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갖고 싸우는 국회, 공정한 보상 외치는 청년들
근로시간 갖고 싸우는 국회, 공정한 보상 외치는 청년들

[지금 대한민국<218>]-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근로시간 갖고 싸우는 국회, 공정한 보상 외치는 청년들

여야,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두고 “줄여야” “늘여야”

르데스크 | 입력 2023.04.10 16:08


▲ 정부가 주 52시간으로 제한됐던 근로시간을 업무량이 많을 때는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늘리도록 하는 유연화를 추진해 찬반논란에 휩싸였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 64시간까지만 근무하도록 한다. 사진은 지난달 6일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이동하는 직장인들. [사진=뉴시스]

 

정부발(發)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도입이 정치권‧사회에서 큰 여진을 남기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국민 설문조사를 통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야당에서는 “탁상공론” 등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여권은 근무시간을 주 최대 69시간으로 늘리는 대신 52시간 이상 초과근로한 만큼 휴식을 보장함으로써 청년층이 만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문재인정부부터 추진된 ‘저녁 있는 삶’ 등을 저해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논란의 맥락을 짚지 못한다는 비판이 국민들 사이에서 높아진다. 근로자들이 원하는 건 근로시간의 양이 아닌 ‘질’이라는 것이다. 근래 르데스크가 서울 주요 지역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특히 20‧30세대의 요구는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압축요약된다. “문제는 돈이다, 이 바보야!”

 

與 “주 최대 69시간 근무하고 11시간 휴식”

 

지난달 6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근로시간을 현행 주 52시간에서 주 최대 69시간으로 늘리고 장기휴가 이용이 가능토록 하는 게 내용이다. 주 69시간 근무를 모두 채우면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주 근로시간 64시간 이내를 준수토록 했다.

 

개편안이 공개되자 야당에서는 반발이 속출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아무리 소통‧홍보를 강화한들 노동자를 과로사로 내모는 살인근무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같은달 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편으로 연장근로 단위를 분기로 늘릴 경우 과로사 수준까지 장시간 노동을 강제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여권은 청년층이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환영한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지난달 8일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 부분에 대해 제가 볼 때는 20‧30과 관련된 청년층 같은 경우도 다들 좋아한다”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도 지난달 6일 개편안 발표에서 “(청년층의) 적극적인 권리의식이 법을 실효성 있게 하는 데 크게 도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권에서도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를 두고 찬반이 엇갈렸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에 의하면 지난달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MZ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불과 이틀 뒤에는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野 “기절근무 대신 ‘저녁 있는 삶’ 보장해야”

 

여론도 개편안을 두고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4~16일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응답자의 56%는 “개편안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36%, 의견유보는 8%였다.

 

특히 20‧30세대에서 반대여론이 높았다. 20‧30대 4명 중 1명(26%)은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마저 과하다고 밝혔다. 갤럽은 “과거 법정노동시간 단축을 가장 반긴 세대가 20‧30대였고 가장 꺼린 직업군이 자영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주 60시간 이상 근무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던 여권은 지지율 하락에 끝내 한 발 물러섰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달 13~17일 전국 성인 2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0%p)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전주 대비 2.1%p 하락한 36.8%, 국민의힘 지지율은 4.5%p 내린 37.0%로 집계됐다. 민주당 지지율은 3.8%p 오른 46.4%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며 기존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달 31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근로시간 개편 관련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 조찬간담회에서 “대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심층인터뷰를 실시해 여론수렴을 더욱 폭넓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광주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대통령의 주 최대 69시간제 보완 지시에는 긍정적 여론이 더 많았다.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달 25~27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상기된 여론조사들 상세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응답자의 52.3%가 “보완 지시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8.3%였다. 20대의 공감 응답은 49.6%(비공감 37.2%), 30대의 공감 응답은 50.9%(비공감 39.7%)였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저녁 있는 삶’을 지켜냈다고 자축했다. 이재명 대표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을의 처지가 어떤지 잘 아는 청년노동자들에게 ‘주 69시간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휴가 가라’는 정책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다가왔을까”라며 “노동자 권리를 퇴행시키는 노동개악을 막아내겠다”고 다짐했다.

 

민심은 “저녁에 굶주리며 쉬는 대신 일하고 배 부른 게 낫다”

 

그러나 근로시간 ‘숫자’에만 집착하는 여야가 민심의 정확한 요구는 짚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근로자, 특히 청년층이 원하는 건 근로시간을 몇 시간 줄이거나 늘리는 게 아니라 근로 강도에 걸맞은 ‘보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르데스크가 최근 서울 주요 지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명확해진다.

 

르데스크는 이달 초 청년층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명동‧강남‧홍대 등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착수했다. 질문은 “근무시간 5시간에 월급 200만원, 근무시간 12시간에 월급 600만원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나”였다. 그 결과 응답자 총 126명 중 77명(61.11%)이 ‘12시간에 600만원’을, 49명(38.88%)이 ‘5시간에 200만원’을 택했다. 시민 과반이 비교적 낮은 급여가 기다리는 ‘저녁 있는 삶’ 대신 높은 급여가 보장되는 ‘땀 흘리는 삶’을 택한 것이었다.

 

유사한 결과가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엠브레인퍼블릭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의뢰로 지난달 3~10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응답자의 58.7%가 “초과근로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받는다”는 41.3%였다.

 

직장갑질119에는 “69시간 절대 하면 안 된다. 말은 (초과근로 수당을) 챙겨준다고 하는데 제대로 주지도 않고 5분도 쉴 수 없다” “오늘 납품일인데 납품이고 나발이고 집에 가야겠다. 야근수당도 없고 저녁도 내 돈 주고 사먹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등 제보가 접수됐다고 한다.


▲ 르데스크가 4월 초 서울 명동‧강남‧홍대 등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현장. [사진=김진완] ⓒ르데스크

 

때문에 여야가 근로시간 자체에만 집착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보상을 원하는 국민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요구가 솟구친다.

 

서울 서초구에서 영등포구로 출퇴근한다는 직장인 지성호(33‧남)씨는 “너도나도 경제적 빈곤을 호소하는 현 세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그런데 ‘월천(월급 1000만원)’ 받아간다는 정치인들, ‘여의도 2시 청년들’이 시간놀음이나 하면서 배부른 소리나 하는 게 한심하다”고 직격했다. 직장인 김예나(28‧여)씨는 “지금의 20‧30은 부모세대보다 못 살게 된 세대다. 물가는 오르는데 채워지지 않는 통장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노동자가 일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고 건강권‧휴식권을 확실히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민신문고 등 운영을 통해) 포괄임금 오남용과 임금체불‧공짜야근 등 불법·편법 관행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도 “재계는 장시간 노동문화 개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고 포괄임금 관련 불법관행 개선을 통해 공짜노동이 근절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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