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을 담당하는 SH수협은행(이하 수협)이 도미노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통제 부실에서 기인한 무분별한 대출이 부실로 이어져 금융사의 근간인 재무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금융권 안팎에선 사태의 발단이 부실한 내부통제에 있다는 점에서 수장인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의 리스크 관리 책임이 불가피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툭 하면 터지는 수협 부실대출 비리, 쌓이고 쌓여 건전성·수익성 악화 ‘눈덩이 부실’ 유발
지난해 수협은행에서는 사고 규모액이 수십억 원이 넘는 대출 관련 금융사고만 2건 발생했다. 지난해 4월 적발된 금융사고는 한 지점의 직원이 대출 알선 과정에서 금품을 받으며 불법적인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의 검사에 따르면 금융사고 규모와 손실예상금액은 각각 33억원, 8억9000만원이다. 이어 지난해 6월에도 한 지점의 직원이 대출 서류를 위조해 고객 돈 수십억원을 횡령한 정황이 파악됐다.
수협은행 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 수협 소속 직원의 부실대출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수협중앙회 감사에 적발된 부실대출 관련 비리 건수는 총 17건에 달한다. 일례로 지난해 3월에는 경북 영덕군에 위치한 강구 수협에서 자금 조달여부의 불확실성이 높아 대출 취급이 불가능한 기업에 대출을 허용한 직원 21명이 징계를 받았다. 또 지난해 5월에는 경인북부수협에서 임직원 9명이 주택 담보 임직원 관련 부당 대출을 4차례 내주며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경남정치망수협에서 임직원 10명이 숙박시설 담보대출에 대해 대출비용을 임의로 상향해 취급한 뒤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연체돼 조합에 손실 위험을 초래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부실대출 관련 사건·사고는 결국 수협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모습이다. 금융사의 근간인 재무건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저축은행 및 상호금융조합 영업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수협의 고정이하여신비율(NPL)은 7.20%로 전년(4.30%) 대비 67% 넘게 증가했다. 상호금융조합 전체 평균치(5.26%)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전체 채권 중 3개월 이상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연채 돼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 비율을 뜻한다.
같은 기간 연체율 역시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수협의 연체율은 6.74%로 상호금융조합 전체 평균치(4.54%)를 2%p 넘게 웃돌았다. 농협(3.88%), 산림(5.68%), 신협(6.02%)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수치다. 2023년 말 4%대 초반을 기록하던 연체율은 불과 1년 만에 60% 넘게 급증했다.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 모두 상승 이유가 돈을 빌려주고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결국 부실대출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시중은행에서 리스크 관리를 내세워 대출문턱을 높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문제는 대출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실적 구조를 지닌 금융사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면 곧장 실적과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수협의 수익성은 지난해 크게 악화됐다. 2023년 575억의 순손실을 냈던 수협은 지난해 2725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흑자는커녕 적자 규모만 대폭 늘어났다. 1년 사이 늘어난 순손실액만 2000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신용사업부문의 적자 전환이 수협의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신용사업부문은 2023년 841억원의 흑자에서 2024년 1418억원의 당기순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수협의 재무건전성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수협의 자본적정성은 타 상호금융조합에 비해 유독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 수협의 순자본비율(NCR)은 4.90%로 2023년(5.20%) 대비 0.3%p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신협과 산림협동조합이 각각 전년 대비 0.11%, 0.18%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전년 대비 0.03%p 하락한 농협과도 무려 10배 차이다. 순자본비율은 금융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순자본비율이 높을수록 자기자본에 여유가 있어 재무건전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 안팎에선 수장인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의 책임론이 일고 있다. 수협 부실화의 근본적 원인이 빈번한 부실대출 등을 낳은 내부통제 부실에 있다는 점에서 조직 관리·감독의 정점에 있는 노 회장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이나 연체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는 것은 결국 조직 전반에 걸쳐 대출에 대한 관리·감독이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최근 금융사에서 내부통제 강화에 집중하는 것도 직원 개인의 일탈 방치 목적도 있지만 부실한 업무처리에 따른 조직 전체의 피해를 막으려는 목적이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대 대표는 “금융사에서 건전성 관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건전성이 곧 회사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며 “금융사고는 회사 건전성과 수익성을 모두 훼손하기 때문에 회사 경영진 차원에서 철저한 감독·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수협은 그런 측면에서 조금 미흡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협은 기업 지배구조상 지역 조합장들과 중앙회장간의 유착관계가 깊어 금융사고 재발 확률도 타 금융사에 비해 더 높은 편이다”고 덧붙였다.
일련의 사안과 관련,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지난해 약 2700억 정도 적자가 난 것은 맞지만, 부실대출이 이번 수익성 악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며 “2700억 중 1200억~1300억원 가량은 어업인 지원 사업에 사용돼 어민을 위한 부득이한 지출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감원의 대손충당금 규모 증액 요구에 나머지 1400억원의 적자 중 800억원 정도는 대손충당금 비용으로 사용돼 실질적으로는 600억원 가량의 부실이 발생한 것이다”며 “지난해 고금리가 유지되면서 차주들의 이자 부담 비용이 높아져 부득이하게 손실액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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