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당국이 최우선과제로 내세운 내부통제 강화 주문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 지역 농협에 소속돼있는 내부 직원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불법으로 규정된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 수위는 감봉 또는 견책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국 각 지역 농협(단위 포함)의 관리·감독은 농협중앙회가 맡고 있다. 농협중앙회 수장은 각 지역 농협의 조합장들의 투표로 선출한다.
휴대폰번호, 통장 비밀번호 바꿔서 고객 돈 꿀꺽…도 넘은 지역 농협 비리
최근 3개월 동안 농협중앙회 감사에 적발된 비리 건수는 23건에 달한다. 월별로는 6월 5건, 7월 10건, 8월 8건 등이다. 적발된 비리 내용은 고객 자산 횡령, 부당 대출, 고가 감정 등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끼치거나 특수관계인에게 금전적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부 ‘불법’으로 규정된 사안들이다.
앞서 충북 동충주농협에서는 내부 직원 4명이 공모해 고객의 예탁금 통장을 임의로 이월발급하고 고객의 휴대폰번호를 자신들의 번호로 변경한 뒤 통장비밀번호를 변경해 예탁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들은 만기된 정기예탁금을 고객에게 원금만 지급하고 이자를 횡령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그런데 비리를 저지른 직원 4명 중 징계 해직에 처해진 직원은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직원은 감봉 3개월, 감봉 1개월, 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전남 광주축산농협에서는 내부 직원 3명이 신용상태가 좋지 않아 대출이 불가능한 고객에게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부당하게 대출을 해준 사건이 발생했다. 3명 모두 처벌 수위는 감봉과 견책에 그쳤다. 경남 창원진동농협에서는 직원 6명이 대출 채무자에게 본인의 자금을 대여하거나 차입하는 등 고객 및 지인과 사적금전대차 거래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가감정 적발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경남 진주북부농협에서는 직원 7명이 담보물의 개별공시지가와 기타요인 등을 임의로 상향 적용해 대출한 사실이 적발됐다. 경남 동거창농협에서는 직원 3명이 여신업무 담당자임에도 담보물 감정평가 업무를 겸직하면서 평가에 유리한 비교표준지를 임의로 선정해 고가감정 평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 직원 모두 처벌수위는 감봉·견책 등 경징계에 불과했다.
농협의 내부 직원 비리 사건은 해마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19~2024.8) 농·축협 금융사고 현황’에 따르면 기간 내 발생된 금융사고 건수는 280건, 사고액은 1119억원에 달했다. 1000억원이 넘는 사고액에도 회수율(사고금액에 대한 회수 비율)은 188억원(약 17%)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농협에서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과 농협중앙회장 선출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조합장이 관리·감독의 총책임자인 중앙회장을 선임하는 구조 하에서는 농협중앙회장이 각 지역 농협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지역 농협에서 발생하는 비리의 최종 책임을 농협중앙회장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금융권에서 금융 사고들이 해마다 끊이지 않는 것은 농협 특유의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다”며 “각 지역 농협이 관리·감독 총책임자인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구조이다 보니 지역농협에 이어 농협은행까지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조직 전반에 퍼져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금융당국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닌 농협 내부적으로 스스로 예방 및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농협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다수 발생하면서 기업 공신력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해 내부적으로 임직원 경각심 고취에 힘쓰고 있다”며 “특히 금융사고가 발생한 지역농협에 대해서는 자금지원 제한, 점포설치 지원 제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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