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이직 금지’ 美 판결…고급인력 빼가는 中 견제될까
‘경쟁사 이직 금지’ 美 판결…고급인력 빼가는 中 견제될까

미국 사법부에서 근로자의 동종업계 경쟁사로 바로 이직하면 안 된다는 판결이 나오며 논란이 일고 있다. 핵심인력이 이직할 시 경쟁업체에게 기술을 유출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판결이다.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 속 국내에서도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핵심인력 이직 방지 조치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 CNN방송, 블룸버그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텍사스 연방지법 에이다 브라운 판사는 미 상공회의소와 텍사스 세무 회사가 앞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경업 금지 의무’ 폐지 조치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브라운 판사는 FTC의 규정을 합리적인 설명 없이 부당하게 광범위하다고 설명하며 이를 중단 시켰다.


‘경업 금지 의무’는 기업이 근로자와 근로계약으로 계약 종료 후 일정 기간 이상을 관련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항이다. 퇴사후 경쟁사로 바로 넘어가 핵심 기술이나 영업기밀을 넘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FTC는 지난해 고용주가 근로자와 계약할 때 ‘퇴직 후 일정 기간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창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계약 사항에 넣는 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전면 금지시키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반대로 미국 재계는 FTC의 행보를 반대해 왔다.


판결 후 미국 재계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수잔 P.클락 미 상공회의소 회장 겸 CEO는 “이번 판결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맞처 싸우는 상공회의소의 중요한 승리였다”며 “FTC의 전면적인 경업 금지 계약 금지는 미국 근로자, 기업 및 우리 경제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불법적인 권력 확장이었다”고 논평했다.


국내에서도 연구원이나 임원 등 핵심인력들이 국외 기업으로 이직할 때 영업기밀이나 기술 유출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미국 같이 해당 조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올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위반 시 하루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는 2022년에는 SK하이닉스를 퇴사한 뒤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에 취업했다. 퇴사 당시 2년간 경쟁업체 취업하지 않겠다는 약정서를 작성했지만 이를 어기고 이직한 것이다.

 

▲ 국내 산업계에서도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외 기업 이직에 제한을 둬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반도체 기업 근로자들.[사진=미국반도체산업협회]

 

법원이 SK하이닉스 가처분 신청을 처리하고 판결을 내리기까지 무려 7개월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핵심 기술이 넘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후 HBM 후발주자인 마이크로는 최근 5양산까지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A씨가 이직하면서 SK하이닉스 HBM 기술 노하우를 함께 싸 들고 갔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해당 직원은 현재 마이크론 입사 1년 만에 임원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수사본부가 발표한 상반기 기술 유출 범죄 규모(12건)는 지난해 같은 기간(8건)보다 50% 늘었다. 해외 기술 유출 범죄는 2021년에 9건에서 2022년 12건, 지난해 22건으로 증가했다. 기술 유출 국가는 10건이 중국 기업과 관련됐고 나머지 2건은 미국, 이란으로 집계됐다. 유출된 기술 중 절반은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 핵심 기술이었다.


산업계에서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핵심인력 국외 취업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 기업에서 더 많은 돈을 미끼로 국내 핵심인물들을 유혹하고 있다”며 “자본적으로는 해외 기업을 이기기 힘든 만큼 경업 금지 규제나 처벌 강화 등의 정부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역시 기술 보호를 위해서라도 핵심 인력들에 대한 해외 이직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형민우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기술 유출의 이유로 인력 이직의 보편화 현상을 들 수 있다”며 “법 정비를 통한 안전망 구축은 기술 유출 방지에 있어서 필수 조건 중의 하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직으로 인한 국외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내 기업 간 이직 문화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직을 방지하는 규제가 강해지면 핵심인력들이 처벌이 힘든 해외 기업으로 갈 확률이 높은 만큼 국내 기업 간 유연한 이직 문화가 필요하단 설명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 교수는 “아주 민감한 기술이 아니라면 국내 이직을 허용하는 것이 해외 기술 유출 문제에 있어서 해결 방안 중 하나라다”며 “기술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국내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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