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용돈 받으면 슬슬 알바만 해도 직장인 보다 더 벌어요”
“지자체 용돈 받으면 슬슬 알바만 해도 직장인 보다 더 벌어요”

[Le view<273>]-청년 울리는 현실괴리 법(法)(⑩-지자체 현금복지) “지자체 용돈 받으면 슬슬 알바만 해도 직장인 보다 더 벌어요”

청년수당·면접수당 등 지자체 청년층 대상 현금복지 부작용 속출

르데스크 | 입력 2023.07.03 16:16
▲ 전국 각 지자체 주도의 청년층 대상 현금복지에 의존해 취업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어렵게 취직해 열심히 회사에 다니나 지자체 현금지원을 받으며 가벼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나 수입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장인 청년 보다 알바생 청년의 월 수입이 더 높은 사례도 적지 않다. 사진은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는 청년 직장인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 경기도 등을 비롯한 전국 각 지자체 주도의 청년층 대상 현금복지 정책 부작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 취약층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이 아닌 무분별한 선심성 사업으로 성격이 변질된 탓이다. 그 결과 지자체의 현금지원에 의존해 취업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어렵게 취직해 열심히 회사에 다니나 지자체 현금지원을 받으며 가벼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나 수입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장인 청년 보다 알바생 청년의 월 수입이 더 높은 사례도 적지 않다. 미취업 청년의 구직 의욕을 북돋고 경제적 여유를 부여해 직업 선택의 폭을 넓히도록 한다는 취지는 퇴색되고 정책 효과 자체도 사라진 셈이다.

 

취직 하려다 알바로 노선 변경…“서울시 청년수당 받으니 직장 다닐 때와 비슷”

 

서울에 거주하는 양승훈 씨(28·남·가명)는 올해 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5개월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퇴사 초기만 해도 고정지출 때문에 곧장 재취업할 계획이었지만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이라는 것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청년수당을 받으면 쉬엄쉬엄 알바만해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양 씨는 현재 커피숍에서 시급 1만1000원을 받고 하루 5시간 씩 알바를 하고 있다. 하루 5만5000원, 주급으로 따지면 주휴수당을 포함해 33만원 가량을 번다. 한 달을 4주로 잡았을 때 월 수입은 132만원 가량이다. 여기에 서울시에서 지급하는 청년수당 50만원을 더하면 양 씨의 월 수입은 182만원 가량이다.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직장인 월급(소득세, 4대보험 제외)과 30~40만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양 씨는 “청년수당 50만원을 받지 않았다면 경제적으로 좀 빠듯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오히려 충분히 쓰고도 남는다”며 “어지간한 중소기업 초봉이 25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훨씬 적게 일하면서 비슷하게 버는 셈인데 누가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겠나. 솔직히 청년수당을 받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구직활동을 독려하는 것과는 정반대 결과를 내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 성남시장 시절 이미 한 차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현금지원 정책을 시행한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전체로 대상을 확대했다. 경기도의 청년층 대상 현금지원 정책인 ‘청년배당’의 경우 금액은 낮지만 자격요건이 없어 사실상 전체 청년층에게 공짜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진은 성남시장 시절 청년배당에 대해 설명 중인 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모습. [사진=뉴시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현금지원 성격의 복지정책을 시행 중이다. 각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긴 하지만 구직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미취업 또는 단기근로자 청년에게 현금을 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청년층의 구직활동 기간 동안 현금을 지급해 생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지자체는 서울시다.

 

서울시는 고 박원순 시장 재임시절인 2015년 ‘청년수당’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중위소득 150% 이하 미취업 또는 단기근로자 청년을 대상으로 신청자에 한해 매 월 50만원, 총 300만원의 현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경제적 안정을 도모해 안정적으로 구직활동을 할 수 있게끔 돕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매 년 신청자를 모집해 매 월 50만원씩, 총 3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후 전국 각 지자체에선 유사한 개념의 청년 대상 현금지원 정책이 줄줄이 등장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경기도였다. 앞서 성남시장 시절 이미 한 차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현금지원 정책을 시행한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전체로 대상을 확대했다. 경기도의 청년층 대상 현금지원 정책인 ‘청년배당’의 경우 금액은 낮지만 자격요건이 없어 사실상 전체 청년층에게 공짜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유일한 자격요건은 경기도에 3년 이상 거주 또는 합산 거주기간 10년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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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앞서 양 씨의 사례와 같이 곧장 취업이 가능한데도 지자체의 현금 지원 때문에 취업을 미루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책 도입 배경의 전제를 ‘취업이 어려운 상황’으로 못 박은 데서부터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슬슬 알바만 해도 지자체 현금지원 덕에 비슷한 수준의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다 보니 직장 생활을 하는 청년 직장인들의 박탈감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원 대상은 무직자나 주 30시간 또는 3개월 이하로 계약된 단기근로자다. 직장을 그만둔 상태에서 하루 6시간 남짓한 시간 알바를 해도 신청 가능하다. 올해 최저시급은 9620원이지만 대부분의 알바 시급은 이미 1만원을 훌쩍 넘긴 상태다. 어지간한 동네 커피숍의 경우도 1만원~1만1000원 수준이고 주로 야간이나 저녁 일하는 호프집이나 식당 같은 경우는 1만2000원~1만5000원 가량이다.

 

▲ 서울시가 지급하는 청년수당에 신청한 청년의 경우 하루 6시간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월 수입이 직장인에 버금가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현실과는 동 떨어진 전제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선심 행정이 청년층의 구직 의지를 꺽고 근로의욕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청년수당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청년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호프집에서 시급 1만2000원에 하루 5시간씩 일한다면 하루 일당은 6만원이다. 여기에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주당 수입은 36만원에 달한다. 1년이 총 52주인 점을 감안하면 월 평균 약 4.3주가 되기 때문에 월 수입은 154만8000원(36만원*4.3)으로 계산된다. 여기에 청년수당 50만원까지 받는다면 하루 5시간씩만 일하면서도 한 달에 204만8000원의 수입이 생긴다.

 

사람인에 따르면 중소기업 기업 898개사를 대상으로 ‘2022년 신입사원 연봉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2881만원(세전 기본급 기준)이다. 월 급여로 따지면 약 240만원이다. 여기에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장기요양보험 등과 소득세, 지방소득세 등을 빼면 실제 근로자가 가져가는 실수령액은 216만원 가량이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한다고 가정해도 하루 6시간 일하는 알바생의 월 수입과 비슷한 셈이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김주희 씨(27·여)는 “주변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곧장 취직하지 않고 알바를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며 “그 친구들 하는 말이 ‘6개월 정도는 청년수당 받으면서 알바하면 회사 다닐 때와 비슷하게 벌기 때문에 굳이 급하게 취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힘들게 직장생활하는 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며 “미래를 위해 회사에 다니곤 있지만 언제든 그만 둘 준비는 돼 있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현실과는 동 떨어진 전제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선심 행정이 청년층의 구직 의지를 꺽고 근로의욕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진형 경인여대(경영학과) 교수는 “지자체의 청년층 대상 현금지원 정책은 취약계층 청년의 구직 전 경제적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게 포퓰리즘으로 변질됐다”며 “그 결과 지금은 그저 악용되거나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부작용만 양상하는 정책이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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