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된 경험이 만든 방대한 통계자료 “과학일까 미신일까”
축적된 경험이 만든 방대한 통계자료 “과학일까 미신일까”

 

▲ 최근 풍수지리학을 둘러싼 미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야권에선 풍수지리전문가가 대통령 관저 후보지를 둘러본 정황이 드러나자 풍수지리학을 무속의 범주로 묶어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그러나 풍수지리학계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예로부터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마다 풍수지리학을 참고한데다 풍수지리학의 성격 자체가 경험이 만든 통계자료 성격에 가깝다는 반응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전통가옥과 풍수지리에 대한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들. [사진=뉴시스] 

 

최근 대통령 관저 이전 과정에서 풍수지리 전문가가 참여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도 국가 중대사 결정 과정에서 풍수지리학을 참고했다며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풍수지리에 미신 프레임을 씌워 국가 중대사 결정을 미신에 의존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다만 풍수지리학의 정확한 개념과 역사적 활용 사례 등에 비춰볼 때 무게중심은 서서히 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풍수지리학 둘러싼 논쟁 가열…“풍수지리학도 미신” vs “역대 정부도 참고사항으로 활용”

 

대통령 관저 이전 과정에서의 풍수지리 전문가 참여를 두고 가장 시끄러운 곳은 정치권이다. 앞서 한 역술가가 참여했다며 무속 프레임을 입힌 비선실세 의혹을 제기했던 더불어민주당은 풍수지리전문가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대 겸임교수가 관저 후보지를 둘러본 정황이 드러나자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풍수지리학까지 무속의 범주로 묶어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운영위 소속 민주당 관계자는 “무속 논란은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불거졌던 문제이고 비선실세 의혹과도 연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다룰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과거 민주당정부 시절에도 각종 입지 결정 과정에서 풍수지리 전문가의 조력을 받은 사실을 근거로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풍수지리 전문가 자문을 구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 때 세종시 선정 때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의 김정재 의원도 “민주당이 무속 프레임을 거는데 모든 역대 정권 중 풍수지리에 관심을 안 보인 정권은 없다”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관련 후보지 선정에 풍수지리를 활용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 야당 지지자들은 풍수지리학에 미신 프레임을 씌우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풍수지리학에 미신 프레임이 씌워질 경우 지금의 여당에겐 상처나 다름없는 무속인의 국정농단 사태와 똑같은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 [사진=뉴시스]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SNS 등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수위는 정치권에 비해 더욱 높은 편이다. 풍수지리학이 미신이냐 아니냐를 두고 여·야 지지자들이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히 야당 지지자들의 공세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풍수지리학에 미신 프레임이 씌워질 경우 지금의 여당에겐 상처나 다름없는 무속인의 국정농단 사태와 똑같은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풍수지리학을 둘러싼 미신 논쟁은 개개인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풍수지리학의 정확한 개념이나 역사적 활용 사례 등에 대한 지식 없이 상식이나 심심풀이 정도로 여기면서 미신과의 경계가 모호해진 탓에 논쟁거리로 전락했다는 주장이다. 한 풍수지리학자는 “상식적으로 무속이나 풍수지리나 전부 비슷하게 생각하고 풍수지리학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많다”며 “결국 풍수지리학에 무속 프레임을 씌우려는 시도는 잘못된 오해를 마치 사실인양 호도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경험적 통계자료 활용한 풍수지리, 동·서양 막론하고 활용…미신 프레임은 친일잔재”

 

풍수지리학계와 관련 전문가 등에 따르면 풍수는 산천, 수로의 모양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사상으로 이것을 체계화한 학설이 풍수지리설 또는 풍수지리학이다. 근대 지리학이 들어오기 전에는 지리설로도 불렸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도입됐으나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건 통일신라 때부터로 알려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승으로 알려진 도선대사는 풍수지리의 대가로도 유명하다.

 

▲ 노무현정부 시절엔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을 한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위원회는 85명 규모의 자문위원단을 꾸렸는데 그 중에는 풍수지리 전문가인 이대우 서문풍수조경연구소 대표(환경 분과), 김두규 우석대 교수(도시계획 분과) 등이 참여했다. 사진은 세종시 전경. [사진=뉴시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풍수는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빼먹지 않고 등장했다. 고려 초기와 조선 초기엔 수도를 정함에 있어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대 이후 풍수지리는 환경, 건축 등의 분야와 접목시킨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결정함에 있어 풍수지리를 참고하는 사례는 점차 증가했다.

 

일례로 노무현정부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을 한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위원회는 85명 규모의 자문위원단을 꾸렸는데 그 중에는 풍수지리 전문가인 이대우 서문풍수조경연구소 대표(환경 분과), 김두규 우석대 교수(도시계획 분과) 등도 참여했다. 문재인정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도 당시 문 대통령 부부에게 풍수 문제를 들어 청와대 이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풍수지리는 해외에서도 익숙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정부가 나서서 미신으로 치부한 나라가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선 ‘중요한 참고사항’이라는 인식이 우세하다. 특히 동양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풍수는 1990년대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유력 언론 매체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집과 사무실, 가구 등의 방향과 위치에 있어 풍수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 풍수지리는 해외에서도 익숙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 정부가 나서서 미신으로 치부한 나라가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선 ‘중요한 참고사항’이라는 인식이 우세하다. 특히 동양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풍수는 1990년대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묘역 조성 책임자이자 영남대 환경보건대학원에서 풍수지라학을 전공한 황영웅 교수. [사진=뉴시스]

 

풍수지리학 전문가들은 과거 풍수지리를 어떠한 중요한 결정에 있어 중요한 참고사항으로 여긴 사례가 여럿 존재하는 만큼 풍수지리 자체를 참고하는 행위에 미신 프레임을 덧입히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더욱이 풍수지리의 성격 자체도 축적된 경험이 만든 방대한 통계자료를 활용한 이론이라며 오랜 기간 전해져 내려왔다는 이유로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사실을 마치 사실인양 전파하는 선동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전국풍수지리통일학회 곽민석 회장은 “풍수지리의 오묘한 원리와 이치는 수천년에 걸쳐 면면히 이어져 온 경험과 규칙에 따른 통계를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다”며 “일부에서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개인은 집이나 묘의 터를 알아볼 때, 또 국가는 수도를 정하거나 중요한 시설을 건립할 때 풍수지리를 중요한 참고사항으로 여겨왔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풍수지리를 미신으로 치부하는 행위 자체가 일제의 잔재라며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하나의 전문 지식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풍수지리학과 공간학을 융합해 건강한 건축문화 구현에 또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되는 한형섭 건축가는 “풍수지리는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되고 왜곡돼 해방 이후에도 미신으로 격하됐는데 면밀히 따지자면 풍수지리는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하나의 학문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동양권은 물론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양권에서도 풍수지리를 생활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며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 주택개발 회사는 풍수지리 전문가를 고용해 고객 유치에 크게 성공한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LA지역의 노스트롬 백화점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복을 받는 장소라고 홍보해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채널 로그인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이 궁금하신가요? 혜택 보기

르데스크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혜택
- 평소 관심 분야 뉴스만 볼 수 있는 관심채널 등록 기능
- 바쁠 때 넣어뒀다가 시간 날 때 읽는 뉴스 보관함
- 엄선된 기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뉴스레터 서비스
- 각종 온·오프라인 이벤트 우선 참여 권한
회원가입 로그인
34