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립할 능력을 갖췄음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20~30대 청년들이 늘고 있다. 과거 자립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부모에 얹혀사는 형태가 아닌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고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부모와 함께 사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부정적이었던 캥거루족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OECD는 한국 청년들의 81%가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OECD 36개국 가운데 1위로 평균 1.6배에 달한다. 과거 캥거루족은 경제적·정신적으로 자립심이 부족해 계속적으로 부모에게만 의존하려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다. 하지만 최근 주변에서 보이는 신(新)캥거루족은 과거와 달리 개인의 경제적인 활동은 하고 있으면서 부모님과 주거와 생활은 공유하고 있는 형태다.
최근 MBC EVERY1에서 방송중인 ‘다 컸는데 안 나가요’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스타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파일럿으로 시작했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얻으며 종영 전 정규편성이 결정됐다. 첫 방송에서 공개한 독립하지 않은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이유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지난해 다시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된 최예지 씨(29·여)는 “부모님과 따로 살 때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적이 많았다”며 “혼자 살면서 편하기도 했지만 외로웠던 적이 더 많았고, 결국 출퇴근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느낌이 들고 혼자 살 때보다 많은 비용을 아끼게 됐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캥거루족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리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부 유럽 국가들은 청년 실업률이 높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고용도 불안정해 고정적인 소득을 얻는 게 어렵다. 이에 많은 유럽 청년들도 최대한 독립을 미루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가족 간의 유대가 강한 남유럽과 동유럽의 경우에는 부모와의 동거가 부정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 자녀의 독립에 관대해 결혼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자녀를 낳은 이후에도 독립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인 알레인 씨(42·남)는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20세가 넘으면 부모랑 따로 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 경제적인 문제로 생겨난 자연스러운 변화로 본다”며 “30세가 넘어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위스 아내를 만나 현재는 스위스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15살, 17세인 나의 아이들도 최대한 늦게 독립시키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인 데니슨 씨(38·남)는 “20살에 대학 기숙사에 살기 시작하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직장도 없이 살려고 하니 너무 힘들었다”며 “최근 독일에서도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보니 최대한 늦게 독립을 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게 그렇게 나쁜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캥거루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들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빠르게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독립을 미루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독립할 의지가 없이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모습을 오히려 요즘 청년들에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취업난, 고물가, 주거난 등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 했던 것들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며 “이러한 부담 중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캥거루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을 무작정 나쁘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결혼이나 출산 등 금전적인 문제로 포기했던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선보다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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