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복고열풍에 힘입어 다방을 찾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맛 볼 수 없는 메뉴를 맛볼 수 있는 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인테리어와 소품 등을 통해 복고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장년층 역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소로 불리며 세대를 관통하는 이색 핫플로 각광받고 있다.
다방은 휴대폰보다 삐삐가 유행하던 시절에 주로 가던 만남의 장소였다. 지난 2015년에 방송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방에서는 새로 친구를 사귀고자 미팅을 하기도 하고, 동네 친구, 학교 친구들과 와 해질녘까지 신나게 떠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추억 가득한 학림다방…자녀에게 추억의 장소 소개시켜주고파”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학림다방은 1956년 개업한 이후 지금도 성업중이다. 과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이 주로 찾았던 학림다방은 현재 인근에 위치한 대학생들을 비롯해 오랜 추억이 있는 어른들도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림다방에 들어서면 칠이 벗겨진 오래된 카운터가 손님을 반기고 있다. 내부 벽 한켠에는 옛 향수가 물씬 풍기는 LP판이 가득 들어차 있다. 낡은 나무 테이블과 짙은 회색의 소파는 별도의 인테리어가 필요없을 정도로 레트로 감성을 풍기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최혜진 씨(30·여)는 “학림 다방을 대학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가 없지만 먼 훗날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면 데리러 오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다.
최 씨에게 미래에 아이와 함께 이곳에 온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보니 “지금도 데이트를 하려고 온 곳인데, 아이에게 이런 곳에서 엄마와 아빠가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지금도 혜화는 나에게 대학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장소인 만큼 많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수진 씨(21·여)는 “다방은 막연하게 엄마랑 아빠가 자주 올 법한 곳, 막연하게 특이한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막상 와보니 비엔나 커피 같이 프랜차이즈에서 팔지 않는 특별한 메뉴도 있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과도 함께 오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오래 시간 자리를 지켰던 학림다방에는 세대를 불문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10여년 전 자녀와 방문한 이후 장성한 자녀의 자식들과 함께 방문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다방이 세대를 불문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장소로 불리는 배경이다.
60대 이정란·최경수 부부는 “학림다방은 젊은 시절에 자식들과 함께 왔던 곳인데, 이제는 주말에 손주들이 놀러오면 함께 오는 곳”이라며 “스타벅스, 키즈카페가 익숙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주 데리고 오고 있다. 아이들이 쉽게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느끼고 해주고 싶은 마음과 과거 이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었던 일들도 이야기 해줄 수 있어서 함께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레트로가 유행하면서 옛날부터 있던 곳을 방문하는 것 같은데,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모습이 (보기)좋아 보인다”며 “집에 돌아가면 엄마나 아빠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거리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BTS 힘입어 명소 등극한 을지다방…세대 관통, 같은 공간 다른 추억
1985년 오픈 당시 을지면옥 2층에 위치했지만 재개발로 인해 을지로3가역 10번 출구로 이전한 을지다방은 지난 2021년 방탄소년단이 화보 촬영을 위해 방문한 이후 명소로 등극했다. 옛날 다방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레트로 명소뿐 아니라 BTS 팬들 사이에선 성지순례 장소로도 불린다.
매장 내부에 크게 적혀있는 메뉴판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메뉴가 가득하다. 쌍화차부터 생강차, 인삼차, 냉칡즙, 오미자주스 등 다양하다. 메뉴판엔 없지만 오전 시간엔 라면도 판매한다. 주황색 가죽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테이블마다 설탕이 한가득 든 하얀색 통이 있다.
방탄소년단의 팬이라고 밝힌 대학생 이채민 씨(25·여)는 “처음으로 다방이라는 곳을 방문해봤는데 그 중에서 을지다방은 방탄소년단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라며 “쌍화탕, 칡즙 등 평소에 카페 가서 먹는 메뉴들이 아닌 전통찻집에서 볼 법한 메뉴들을 팔다 보니 섣불리 주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뭔가 엄마가 좋아할 메뉴들이 많은 것 같아 다음에는 남자친구가 아닌 엄마랑도 한번 와보고 싶다”며 “다양한 나이대가 방문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다음에 엄마랑 오게 된다면 방탄소년단이 와서 유명한 곳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과거에 엄마가 다방에서 가지고 있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지수 씨(29·남)는 “여자친구가 오자고 해서 와본 곳인데 이게 찐 레트로인가 싶을 정도로 옛날 느낌이 난다”며 “평소 ‘카페’라는 곳을 갈 때는 라떼, 아메리카노와 같은 메뉴를 생각하고 가게 되는데, 다방이라고 하니 커피·프림·설탕 주인마다 다른 레시피로 만들어진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나에게도 이곳이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장소인 것처럼, ‘젊은 시절 우리 부모님도 이런 곳에서 데이트를 하지 않으셨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부모님의 연애 시절 이야기는 듣기 힘든데, 두 분의 추억이 가득한 장소에 오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36년 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운상가 ‘솔다방’
을지로 4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솔다방은 36년 째 세운 상가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과거에는 상가 내에 배달도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이곳은 몇몇 방송에도 출연할 정도로 레트로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다.
솔다방은 미디어 등에서 표현된 다방의 느낌과 가장 비슷한 인상을 갖고 있다. 화려한 패턴의 의자는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졌고, 테이블 마다 놓여 있는 수첩엔 손님들이 적은 글귀가 적혀 있다. 커피 머신 대신 가스레인지가 있고 커피포트 대신 주전자가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중장년층에겐 추억의 향수를, 청년들에겐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보이기 충분하다.
서은주 씨(55·여)는 “예전부터 청계천에 올 일이 있으면 종종 오던 곳”이라며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다방은 길을 걷다가 힘들면 들어와서 쉬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사장님, 손님들과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던 곳이 다방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소하게 추억할 거리가 많은 곳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서 씨는 “나도 다방에 내 자녀와 온다면 자연스럽게 젊은 시절 다방에서 있었던 소소한 추억들을 공유하고 싶을 것 같다”며 “다음번에는 딸과 함께 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레트로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왕 카페가 아닌 다방을 방문했다면 이곳에서만 파는 메뉴를 먹어보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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