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의 지도감독과 감사를 받는 지역농협의 횡령·배임사고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같은 지점에서 횡령·부당대출 등 각종 금융사고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내부통제가 전혀 되지 않는 곳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직전 임기 당시 금융사고 발생 전적을 가지고도 연임에 성공해 현재도 조합장 명함을 지니고 있는 이들도 다수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농협 조직 특유의 지배구조 개선 없이는 금융사고 재발을 막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사고 재발 지점만 수십 곳…고객돈 횡령 이후에도 자리 지키는 조합장 여럿
24일 농협중앙회의 농·축협 제재내용 공시에 따르면 경남 새고성농협에서 직원 6명이 고가감정을 통해 부당대출을 실시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들은 감정평가 시 담보물의 개별요인, 기타요인 등을 임의로 상향 적용했으며 가족 명의를 이용한 의뢰인의 대출 요구를 방조했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 6명 중 감봉에 처해진 직원은 3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변상 수준의 제재를 받았다.
새고성농협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타인명의 이용 대출, 사적금전대차 등으로 이미 2차례나 제재를 받은 적 있다. 특히 사적금전대차 사고의 경우 지점 임원까지 연루돼 있었다. 해당 임원은 직원 8명과 함께 고객과 임직원 간의 사적금전거래를 실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처벌 수위는 ‘직무정지’에 그쳤다.
경북 상주 농협에서는 직원 5명이 작당해 시재금을 횡령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횡령 제재가 가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채무자의 위조 서류를 확인하지 않은 채 부동산 담보대출을 시행한 사실도 적발됐다. 충남 서천 농협에서는 지난해 3월 임원의 업무 과실 제재가 가해진 후에도 올해 6월 무보증신용대출, 9월 부당대출 등 두 차례의 금융사고 제재가 발생했다.
경기 파주연천축협에서는 올해 5월 한 직원이 고객의 자금을 자신의 명의로 된 정기예탁금에 가입한 사실이 적발됐다. 해당 지점에선 지난해 9월 직원 4명이 부정 감정평가 방조 혐의로 모두 정직과 감봉 처분을 받은 일도 있었다. ▲웅동농협(2024년 2월·7월) ▲금남농협(2024년 3월·7월) ▲경산축산농협(2023년 3월·2024년 8월) 등에서도 금융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전북 동진강낙농축협의 경우 금융사고 발생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무려 5번의 금융사고가 벌어졌다. 이 중에는 수천만원이 넘는 고객 대출상환금 횡령도 포함돼 있다. 해당 횡령 사건의 발생일은 2018년 6월로 현 김투호 동진강낙농축협 조합장이 재직했을 당시다. 김 조합장은 지난 2016년 제 9대 조합장에 취임한 뒤 3연임에 성공해 지난해 3월 제 11대 조합장 자리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 발생과 그럼에도 책임자가 계속해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배경에는 농협 조직 특유의 지배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역 농협 조합장이 자신들의 지도감독과 감사의 총책임자인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심각한 ‘도덕적해이’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위 말하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문화가 농협 조직 내부에 만연해 있다는 주장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조합장 재직 당시 내부 직원의 고객 자금 횡령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책임을 지지 않고 연임을 이어나가는 것은 개인의 욕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중앙회가 감사를 맡고 있지만 조합장이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구조에선 강력한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농협 조직 내의 모럴헤저드(도덕적해이)가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말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금융사고가 발생한 지점에서 불과 1~2년 이내에 금융사고가 재차 발생하는 것은 내부통제 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며 “사고 발생의 원인을 발본색원해 금융사고의 재발을 철저히 근절해야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전혀 구축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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