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능력만능주의 역사’ 오점…부실 내부통제에 고개 숙인 임종룡
모피아 ‘능력만능주의 역사’ 오점…부실 내부통제에 고개 숙인 임종룡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과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전례없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국무조정실장과 금융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모피아 대부로 불린 임 회장이 민간 금융지주사 회장을 맡은 이후 불미스런 일로 국감 증언대에서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연출됐다. 금융당국 수장까지 맡았던 인물이 피감기관 회장으로서 국감에 불려나가 질책을 받은 것이다.

 

국감에서 부실 내부통제와 금감원 패싱 등으로 수많은 질타와 비판을 받은 임 회장이지만 그를 향한 먹구름은 여전하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조기사퇴 등 향후 거취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는 등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금감원 검사 결과와 배치되는 면피성 발언을 내놓으면서 금융당국과 기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출신 모피아 대부, 공직과 민간 금융사 ‘왔다갔다’

 

임종룡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질책을 받은 건 금융지주 수장으로서도 전 금융당국 수장으로서도 전례없는 일이다. 장관급 공직자 출신 인사가 민간 금융회사로 진출한 이후 불미스런 일로 국감에 서면서 임 회장 본인뿐 아니라 몸 담았던 공직기관에도 오점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 회장은 2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에서 은행제도과부터 증권제도과, 금융정책과, 종합정책과 과장을 거쳐 경제정책국 국장을 역임했다. 기획재정부로 변경된 이후 기획조정실 실장을 맡는 등 모피아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그는 보수정권에서 경제금융 사령관 역할까지 도맡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실 경제 비서관과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았다. 이후 기획재정부 1차관을 거쳐 장관급인 국무총리실 실장까지 역임했다. 임 회장이 모피아 출신인사들 사이에서도 대부라고 불린 배경이다.

 

▲임종룡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질책을 받은 건 금융지주 수장으로서도 전 금융당국 수장으로서도 전례없는 일이다. 사진은 금융위원장 시절 임종룡 회장. [사진=뉴시스]

 

박근혜 정부 들어 공직에서 물러난 임 회장은 2013년 6월 돌연 민간 금융지주사 회장으로 향하면서 뒷말이 무성했다. 고위공직자 출신 인사가 금융지주 회장에 오르면서 모피아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더욱이 그가 향한 곳이 NH농협금융지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든 곳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적지 않았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위 공직에 몸담았던 인사가 민간 금융지주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만큼 금융인으로 활동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2015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금융당국 수장인 금융위원장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공직서 민간 금융지주사로 자리를 옮긴 지 불과 2년도 안된 시점에 또 다시 관으로 복귀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임 회장은 2016년 11월 장관급 인사가 아닌 장관으로 내정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에 힘입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돼 포부를 밝히기도 했지만 그 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되면서 기재부 장관으로서 근무하진 못한 채 금융위원장으로 복귀했다.

 

반면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임 회장은 금융권의 국정농단에 일조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고초를 겪었다. 당시 금융당국 수장을 맡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내 1위 국적선사인 한진해운엔 지원하지 않아 도산하도록 방치하면서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진보정권에서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또 다시 화려하게 복귀한 시점도 보수정권인 윤석열 정부 들어서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경제·금융정책을 도맡았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경제부총리 후보로 급부상했지만 임 회장은 이를 고사했다.

 

윤석열 정부의 요직을 고사한 임 회장이 선택한 건 또 다시 민간 금융지주사 회장이었다. 당시 연임이 유력했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이 돌연 자진 사퇴한 이후 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지원했고, 2023년 3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했다. 정부 요직과 민간 금융지주사 회장을 수차례 오가는 이례적인 행보를 이어온 것이다.

 

우리금융지주 내부통제 부실 사과했지만 조기사퇴는 일축

 

▲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수장을 맡은 이후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그를 향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이복현 금감원장(왼쪽)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뉴시스]

 

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수장을 맡은 이후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그를 향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을 비롯한 다수의 금융사고가 발생했을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소통없이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등 금감원 패싱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임 회장은 횡령·부당대출 등 금융사고의 책임으로 사실상 사퇴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조기 사퇴에는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국감에서 계열사 부당대출과 관련해 임 회장은 “책임을 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은 조직안정과 내부통제 강화 등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조기 사퇴에 대해선 일축했다.

 

금융당국과의 대립각도 커지고 있다. 임 회장은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을 이미 3월쯤 보고받고도 이를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았다. 여신심사 소홀이라 금감원 보고 의무가 없다는 게 우리금융 측 설명인데, 정작 금융당국이 이를 공론화하며 문제 제기하자 3시간도 안돼 배임·사기 등의 혐의로 경찰서에 수사 의뢰를 맡겼다고 밝혔다.

 

국감에 출석한 임 회장은 금융당국의 검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그는 “우리금융은 이번 사건이 굉장히 엄중하다고 생각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책임지고 감사했다”며 “결코 전임 회장을 비호하거나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이 1월 내부검사에서 부당대출 정황을 발견하고도 4개월간 지연했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부당대출 사건을 제보를 통해 인지하고 현장검사를 실시해야 했다. 은행법 34조3항에 따르면 은행은 횡령·배임 등 금융범죄와 관련한 금융사고를 사고가 발생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는다.

 

그간 금감원은 피감기관이 검사 결과에 대해 반박할 때마다 고강도 감독·검사로 대응해왔다. 결국 과거 금융당국 수장이었던 인사가 금융당국으로부터 고강도 감독을 받게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실제 금감원은 내년 하반기로 예정됐던 정기검사를 1년 앞당긴 상태다. 우리금융지주 및 계열사의 내부통제와 조직문화 등 경영 현황과 지배구조 등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 한 고위임원은 “임 회장을 향한 금감원의 고강도 검사가 모피아의 집단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감사와 제재가 이뤄질 수 있을진 의문이다”며 “고위 공직자 출신인 데다 금융당국 수장까지 맡았던 이력이 아니라면 피관기관 대표자가 금융당국을 공개석상에서 비판하는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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