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듯 열리는 집회 끌려 다니다 돈·휴식 다 날렸네요”
“밥 먹듯 열리는 집회 끌려 다니다 돈·휴식 다 날렸네요”

[Le view<283>]-청년 울리는 현실괴리 법(法)(⑪-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밥 먹듯 열리는 집회 끌려 다니다 돈·휴식 다 날렸네요”

일반 노조원 집회·시위 반강제로 참여, 평일엔 연차·휴가 사용 불가피

르데스크 | 입력 2023.07.17 15:56
▲ 최근 민주노총,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상급 노조 단체에 소속돼 있는 개별 기업 노조의 조합원들 사이에선 평일, 야간을 막론하고 집회·시위에 대한 제재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개별 기업 소속 조합원이 평일에 열리는 집회·시위에 참여하려면 휴식이나 돈(연차수당)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민주노총 총파업 현장. [사진=뉴시스]

 

최근 노조 단체의 집회·시위 허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상급 노조 단체에 소속돼 있는 개별 기업 노조의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제기돼 주목된다. 평일, 야간을 막론하고 집회·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개별 기업 노조 조합원을 반강제로 동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개별 기업 노조의 조합원들은 집회·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연차나 휴가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개별 기업 소속 조합원들이 일손을 놓고 파업을 벌이려면 쟁의권을 확보해야 하지만 상급 노조가 벌이는 집회·시위 자체는 쟁의권 확보 절차 없이 경찰에 신고만 하고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개별 기업 소속 조합원이 평일에 열리는 집회·시위에 참여하려면 휴식이나 돈(연차수당)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조합비 횡령, 채용 청탁, 타 기업 집회참석 강요 등 ‘노조비리 천태만상’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부터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이하 신고센터)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노사 혹은 노노 간에 은밀하게 이뤄져온 각종 불법·부당 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 신고센터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약 100일간 접수된 신고는 약 1000건에 달한다.

 

신고 사례를 유형별로 보면 △조합비 횡령과 부당집행 △부정한 채용 청탁 △노조 가입·탈퇴 방해 등 노조의 불법 행위 △노조 활동 방해 등 부당노동행위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특정 노조의 다른 노조나 근로자에 대한 권한 침해 등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듣거나 겪어봤을 법한 사안들로 유독 노노 간 갈등 유형이 많다는 점이 주목된다.


▲ 고용노동부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중에는 한 직장 내에서의 갈등 사례 외에 상급 노조 단체의 부당 행위 관련 사례도 적지 않았다. 상급 노조 단체의 부당 행위 관련 신고 사례로는 규약 등을 이유로 노조 지회의 탈퇴 방해, 조합원 등에게 협박 등을 행사해 집회 참석 강요 등이 있었다. 사진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르데스크

 

신고 사례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A기업 노조 집행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행사나 쟁의 행위가 없었음에도 직책 수행비, 판공비, 접대비 등의 명목으로 약 6000만원의 조합비를 유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B기업 노조 지부장은 조합비 5억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노조원을 임의로 제명했다. C기업 노조 위원장은 노조 회계감사 결과에 이의를 신청한 조합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회사에서 해고되도록 만들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한 직장 내에서의 갈등 사례 외에 상급 노조 단체의 부당 행위 관련 사례도 적지 않았다. 상급 노조 단체의 부당 행위 관련 신고 사례로는 규약 등을 이유로 노조 지회의 탈퇴 방해, 조합원 등에게 협박 등을 행사해 집회 참석 강요 등이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또 다른 근로자의 노동3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노조의 설립 취지를 거스른 행위로 평가된다.

 

“평일 집회·시위 참석하려면 연차·휴가써야…휴식·돈(연차수당) 전부 날리는 셈”

 

최근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선 노조에 대한 불만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워라벨’을 중시하는 청년세대 조합원들은 상급 노조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위·집회만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최근 들어 잦아진 파업·집회에 동원될 경우 연차나 휴가 사용이 불가피한데 이는 결국 개인 입장에선 타의에 의해 휴식이나 돈(연차수당)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양선일 씨(38·남·가명)는 “우리 회사는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다”며 “지금까지 우리 회사 내에서 파업이나 집회·시위에 참여한 적은 없는데 오히려 지역 다른 기업의 파업이나 서울에서 벌이는 집회·시위에는 참여한 적이 있다. 상급 노조 단체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 최근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선 노조에 대한 불만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워라벨’을 중시하는 청년세대 조합원들은 상급 노조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위·집회만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사진은 한 중소 제조업체 공장 내부(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이어 “나를 비롯해 주변 동료들도 한 번쯤 정말 나와 무관한 집회·시위에 가 본 경험이 있다”며 “노조 집행부에서 조합원들 순번을 정해놓고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가면서도 ‘내가 왜 가야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집회·시위임에도 참여하려면 연차나 휴가를 써야 하는데 결국 내 휴식이나 돈을 뺏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소속과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 건설업계 종사자는 “우리 회사나 내 개인과는 무관한 상급 노조 단체의 파업·집회에 거의 강제로 동원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참석하지 않으면 조합에서 제명한다고 협박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관행적으로 조합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일감을 받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어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파업·집회에 가자니 하루 수입 공백의 타격이 만만치 않다. 요즘에는 파업·집회가 너무 잦아져서 더욱 고민이 커졌다”고 피력했다.

 

일부 청년세대 조합원들은 집회·시위를 쉽게 벌일 수 있는 현행법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다. 누구나 신고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집회·시위를 벌일 수 있다 보니 무분별하게 집회·시위가 일어나고 결국 그 최종 피해는 하위 노조 조합원의 몫이라는 반응이다. 울산에 위치한 한 제조업체에 다니는 김주원 씨(33·남·가명)는 “애초에 집회·시위가 없으면 우리 같은 하위 노조 조합원이 강제 동원될 일이 뭐가 있겠나”라며 “최소한 평일이라도 좀 막았으면 좋겠다”고 성토했다.

 

▲ 일부 청년세대 조합원들은 집회·시위를 쉽게 벌일 수 있는 현행법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다. 누구나 신고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집회·시위를 벌일 수 있다 보니 무분별하게 집회·시위가 일어나고 결국 그 최종 피해는 하위 노조 조합원의 몫이라는 반응이다. 사진은 건설현장 근로자의 모습(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같은 회사에 재직 중인 홍순원 씨(34·남·가명)는 “상위 노조 단체의 요구를 개별 회사 노조가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우리도 조합원이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며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집회·시위를 그냥 놔두는 정부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집회·시위에 대한 최소한의 제재 장치만 있어도 지금처럼 연차수당을 포기하고 집회·시위에 끌려가는 일은 없을 것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 따르면 집회나 시위는 신고만으로 가능하다. 목적, 일시(소요시간을 포함), 장소, 주최자, 연락책임자, 질서유지인의 주소, 성명, 직업과 연락처, 참가 예정단체 및 참가 예정인원과 시위방법(진로 및 약도를 포함) 등을 기재한 신고서만 관할 경찰서에 제출하면 된다. 국회, 법원, 대통령실 등에선 집회·시위가 금지되긴 하지만 최근 법원은 헌법에 명시된 ‘집회의 자유’를 앞세워 이를 허용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집회의 자유’가 중요하긴 하지만 또 다른 국민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선에서 어느 정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집시법의 목적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다른 국민의 기본권 및 중요한 공익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데 있다”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장 합리적으로 보장하면서 다른 기본권과 공익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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