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은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EU’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있다. 지리적 특성 상 각 나라별로 국경이 인접한 경우가 많다 보니 특징도 뚜렷한 편이다. 타 대륙에 비해 나라 별로 비슷한 문화가 많은 반면 주력 산업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최대한 경쟁을 피하려는 노력이 각 나라의 주력 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덕분에 각 나라의 시총 1위 기업 역시 업종 별로 다양한 편이다.
덴마크는 유럽 시총 1위 ‘샐러리맨 신화’…프랑스는 세계 1위 부자 ‘명품 황제’
유럽 내에서 시가 총액(이하 시총)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은 덴마크의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다. 시총 규모는 2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기준 원화 약 599조9477억원에 달한다.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를 중심으로 희귀병 등의 분야를 주로 다루는 기업이었으나 2020년 이후 삭센다, 위고비 등의 비만치료제로 엄청난 성과를 올리며 지난해 9월 LVMH를 제치고 유럽 기업 중 시총 1위에 올랐다. 위고비는 일론 머스크, 킴 카다시안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체중 감량 보조제로 유명한 제품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창업주 일가가 만든 재단이 회사를 소유한 지배구조를 띄고 있다. 재단은 노보 노디스크의 지주사인 노보 홀딩스를 100% 소유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 재단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재단 중 하나로 재단 이사장은 라르스 레비엔 쇠렌센(Lars Rebien Sørensen)이다. 통상적으로 재단은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갖추고 있다. 특히 이사장은 재단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데 상당한 입김을 지니고 있다.
1954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쇠렌센 이사장은 코펜하겐 대학교의 왕립수의과대학에서 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 노보 노디스크에 입사한 후 7년 만에 효소 부서의 영업 및 마케팅 부장(1989년) 자리에 올랐다. 부장직에 오른 지 5년 만에 노보 노디스크 그룹 임원 이사회(1994년)까지 합류하며 ‘샐러리맨 신화’라 불릴 정도의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후 노보 노디스크 CEO(2000년~2016년)를 거쳐 2018년에 노보 노디스크 재단 및 지주사 의장 자리에 동시에 올랐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시총을 보유한 기업은 세계 최대의 명품 기업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LVMH다. 25일(현지시간) 파리 증시 기준 LVMH의 시총은 원화 약 487조5497억원이다. 루이비통, 디올 등을 비롯해 무려 70개가 넘는 명품 패션‧주류 브랜드를 보유한 LVMH는 올해 3월 기준 지분 48.88%를 창업자이자 현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를 중심으로 한 ‘아르노 가문’이 보유 중이다.
아르노 회장은 1949년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오드프랑스에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의 MIT라 불리는 프랑스 공학 전문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후계 수업을 마친 후 대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사명을 변경한 뒤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 과정에서 패션·주류 제조·유통 기업으로의 변신으로 시도했다.
LVMH의 기업 규모가 급격하게 커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랑스 사회당의 탄탄한 지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명품사업을 국가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사회당 로랑 파위스 총리는 LVMH가 디올의 모기업 부삭 그룹 인수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등 자금조달과 관련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적극 도왔다. 그 결과 LVMH는 루이비통, 디올, 지방시 등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들의 차세대 전성기를 이끄는 ‘명품 제국’으로 거듭났고, 오너인 아르노 회장은 2024년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차지했다.
다만 세계 최고 갑부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현지에서 아르노에 대한 평가는 ‘부정’ 쪽에 가깝다. 2012년 조세 회피 목적으로 벨기에 국적을 따려고 했던 사건이 여전히 대중들의 기억에 각인돼있기 때문이다. 현재 LVMH는 가업 승계가 한창 진행 중이다. 첫째 델핀은 디올, 둘째 앙투안은 그룹 지주회사, 셋째 알렉산드로는 티파니, 넷째 프레드릭은 태그호이어, 막내 장은 루이비통 시계부문을 각각 이끌고 있다. LVMH의 전체적인 지배구조는 한국 재벌기업과 흡사한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지분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창업주 체제이기 때문에 오너 일가 지분율은 한국 재벌기업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5인 공동 창업에서 10만명 직원 둔 독일 시총 1위…스웨덴 명문가 소유 영국 시총 1위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은 IT회사 SAP SE다. SAP는 1972년 독일 만하임에서 IBM 출신 엔지니어 5명이 공동 창업한 소프트웨어 회사다. 현재는 약 10만 명의 직원을 둔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산업용 소프트웨어, 특히 ERP(전사적 자원관리)를 주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현재 SAP의 회장은 5명의 창업주 중 한명인 하소 플래트너(Hasso Plattner)다. 그는 올해 3월 기준 5.89%의 지분을 소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명문 연구대학 KIT에서 통신 공학을 전공한 뒤 1968년 졸업했다. 같은 해 그는 만하임에 있는 IBM 독일 지사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4년 뒤 하소 플래트너는 IBM 동료 4명과 함께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회사 SAP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 후 2003년까지 그는 CEO를 역임하며 실질적인 회사 경영을 도맡았고 2003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2020년 유럽 연합을 탈퇴한 영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아스트라제네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의 제약 기업으로 코로나19 당시 출시한 백신 덕에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20년 44달러에 불과하던 주가는 올해 6월 80달러를 돌파하며 81% 가량 상승했다. 2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기준 시총은 원화 약 335조6303억원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장약 로섹(Losec)을 출시한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산하 기업 아스트라와 영국의 화학회사 제네카가 합병하면서 탄생한 거대제약 회사다. 현재 발렌베리 가문의 지분율은 3.6% 수준이지만 기업 내 모든 결정은 발렌베리 가문이 등용한 핵심 인사들에 의해 이뤄진다. 발렌베리 가문은 전 세계 약 100여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회사 내에 직접적인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발렌베리가 소유한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스웨덴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현 회장 미셸 드마레(Michel Demaré)는 전임 레이프 요한슨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요한슨 전 회장은 발렌베리 가문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인물로 앞서 10년 간 아스트라제네카 회장직을 역임했다. 미셸 드마레(Michel Demaré)는 1956년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벨기에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루뱅 카톨릭 대학교에서 응용 경제학 학사와 MBA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시카고의 일리노이 은행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 다우 케미칼로 이직해 벨기에·프랑스·미국·스위스 등의 지사에서 약 18년간 근무하며 국제 금융 경력을 쌓았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설 은행이자 엄격한 프라이빗 뱅크로 잘 알려진 스위스의 UBS 부회장(2010~2019년)에 임명된 뒤 2019년 레이프 요한슨의 추천으로 아스트라제네카 이사회 멤버로 발탁됐다. 4년간의 이사회 활동의 정점으로 2023년 레이프 요한슨의 뒤를 이어 회장에 선출됐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유럽은 중세시대부터 국가 내 가문의 지배력이 막강해 지금까지도 그 기조가 계승되고 있다”며 “한국 재벌과 유사하게 해당 가문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지만 실무적인 경영에 참여하기보다는 충성심이 높고 업무 전문성이 출중한 인물들을 고위직에 앉혀 권한을 위임하는 경우가 다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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