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편향된 사고를 지닌 직원의 돌발 행동으로 인한 피해, 이른바 ‘편향 리스크’를 막기 위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편향 사상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서 보니 부작용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까지 ‘확실한 해결책’이라 불릴 만한 대책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탓이다. 아직까지 편향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대책은 간접적이고 포괄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편향 사고 보유자가 일으킨 혐오 논란에 몸살 앓는 기업들, 내부 단속 고삐 쥐는 인사팀
재계 등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기업 인사팀이 부쩍 분주해졌다. 성별·정치·세대·지역 등 특정 이슈와 관련해 편향된 사고가 발단이 된 각종 사건·사고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끊이지 않다 보니 신입사원 채용이나 내부 직원 단속에 바짝 고삐를 죄고 있다. 쉽게 말해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전체를 흐리는 사태’를 미연에 막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GS25 편의점 본사인 GS리테일은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여 큰 곤욕을 치렀다. 올해 6월 르노코리아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 지난 2019년 한국콜마는 회장의 정치편향·여성비하 유튜브 시청 강요 논란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밖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부작용 사례도 여럿 존재했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K팀장은 “지금은 이직했지만 예전에 부서에 정치적 성향이 한 쪽으로 크게 치우친 직원이 있었다”며 “하루는 회식 자리에서 동료 직원들과 정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신입 직원을 크게 나무라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만류하는 팀장님에게까지 언성을 높였다”며 “그 후론 편향된 사고를 가진 사람을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대기업 소속 L수석매니저는 “예전에 옆 부서에 한 신입 여직원이 입사를 했는데 동료 직원의 진심 어린 배려까지 여성 차별로 매도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며 “하루는 팀장이 ‘기분 좋은 일 있나봐. 얼굴이 좋아 보인다’라는 가벼운 안부 인사 정도를 했는데 그 여직원이 ‘얼굴 평가 하냐’며 노발대발 하는 모습을 봤다. 그 이후론 나도 모르게 내심 신입이 들어오면 남자가 들어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사고 부적격자’ 거르고 싶어도 못 거르는 기업들, 나름의 자기방어에 선량한 취준생 불똥
문제는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기업들 입장에선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특정 분야에 있어 편향된 사고를 가졌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데다 특정 기준을 마련할 경우 자칫 차별 논란으로 더욱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는 탓이다. 결국 기업 입장에선 암묵적으로 특정 경력이나 이력을 가진 지원자를 거르는 방법 외엔 손 쓸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특정 이슈에 대해 편향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꽤 늘었고 그들의 돌발행동으로 회사 전체가 피해 입는 일이 잦은데도 이렇다 할 조취를 취하기 어렵다”며 “개인의 생각을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기 어려울뿐더러 확인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의 부작용 방지 차원에서 어떠한 기준 설정할 수밖에 없는데 기준을 공개하면 자칫 차별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것 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고 부연했다.
앞서 ‘남성을 비하하는 손 모양’으로 의심되는 장면으로 남성 혐오 논란이 한창일 당시 한 기업 관계자가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쓴 글이 큰 파장을 일으킨 적 있다. 게시물의 작성자는 ‘페미 때문에 여자들 더 손해 보는 거 같은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우리 부서만 해도 이력서 올라오면 여대는 다 걸러버린다”며 “내가 실무자라 서류 평가 하는데 여자라고 무조건 떨어트리지는 않지만 여대 나왔으면 자기소개서 안 읽고 불합격 처리한다”고 적었다. 해당 글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여성 혐오 논란으로 이어졌다.
서울 소재 한 마케팅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M씨는 “예전 취업준비생 시절 한창 면접을 보러 다닐 때 한 회사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었다”며 “당시 질문을 받고 솔직하게 답했는데 이후 합격 통보가 안와서 ‘혹시나 내가 페미 같은 답변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편향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평소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니 차라리 속 시원하게 검증 시험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고 부연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구직자가 기업을 선정해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구직자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청년 구직자 입장에선 이유도 모른 채 탈락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고 기업 입장에선 편향된 사고를 가진 인물 때문에 생기는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에게 유익한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인성, 사고 등은 실체가 모호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스펙이다”며 “주변 동료부터 부서, 회사 전체에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채용이나 인사관리 부분에 있어 편향적 사고 등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 정도는 사회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같이 암묵적으로 거르는 관행은 직원과 회사 모두의 피해만 유발할 뿐이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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