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매출 떨어질라”…게임업계 ‘남성혐오’ 논란 선긋기
“유저·매출 떨어질라”…게임업계 ‘남성혐오’ 논란 선긋기
▲ 게임업게에 또 다시 남성혐오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업계 반응과 대응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사진은 메이플스토리 엔젤릭 버스터 리마스터 영상에서 논란의 손가락 모습. [사진=메이플스토리]

  

‘스튜디오 뿌리’가 쏘아 올린 남성혐오 손가락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며 게임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게임사들조차 남성혐오 손가락 모양 논란과 선을 긋고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가뜩이나 게임업계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소비층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상징물이 자칫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남성혐오 사태는 넥슨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영상에서 시작됐다. 해당 영상에서 앤젤릭버스터는 엄지와 검지로 집계 손 모양을 만드는데 이것이 래디컬(과격한) 페미니즘으로 유명한 ‘메갈리아’의 상징을 연상시켰다. 본래 ‘작은 차이’를 뜻했던 해당 제스처는 남녀 갈등이 시작되면서 국내 남성들의 성기가 작다는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넥슨 영상에 등장한 제스처 역시 이를 염두한 혐오 표현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의혹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러다 네티즌들이 해당 스튜디오 뿌리 직원이 지난해 개인 SNS에 “남자 눈에 거슬리는 말 좀 했다고 SNS 계정 막혀서 몸 사리고 다닌 적은 있어도 페미를 그만둔 적은 없다”며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해줄게”라는 글을 발견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실제 해당 스튜디오가 제작한 다른 영상에서도 문제의 손 제스처가 지속적으로 발견되면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우리 게임도 터질라"…게임업계, 혐오 예방 총력전

 

▲ 남성혐오 논란은 메이플스토리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게임으로까지 번져나갔다. 사진은 남성혐오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이원만 던전앤파이터 디렉터(왼쪽)과 누리꾼이 찾아낸 던전앤파이터 손가락 의혹. [사진=던전앤파이터]

 

 

남성혐오 논란에 넥슨을 비롯해 게임업계 전체가 진압 및 예방에 나섰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새벽부터 출근해 모든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검수 중이라는 중소 게임사 직원의 증언까지 올라왔다.

 

논란에 중심에 있는 넥슨은 메이플스토리뿐만 아니라 던전앤파이터, 던파모바일, 블루 아카이브 등 전 게임 검수에 들어갔다. 다른 게임사들도 디렉터들이 직접 나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긴급 라이브 방송을 통해 “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이 사랑하는 메이플스토리를 유린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넥슨의 또 다른 인기 게임인 던전앤파이터도 이원만 디렉터가 방송을 통해 “던전앤파이터는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모든 차별과 혐오를 반대한다”며 “외주사의 작업물에 그치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타인에 대한 혐오가 담겨 있는 리소스가 없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금강선 로스트아크 디렉터는 공지를 통해 “로스트아크는 특정 혐오 문화를 연상시키는 표현이 은근슬쩍 게임에 녹아들어 유저분들에게 불쾌감을 줘선 결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 게임을 즐기시는 유저분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굉장히 엄중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당 논란에 단호하게 대처를 예고했다. 로스트아크는 논란에 여지가 있는 모든 이미지와 모션을 교체 중이다.

 

중소 게임사들도 사태 진압에 동참했다. 에피드게임즈는 ‘트릭컬: 리바이브’의 공식 카페를 통해 “에피드게임즈 일동은 특정 사상 및 혐오를 전파하는 행위에 대해 절대로 관용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혐오 논란에 밋밋했던 과거와 정반대…“혐오문화 심각성 커졌다“

  

▲ 과거 남성혐오 논란이 터졌을 당시 게임업계는 지금보다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사진은 2016년 클로져스 성우 교체 사태를 일으킨 김자연 성우 트위터(왼쪽)과 해당 캐릭터 티나. [사진=트위터/넥슨 갈무리]

 

 

국내 게임업계가 페미 논란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꾸준히 남성혐오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강경하게 대응하진 않았다. 국내 게임업계는 2016년 ‘클로저스 티나 사태’와 2018년 ‘소녀전선 K7 사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클로저스는 당시 캐릭터 성우 중 한 명이 급진적 페미니즘과 남성혐오를 일삼는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사실이 드러나 교체된 바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지금처럼 빠르진 않았다. 유저들이 성우교체를 하지 않으면 환불 및 불매운동에 나서겠다며 반발이 거세진 뒤에야 교체가 이뤄졌다.

 

당시 클로저스 유저였던 김진규(30) 씨는 “오랫동안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 입장으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내가 좋아하고 즐겼던 게임이 뒤에서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성우가 교체되긴 했지만 당시 대처도 결과도 찜찜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니 넥슨도 그때 실수를 인정하고 강경 대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K7 사태는 소녀전선의 캐릭터 ‘K7’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의 남성혐오 트윗 행적이 밝혀지며 캐릭터가 백지화된 사건이다. K7 사태 또한 클로저스와 비슷했다. 처음 논란이 터진 후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유저들과 특정 혐오세력 간 마찰이 빚어졌다. 다행히 논란이 번지기 전 일러스트 업데이트를 잠정 연기하는 걸로 일단락됐다.

 

게임업계가 과거와 달리 남성혐오 상징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배경에는 극단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매출 감소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 여성단체들이 넥슨 본사 앞에서 ‘혐오몰이’를 주장하며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이전과 같은 호응이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블라인드에서 넥슨 직원이 여성단체를 비판한 글이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연말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설 등 게임업계가 대목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게임사가 발빠른 대처에 나선 배경으로 지목된다. 과거 홍역을 치르고 또 피해를 지켜본 게임사들은 관련 논란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단 설명이다.

 

익명을 요청한 판교 게임사 사업PM은 “과거 극단 페미니즘의 남성혐오가 막 시작했을 당시라면 대응이 조금 달랐을 수 있지만 지금은 사회적 시선이 달라졌다”며 “당시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망설였지만 이제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알기에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의 특정 사상을 공적인 작품에 숨겨 묻히는 행위는 어떤 사상이든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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