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뚜렷한 유럽 선진국의 중앙은행 수장 필수스펙 ‘EU 네트워크’
색깔 뚜렷한 유럽 선진국의 중앙은행 수장 필수스펙 ‘EU 네트워크’

유럽은 다른 대륙과 달리 유럽연합(EU)이라는 독자적 기구를 설립해 경제·정치·사회 등 모든 분야의 정책을 관리·감독한다. 은행업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이끌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럽 통화정책에 관한 집단결정을 내리는 기관으로 유럽 전역의 통화금융 정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각 국가들도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국가 별로 중앙은행을 두고 있으며 해당 기관의 수장은 유럽중앙은행의 가이드라인에 발맞춰 국가의 통화정책을 주도한다. 통상 유럽 내 국가들은 유럽연합과의 정책적 호흡을 맞추면서도 자국의 이익 극대화 수 있는 인물을 중앙은행 수장에 앉히고 있다.

 

자국 이익 위해 움직이는 유럽 통화정책 수장들…英 40년 경력 수장, 佛 민·관 거친 전문가

 

‘영란은행’으로 불리는 영국의 중앙은행(BOE)은 스웨덴 국립은행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중앙은행이다. 1694년에 설립됐다. 2020년부터 영국 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는 수장은 ‘앤드류 베일리(Andrew Bailey)’다. 1959년 영국 레스터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 퀸스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베일리는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그 후 1985년 영란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평생을 영국 중앙은행에서 근무한 ‘영란맨’이다. 영국은행에서 ▲전무 비서 ▲국제 경제 분석 책임자 ▲수석 계산원 등을 역임했다. 수석 계산원은 영국은행에만 있는 직위로 지폐를 발행하는 최고 책임자를 뜻한다. 2007년 금융 위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2011년까지 리스크 관리 특별 운영팀을 전담했다. 이후 2016년 영국 금융감독원(FCA) 원장을 4년간 역임한 후 2020년 영국은행 총재에 임명됐다. 그의 아내는 런던 정치경제대학의 교수이자 학과장인 셰릴 숀하르트 베일리다. 

 

▲ 앤드류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사진 왼쪽)와 프랑수와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은행 총재. [사진=BOE, 방크 드 프랑스]

 

베일리 총재는 공개적으로 국가 금융기관과 정부의 유착관계를 완강하게 비난하는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현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베일리 총재는 “우리는 우리의 소관인 일만 결정하지 정치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항상 지켜져야 한다”고 밝혀 대중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파리에 본점을 두고 있는 프랑스은행(방크 드 프랑스)은 1800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화폐 통일을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프랑스은행은 유로 도입 이전까지 프랑스 통화인 프랑을 발행했다. 프랑스은행의 총재는 프랑수와 빌르루아 드갈로(François Villeroy de Galhau)다. 그는 195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생으로 폴리테크닉대학을 마치고 국립행정대학에 입학했다.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은 국가의 미래 고위 공무원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이다.

 

드갈로는 1988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경제재정부 비서실장을 거쳐 조세국장에 임명됐다. 민간 부문의 경험도 풍부하다. 그는 프랑스 시중은행 BNP파리바의 부회장을 4년간 역임했다. 그는 현재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를 맡은 바와 동시에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의장을 역임중이다.

 

독일 정치인, 스위스 경제학자, 스페인 대행체제 “공통분모는 유럽은행 네트워크”

 

‘분데스방크’라 불리는 독일의 중앙은행은 수도 베를린이 아닌 프랑크푸르트에 자리하고 있다. 분데스방크의 수장은 요아힘 나겔(Joachim Nagel)이다. 나겔은 1966년 독일 카를스루에 출생으로 카를루스 공과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91년 졸업 후 독일의 중도좌파로 알려진 사회민주당(SPD)에 입당해 경제·재정 정책 관련 업무를 맡았다. 2010년 독일의 정치인이자 전 SPD 당원인 틸로 자란을 대신해 독일 중앙은행 이사회에 합류했다.  

 

▲ 요아힘 나겔 독일 은행 총재(사진 왼쪽)와 토마스 요르단 스위스 은행 총재. [사진=분데스방크, 스위스국립은행]

 

2016년 나겔은 독일 최대의 공공 개발 은행인 독일재건은행(KFW)에 총괄 관리자로 임명됐다. 이후 국제결제은행(BIS) 은행부문 부행장과 유럽 중앙은행(ECB) 정책위원회 위원을 거쳐 2022년 분데스방크 총재에 선임됐다. 나겔은 대표적인 매파 인사로 분류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과거 유럽 중앙은행 통화정책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의견과 함께 저금리와 대규모 자산매입 프로그램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정치권과도 여전히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다. 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그가 오랜 기간 몸담았던 SPD 당원 출신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금융기구 본부들이 위치한 금융강국 스위스의 중앙은행은 스위스국립은행이다. 스위스국립은행의 회장은 토마스 요르단(Thomas Jordan)이다. 1963년 스위스 비엘에서 태어난 그는 베른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석사 졸업 후 그는 베른 대학교에서 강사로 근무하며 학계 활동에 주력하는 동시에 스위스국립은행 경제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스위스국립은행에서 ▲경제연구부 국장 ▲금융시장부 국장 ▲중앙은행 부총재 등 다양 직책을 거쳐 2012년부터 지금까지 스위스은행을 이끌고 있다. 토마스 요르단은 지난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2024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와 정책대담을 진행한 바 있다.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그는 당시 행사에서 “통화정책 결정자들의 중요한 임무는 불확실한 자연이자율의 구조적 변화 요인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스페인은행(Banco de España)은 1782년 찰스 3세가 수도 마드리드에 설립한 스페인의 중앙은행이다. 스페인은행 총재는 스페인 정부 대통령의 제의로 국왕이 직접 임명한다. 임기는 6년 단임제인데 지금은 2018년부터 스페인은행 부총재를 역임해 온 마가리타 델가도 테헤로(Margarita Delgado Tejero)가 총재 대행 자격으로 스페인은행을 이끌고 있다. 기존 스페인은행을 이끌었던 에르난데스 데 코스 총재는 얼마 전 해임됐다.  

 

▲ 마가리타 델가도 테헤로 현 스페인 은행 총재 대행(사진 왼쪽)과 몽세라 마르티네스 파레라 스페인 은행 차기 총재 후보. [사진=스페인 은행, CNMV)

 

1963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델가도는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콤플루텐세 대학은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는 1989년 스페인 은행에 입사했으며 이후 ▲스페인 저축은행 국장 ▲단일 감독 매커니즘(SSM) 부국장 ▲스페인 증권시장위원회 이사 등을 거쳐 2018년 스페인 은행 부총재로 임명됐다.

 

현재 그는 공석인 총재 자리를 놓고 현 스페인 국가증권시장위원회(CNMV)부위윈장인 몽세라 마르티네스 파레라(Montserrat Martinez Parera)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마르티네스는 1975년 바르셀로나 출생으로 폼페우 바프라 대학에서 경제학 학사 및 금융 석사를 취득했다. 마르티네스는 스페인 현지에서 금융 분야와 은행 규제 및 감독 문제에서 20년 이상 전문 경험을 가진 ‘젊은수재’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는 5년간 페르난도 레스토이 부총재실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이력 덕분에 기존 인물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인사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스페인 금융계를 이끌 ‘차기 실세’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큰 이변이 없는 한 스페인은 유럽 주요 경제국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중앙은행 총재를 배출한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한 금융권 관계자는 “유럽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은 EU 전체를 관리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총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각 나라별 중앙은행 총재 임명 추이를 보면 자국 내 중앙은행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내공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거나 ECB위원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을 앉히는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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