사를 찾기보다 향후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이후 ESG 경영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떠밀리듯 여성 이사를 선임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이사회 다양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당장 처벌은 없지만 대외이미지와 투자자 유치면에서 불리하다 보니 여성 이사를 최소 1명만 앉혀 놓으면 된다는 식으로 선임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요 기업들이 이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을 핵심가치로 삼아 기업경쟁력 강화와 사업성과 제고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기업의 조직문화 정착이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진환 순천향대학교 교수는 “이사회의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여성 이사가 고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직까지 국내에선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낮다보니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 확대가 기업 가치 증대로 이어지는 지 여부조차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균형을 고려하고 토큰주의나 법률에 의한 강제가 아닌 사회 및 노동정의와 전문지식에 근거해 고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한상용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의 이사회 내 여성 이사 비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며 “법적인 규정 도입을 통한 여성의 이사회 참여 확대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이사회 성별 다양성 제고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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